독일 대도시 여행기
이스터 휴일을 맞이하여 앞에 이틀의 휴가를 보태고, 이번엔 소도시가 아닌 대도시 뮌헨으로 향해본다.
내가 사는 곳에서 뮌헨까지는 남동쪽으로 약 420km. 4시간 반 정도의 운전을 감수해야 하는 거리다. 사실 이번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지만, 편도 6시간이 소요되는 장거리라 뮌헨을 중간 거점으로 정했다.
지금까지 나의 유일한 독일 대도시 경험은 함부르크였는데, 함부르크와 뮌헨은 다른 나라라 말할 정도로 색깔이 다르다고 들었다. 왜인고 하니, 근본적으로 함부르크는 왕이나 영주의 지배를 받지 않은 '자유 한자 도시'였던 반면, 뮌헨은 왕국의 역사가 깊은 곳이라 그 뿌리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와보니 해산물 중심의 함부르크와 소시지, 족발의 뮌헨은 그 음식만큼이나 차이가 극명했다.
뮌헨은 베를린, 함부르크에 이어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최근까지 아기자기한 소도시만 다니다가 규모감 있는 대도시를 여행할 생각에 조금은 설레었는데, 역시나... 도착하여 마리엔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느낀 도시의 첫인상은 매우 '컸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시원하게 뻗은 길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파. 이스터 휴일 이틀 전인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활기로 가득했다. 프랑크푸르트의 뢰머 광장이나 여러 소도시의 아담한 구시가지 풍경에 익숙해져 있다가, 이 광활한 규모와 에너지를 마주하니 비로소 사람 사는 맛이 느껴졌달까. 영락없는 도시인의 노스탈지아가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뮌헨의 마리엔 광장은 1158년 도시가 세워진 이래로 줄곧 그 중심을 지켜온 곳이다.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스케일의 신시청사 건물은 절로 경외심을 자아낸다. 단순히 크기 때문이 아니라, 유럽의 여느 시청사들이 그러하듯 건물 끝단마다 맺힌 유구한 역사와 세월의 무게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약 40년에 걸쳐 3단계로 나누어 완공되었다는 이 건물은 19세기 말 유행했던 네오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일부러 중세풍의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내기 위해 뾰족한 첨탑과 복잡한 조각들로 장식한 덕분에, 15세기에 지어진 바로 옆 구시청사보다 오히려 더 오래된 유물처럼 다가온다.
유럽 여행을 하면 할수록, 시간이 겹겹이 쌓아 올린 풍경이 가진 힘을 실감하게 된다. 내가 한때 몸담았던 바이어스도르프(니베아로 유명한 독일 기업)의 브랜딩 핵심 역시 'Heritage(유산)'였다. 이것은 자본만으로 단기간에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가치 있다. 진득하게, 그리고 유구하게 자신들의 것을 지키고 추구하는 유럽인들의 뚝심을 다시금 깊이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뮌헨하면 축구와 맥주 아닌가..! 광장 근처의 FC 바이에른 뮌헨 굿즈샵에 들어가서 기념 모자를 사고, 뮌헨에 오면 꼭 오고 싶었던 호프브로이하우스로 바로 향했다. 호프브로이는 Hof(궁전) + Bräu(맥주)라는 뜻으로, 바이에른의 공작 빌헬름 5세가 왕실 식구들이 마실 맥주를 직접 만들기 위해 세운 왕실 전용 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한다. 옥토버페스트에는 6대 양조장만이 참여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양조장이다. 입구는 그저 규모가 큰 호프집 같았는데, 들어가니 이것은 공중 도떼기 맥주시장(?)도 아니고 뭐라해야 하나..압도적인 규모의 맥주 타운이다. 맥주 반, 사람 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인파를 자랑한다. 별도의 안내 없이 빈 테이블을 찾아 앉으면 그 구역 담당 서버가 주문을 받는 시스템인데, 오후 네 시라는 애매한 시간임에도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야심 차게 대충 ’큰‘ 맥주를 주문했는데, 나온 잔은 0.5리터가 아닌 무려 1리터짜리 ‘마스(Maß)’였다. 내 얼굴보다 큰 잔에 담긴 인생 첫 1리터 맥주라니, 뮌헨에서의 첫 브로이하우스 경험치고는 꽤 강렬한 시작이었다.
그 공간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노라니 뭐랄까, 독일인들에게 맥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역사이자 전통이며, 관계의 매개이자 생활의 일부라는 사실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매년 거대한 맥주 축제를 열고 왕실 양조장의 역사를 자부심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근본 없는(?)’ 현대식 양조장들은 과연 어떻게 비쳐질까 잠시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만큼 맥주는 이들에게 자존심 그 자체일 것이다.
첫 날은 마리엔 광장과 브로이하우스, 그리고 간만에 쇼핑 천국을 만난 모녀의 정신없던 윈도우 쇼핑으로 마무리했다.
그렇게 뮌헨은 우리에게 조금 더 입체적인 도시로 다가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