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영화 박물관이 가르쳐준 것
4월을 향해 달려가는 요즘, 해가 쨍한데 우박이 내리질 않나, 비가 왔다 눈이 왔다 오락가락하질 않나,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 곳의 거주 등록을 도와주신 에이젼시 분이 알려주기를, 오죽하면 4월의 날씨를 가사로 한 유명한 전래 동요까지 있겠냐고.
"April, April, der weiß nicht, was er will. (4월, 4월, 자기가 뭘 원하는지 지도 몰라.)
Bald lacht der Sonnenschein, bald schneien wir wieder ein. (곧 햇살이 웃다가도, 다시 눈 속에 갇혀버리네.)"
이런 날을 대비해 사둔 연간 뮤지엄 패스가 있으니 두렵지 않다. 오늘은 소도시 여행 대신 프랑크푸르트의 박물관 거리로 발걸음을 향해본다. 이 곳의 박물관 거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 명소이기도 하다. 약 1km가 넘는 길을 따라 십여 개의 박물관이 밀집해 있어, 산책하며 박물관 투어를 즐길 수 있는 것.
통신 박물관, 영화 박물관, 성서체험 박물관 등.. 오늘의 행선지는 슈테델 미술관이었는데, 엉뚱하게도 그 길목에 있는 영화박물관을 발견하고선, 아이의 권유로 행선지가 바뀌었다. 아빠가 왔을 때 이 곳을 꼭 가보라 했단다. 그래, 어차피 미술관을 관람하기엔 시간이 빠듯하니 영화 박물관으로 가보자!
영화 박물관은 그야말로 영화 덕후들의 놀이터다. 상설 전시에서는 영화의 역사와 음악, 의상, 편집 등 영화의 중요 요소들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기획 전시는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Wim Wenders)의 세계로 꾸며져 있었다.
이 곳에서의 감상평을 (질문에 가깝지만)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AI가 앗아간(그리고 앞으로 더 앗아갈) 창작력을,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채워나갈까?'이다.
영화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은 창조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사진도, 촬영 기술도 없던 시절, 인간은 그림을 이어 붙여 기어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Wheel of Life’ - 원통 드럼 안쪽에 연속된 동작의 그림을 그려 넣고, 빠르게 돌리면 바깥의 긴 틈 사이로 정지된 이미지가 살아 움직인다.
매우 시적인 이름이다. 우리네 삶이 곧 영화라고, 그 이름은 조용히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또 다른 흥미로웠던 전시품은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와 루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Cinématographe)였다.
키네토스코프는 상단에 있는 작은 구멍(Peep hole)을 통해 들여다보는 1인용 관람 상자다. 상자 안에는 긴 필름이 고리 모양으로 연결되어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마치 요즘의 오락실 기계처럼 동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방식인데, 에디슨은 이 기계를 보급하기 위해 '키네토스코프 파러(Parlor)'라는 전용 관람장까지 열었다고 한다. 좁은 구멍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당대 최고의 유흥이었다니, 그간 인간의 유흥이 얼마나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는지 새삼 놀랍기만 하다.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가 1인용 상자 안의 개인적인 체험에 머물렀다면, 루미에르 형제는 여럿이 함께 스크린을 응시하는 시네마토그래프의 시대를 열며 현대 영화의 초석을 닦았다. 박물관에서 직접 핸들을 돌려보니, 당시 영사 담당자들의 숙련된 손기술이야말로 초기 영화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핵심이었음을 실감한다. 1895년, 이 작은 상자가 쏘아 올린 공이 오늘날의 거대한 영상 산업으로 이어졌다니. 거대한 혁신은 이토록 투박하고 직관적인 감각에서 출발하곤 한다.
음악이 영화에서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체험해 볼 수 있는 존도 인상적이었다. 같은 장면에 다른 음악을 얹어보는 것만으로 장면의 온도가 180도 바뀌는 경험. 이미지는 객관적인 사실을 보여줄 뿐이고,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지 결정하는 건 결국 음악의 몫은 아닐까. 영화는 오감에 모두 기대어 설계해야만 하는 종합 예술임을 거듭 실감하게 된다.
이어진 크로마키 체험은 영화의 마법이 완성되는 마지막 단계를 보여준다. 텅 빈 초록 배경 앞에서 오직 상상력에 기대어 감정을 쏟아내야 하는 배우들의 몰입.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기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게 만드는 그 고독한 작업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초록색 벽 앞에 서 본 뒤에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사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좋았던 공간은 빔 벤더스의 기획 전시였다. 특히 로드 무비에 대한 그의 철학이 기억에 남는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찍을 수밖에 없어서 가장 자연스럽고, 정해진 씬에 따라 연기(pretend)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자연스레 발현되는 말과 행동을 캡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라 생각한다"는 메시지. 이런 '진짜 살아있는 이야기'야말로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닐까 싶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그가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이를 미장센으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그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에 대한 답을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 <이 세상 끝까지(Until the End of the World)>에 등장하는 여성 역시 베르메르 작품 속의 빛과 의상을 그대로 따와 촬영했다고. 움직이는 세계를 구현하는 영화감독의 영감이 '정적'인 미술 작품이라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다. (찾아보니 그는 "영화의 한 프레임은 그 자체로 완벽한 회화여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멈춰 놓고 보면 한 폭의 풍경화나 초상화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고)
빔 벤더스의 영화들을 하나씩 찾아보리라 결심하던 차, 아이의 보챔에 급하게 관람을 마무리했다.
요즘 한창 AI가 대체할 노동력과 창조력에 대한 위기감에 다소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영화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무한한 창조적 궤적을 보고 나니 묘한 안도감이 든다. 우리는 인간인 이상, 끊임없이 무언가를 오롯이 우리의 힘으로 창조해내고야 말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단단한 희망. 그 희망을 품고 박물관 문을 나섰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하늘이 조금은 개었다. 주말의 마인강과 프랑크푸르트는 참으로 아름답다.
이렇게 또 저물어가는 주말, 다음 주는 이스터 연휴고 우리는 또 여행을 떠난다. 이 곳에 오니 참으로 자주 여행을 떠난다, 가깝고 또 먼 곳으로.
또 멋진 우리만의 영화를 찍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