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오피스 적응기

이질적인 환경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존재들

by 헤일리

돌아보면 회사를 다니며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다름 아닌 '동료'였다. 혼자 하는 일도 즐기지만, 팀워크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완성되는 성취감을 즐기는 팀 플레이어 성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소중한 인연들을 꼽아보면 대부분 회사에서 만난 이들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지 않다. (심지어 배우자마저 회사 동료로 만났으니 말이다.)


그래서 독일에 왔을 때 가장 큰 고민은 이것이었다.

“과연 이곳에서도 마음을 나눌 '오피스 절친'을 만들 수 있을까?"

초반의 걱정은 꽤 합당해 보였다. 아래과 같이 내가 처한 환경은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이 훨씬 짙었기 때문이다:


• 다국적 팀: 10명의 팀원이 7개의 국적을 가졌다. 문화적 배경도,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도 제각각이다.

• 각자 다른 업무: 팀원들은 크고 작게는 모두 다른 일을 한다. 어떤 이는 IT 개발자에게 전달할 비지니스 요건을 전달하고, 어떤 이는 CRM 캠페인을 기획하고, 어떤 이는 데이터 분석을 한다. 서로의 업무가 긴밀히 연결이 되어있지만, 각자의 고유한 업무 영역에서 처한 세부적인 상황과 고민이 미세하게 다르다는 의미기도 하다.

• 유일무이한 포지션: 모두가 현지 소속인 가운데 나만 본사 파견직이고, 팀 내 유일한 워킹맘이다.


세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오피스 절친'을 만들었을까?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여본다. 참 고맙게도, 나는 제법 단단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1. 내 삶의 '너머'를 궁금해해 주는 마음들

동료들은 나의 독일 생활을 세심하게 챙겨준다. 그들이 건네는 질문 속에는 늘 다정한 온기가 서려 있다.


"딸은 요즘 어떻게 지내? 학교생활은 괜찮대?“

"친정어머니는 언제까지 같이 계셔?"


회사 안의 나뿐만 아니라, 내 생활에 영향을 주는 '회사 밖의 요소'들을 먼저 물어봐 주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이번 주말엔 어디 갈 계획이야?"라고 묻는 동료 덕분에, 어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즐거운 부담감을 느끼며 아이와 함께 보낼 멋진 장소들을 추천받기도 한다. 사소해 보이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따뜻한 관심이 고맙기만 하다.


2. 취약함을 드러냈을 때 돌아오는 공감과 위로

본사와 권역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실무 역할도 해야하는 특수한 위치에서 오는 고충은 누구도 100% 이해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혼자 삭이고 극복하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속마음을 터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안전하다고 느낀 몇몇 동료에게 조심스레 고민을 꺼내 보였다.

"유럽 CRM 시스템 구조도 그렇고, 데이터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팀에 별다른 기여를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좀 조급해."

나의 고백에 한 동료는 이렇게 답했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야. 절대 조급해하지 마. 나도 첫 6개월은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싶더라. 너는 지금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어."

또 다른 동료는 나의 모호한 포지셔닝에 대해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주재원 중 시장 상황과 실무의 생리를 이토록 깊게 파악하고 실제 ‘씬에서 액팅하고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고, 그래서 오히려 독보적“이라고.

그리고 이어, 본사와 권역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을 추구해야 하는 내 상황에 대해서도 이해한다며, "우리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것만큼이나 본사 직원으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것도 중요하니, 편하게 우리를 챌린지 해달라고.“ 도 이야기 해주었다. 나보다 연차도, 나이도 어린 동료가 건넨 이 성숙한 배려에 감동해서 눈물이 찔끔 나올 뻔 했다.


3. 함께 해주어 고맙다는 말의 힘

“니가 여기 와서 함께 일하게 돼서 너무 좋고, 힘이 돼”

“함께 고민해주고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


대단히 힘을 줘서 건넨 것이 아닌, 지나가며 가볍게 전해온 말들이지만 내게는 그 어떤 말보다 묵직하게 박힌다.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이야말로 요즘 나에겐 큰 동력이기 때문.

뛰어난 플레이어로서 기능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역설적으로 팀에 대한 나의 기여와 존재 가치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된다.


여전히 혼자 고뇌하며 생각이 복잡해지는 날들도 있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고민을 나누었을 때, 사려 깊은 언어로 보답해 주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용기를 얻는다.

업무적으로는 아직 채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적어도 동료들과 작은 신뢰를 잘 쌓고 있으니 오늘만큼은 잘해나가고 있다고 내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감사한 독일의 금요일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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