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르츠부르크에서의 낭만과 여운
매 주말 떠나는 소도시 여행, 오늘은 지인이 강력 추천해준 뷔르츠부르크(Würzburg)로 향했다.
뷔르츠부르크는 우리가 잘 아는 뮌헨과 같은 바이에른 주 소속인데, 찾아보니 뷔르츠부르크 사람들은 '바이에른 사람'이 아닌 '프랑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 한다. (이들의 자부심 섞인 농담으로 "바이에른에 속해 있지만, 바이에른 사람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사실 1800년대 초반까지 프랑켄은 바이에른과 상관없는 독립적인 주교령이나 제후령들이었으나, 나폴레옹이 유럽 지도를 다시 그리면서 바이에른 왕국에 이 땅을 넘겨줬다 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바이에른은 '나중에 합쳐진 남의 집' 같은 느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일례로 뮌헨 하면 맥주(옥토버페스트)의 인상이 강한데, 뷔르츠부르크는 우아한 와인 문화의 인상이 강하다.
그것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이 곳에 있는 알테마인교의 브뤼켄쇼펜(Brückenschoppen) - 즉, 다리 위에서 즐기는 와인 한잔의 모습이다.
이 오래된 다리 위에서 모두가 와인 한잔을 걸치며 자유롭게 대화하고 볕을 즐긴다. 날씨도 한몫 했지만, 날씨만큼이나 그 곳을 채운 사람들이 빚어내는 활기차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 분위기에 함께 취하기 위해, 우리도 다리 맞은 편 식당의 테라스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함께 즐겨보았다.
레스토랑에서도 대부분 와인들을 마시는데, 이 풍경은 내가 아는 독일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야말로 와인부심이 느껴진달까. 찾아보니 '뷔르츠부르커 슈타인'이라는 이 곳의 포도밭에서 난 와인을 두고 괴테가 "내 입맛에 맞는 와인은 오직 슈타인 와인뿐이다"라고 극찬까지 했다 하는데...(물론 그는 대문호지 대미식가는 아니지만..^^;)
지난 프랑스 콜마르 여행 때 마셨던 실바너 와인의 기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마침 메뉴에 실바너가 있길래 주문했는데 알고보니 알자스 지역의 실바너만큼이나 프랑켄 실바너가 유명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묵직한 느낌의 프랑켄 실바너보다는 경쾌하고 산미가 약간 있는 알자스 실바너가 내 취향이었지만, 이제 뷔르츠부르크 하면 와인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배를 두둑이 채우고, 이 곳에 온 주요 목적이기도 한 '뷔르츠부르크 궁전'으로 가본다. 1981년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다. 지난 만하임 여행 때 마침 바로크 양식의 궁전 내부를 구경했기에 얼마나 인상 깊을까 궁금했는데, 결론은 비교 불가였다. 괜히 유네스코가 지정한 유산이 아니다. 내 기준에서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이 궁전을 짓기 위해 투입된 당대 유럽 최고 예술가들의 압도적인 노동이다. 독일의 천재 건축가 발타자르 노이만이 전체 설계를 맡았고,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프레스코화를 그려냈다. 궁전 입구의 계단을 오르며 맞닥뜨리는 이 프레스코화는 4대 대륙을 담아낸 글로벌 스케일의 장면을 선사한다.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이 모두 그려져 있는데, 역시 세계의 중심은 중앙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유럽이다. 당시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 아름답고도 위대하게 전시되어 있는 셈이다.
이 위대한 작품을 마주하며, 거대한 천장화를 그려내는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기둥 하나 없이 광활한 공간을 가로지르는 천장을 설계하며 건축가가 감내했을 수많은 고민과 시행착오 또한 상상하기 어렵다. 당시 건축가들은 그가 설계한 천장이 금방 무너질 것이라 비난했지만, 정작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폭격과 화재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그 견고함을 증명한 것은 바로 이 천장이었다.
둘째, 전쟁으로 90%가 파괴되었던 것을 집요하게 되살려낸 독일 장인들의 집념이다. 잿더미 속에서 흩어진 파편들을 다시 이어 붙이며 원형을 되찾아온 그들의 수고스러운 노동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경이로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거울의 방'을 수놓은 화려한 수공예 거울들은 1979년부터 약 9년에 걸쳐 현대의 장인들이 단 한 장 남은 옛 사진과 파편을 토대로 일일이 다시 그려낸 결실이다.
이상하게도 거대한 문화유산 앞에 서면, 화려한 결과물보다 그것을 만든 인간과 그 지난한 노동의 과정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나이가 들며 생긴 마음의 변화일 것이다. 위대한 예술은 작품 그 너머에 존재하는 예술가의 삶과 숨결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이번 주의 소도시도 날씨 덕에 여운과 감흥이 가득했다. 그녀의 일기 속에는 여전히 먹었던 음식과 기념품 위주의 이야기들로 채워졌지만, 계속해서 보는 눈이 달라지고 넓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