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독일인은 아스파라거스에 끝을 정해놓았을까
소시지와 감자, 학센과 맥주의 나라에서 산 지 어언 4개월 차.
매 점심 회사 구내식당에서 한식이 나오니 딱히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가 크지는 않다. 하지만 간간이 유독 그리운 것은 해장국, 콩나물국밥, 순대국밥. 뜨끈한 뚝배기에 담긴 따뜻한 국물이 있는 것들. 그래서 문득 반대로 생각해봤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리워질 독일의 음식은 없을까.
뇌리를 스친 것은 슈파겔(Spargel)이었다.
독일어로 아스파라거스를 뜻하는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aspharagos'에서 라틴어 'asparagus'를 거쳐 중세 독일어에서 'Spargel'로 정착했다. 처음 동료가 "4월이 되면 슈파겔 시즌이니 꼭 먹어봐라"고 했을 때, 내가 모르는 어떤 새로운 채소를 의미하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아스파라거스.
재미있는 건, 우리가 아는 초록색 아스파라거스 외에 흰색 버전이 있다는 것이다. 갑판대에서 팔리는 하얀 줄기를 보고 친정 엄마는 "엿 파는 거냐"고 하셨고, 사진으로 본 남편은 "가래떡이냐"고 물었다. (왜 두 분 다 독일에서 한국 음식을 찾으시는지...) 무튼간에 엿도 아니고 가래떡도 아닌, 땅속에서 자라 햇빛을 보지 못해 흰색을 띠는 이것을 독일 사람들은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Weißes Gold(하얀 금), Königsgemüse(왕의 채소), Essbares Elfenbein(먹을 수 있는 상아).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Frühlingsluft in Stangen - 막대로 만든 봄의 공기-다.
그린 슈파겔과의 첫 만남은 마트에서였다. 고기에 곁들여 볶아 먹었는데, 처음 느껴보는 신선한 아삭함에 감탄했다. 한국에서 먹던 아스파라거스는 수분감도 식감도 축 늘어져 있었는데, 여기서의 그린 슈파겔은 '살아 있다'는 표현이 걸맞을 만큼 아삭하고 촉촉했다. 그야말로 인생 아스파라거스를 만난 순간!
화이트 슈파겔은 더 놀라웠다. 껍질을 두껍게 깎아낸 뒤 물에 넣고 삶는, 초록색과는 전혀 다른 조리법이 적용되는, 접시 위의 당당한 주인공이다. (내가 아는 슈파겔은 항상 조연급이었는데..) 뮌헨 여행에서 처음 먹어본 화이트 슈파겔에 홀란다이즈 소스를 찍었을 때, 신선하고 부드러우면서 산뜻한 풍미가 입안을 감쌌다.
두고두고 생각날 맛이라는 직감이 찾아온 날이었다. 그 풍미의 기억을 떠올리며 어제 놀러간 하이델베르크의 식당에서도 같은 메뉴를 시켰는데, 슈파겔의 익힘이 과해 뭉근해진 탓에 식감이 영 별로였다. 흑백요리사의 안성재 셰프가 왜 채소의 익힘을 그토록 강조하는지, 슈파겔 앞에서 비로소 이해하게 됐달까.
독일에는 슈파겔차이트(Spargelzeit)라는 말이 있다. 매년 4월 중순부터 6월 24일까지, 약 열 주간을 가리키는 이 단어는 단순한 '제철 시즌'이 아니라 하나의 절기처럼 취급된다. 이 시기가 되면 동네 마트 입구에 슈파겔 갑판대가 상설로 놓이고, 레스토랑 메뉴판에는 슈파겔 스페셜티 메뉴가 생기고, 어떤 소도시에서는 슈파겔 여왕(Spargelkönigin)을 뽑는 축제까지 열린다. 온 나라가 하얀 줄기 하나에 들뜬다.
처음에는 그저 귀엽다고 생각했다. 채소 하나에 이렇게까지.
그런데 한 가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왜 6월 24일인가. 왜 하필 그날 끝나는가.
찾아보니, 6월 24일은 성 요한의 날(Johannistag) - 세례 요한의 탄생을 기리는 기독교 절기다. 그리고 이 날짜에는 독일 농민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오래된 격언이 겹쳐 있다. "Kirschen rot, Spargel tot." 체리가 붉어지면, 슈파겔은 죽는다. 이 격언의 뒤에는 생태적 지혜가 있다. 슈파겔은 수확이 끝나면 뿌리가 다음 해를 위해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6월 24일은 인간이 욕심을 멈추는 날이고, 자연에게 쉼을 돌려주는 날이다.
종교의 달력과 자연의 달력이 한 점에서 만나고 있었다. 독일인들은 그 두 시간을 의도적으로 포개놓은 것이다 - 농경의 지혜를 종교의 권위로 봉인해서, 아무도 그 끝을 어기지 못하도록.
이것이 내 눈에는 묘하게 아름다웠다. 끝을 정해놓는다는 것. 더 먹을 수 있는데도 멈춘다는 것. 밭이 쉬어야 한다는 걸 안다는 것.
한국에서 우리는 1년 내내 딸기를 먹는다. 사시사철 수박이 있다. 제철이라는 말이 점점 의미를 잃고 있다. 이건 농업과 유통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끝을 견디지 못하는 문화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끝이 없는 것은 절대 그리워지지 않는다. 그리워지지 않는 것은 축제가 되지 못한다.
슈파겔차이트가 끝나면 밭은 쉰다. 다음 해를 위해. 끝이 정해져 있으니 사람도 밭도 그 안에서 리듬을 만든다. 생각해보면 내 독일살이에도 끝이 정해져 있다. 시작일이 있었고,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다. 2년. 그 사이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전부다.
어쩌면 슈파겔이 맛있는 건 짧아서일지도 모른다. 1년 내내 먹을 수 있었다면 아무도 축제라 부르지 않았을테지.
봄이 지나가기 전에 슈파겔 샐러드도, 슈파겔 스프도 먹어봐야겠다. 체리가 붉어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