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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찌 Oct 18. 2024

210에게 - 2

작은 바람


벚꽃 잎이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눈물이 흘렀다. 가지를 떠나 따뜻한 바람을 타고 짧은 여정을 마친 벚꽃 잎이 도달하는 곳은 차가운 땅바닥일 것이다. 꽃봉오리를 떠난 벚꽃 잎은 바람에 몸을 맡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차디찬 땅에 닿을 것을 알면서도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그 순간을 받아들였을까? 추락의 순간, 벚꽃잎의 마음속에는 어떤 감정이 스며들었을까?



당신에게 기울어가는 마음을 억누르려 애썼다. 당신의 목소리, 젓가락질, 그리고 이마에 그어진 주름 하나까지도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애써 당신의 눈을 피해보려 했다. 내 마음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 마음이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당신과의 눈 맞춤 한 번에, 그 모든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했는지 깨달았다. 이미 나는 당신에게 완전히 빠져들고 있었고, 내 마음은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다.


그날, 마지막으로 당신과 마주했던 순간, 우리는 커피 향이 은은히 퍼지던 조용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당신의 미소는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미소 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 속에서도 그 사이사이 스며드는 숨 막히는 적막은 마치 막을 내리는 연극처럼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다시는 당신과 가까워질 수 없다는 예감에 애써 웃어 보였지만, 그 순간 커피 향은 달콤함을 잃고 공허함만이 입안에 퍼졌다. 당신이 컵을 내려놓을 때마다 나는 우리의 사이에 점점 벌어지는 거리를 뼈저리게 느꼈다.


며칠 뒤, 두려워했던 순간이 현실이 되었다. 당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다정했지만, 그 속에는 우리 관계의 끝을 알리는 냉정함이 담겨 있었다. 마침표는 동그랗지만 그 동그란 마침표는 비수처럼 날아와 나를 찔렀다. 머릿속에서는 사이렌이 울리듯 혼란스러웠고나는 인어공주처럼 뻐끔뻐끔, 소리를 잃어 뱉지 못한 말들이 마음속 깊은 곳을 흐릿하게 떠다니며 무거운 낙서를 남겼다. 나는 그 상념 속에서 깊이 침잠해 갔다.



한참이 지난 후, 벚꽃 잎이 가득 떨어진 어느 날, 나는 바람에 실려 흩날리는 벚꽃잎들 사이로 내 마음을 조용히 흘려보냈다. 당신의 마음에 내 마음이 닿기를 간절히 바랐다.

가능하다면, 당신의 마음속 빈틈에 스며들어 잠시라도 나를 떠올려 주기를 바랐다. 지나치게 큰 바람일까?


하지만, 내 마음이 차가운 땅바닥에 닿더라도, 당신의 마음 근처에 잠시라도 머물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 당신의 잔상은 여전히 내게 깊이 남아,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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