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 아이스크림 앞에서
가난은 숨기면 고름이 된다. 고름이 되어 내 몸과 건강, 마음까지 모두 갉아먹는다. 그래서 가난은 숨기면 안 된다.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우리 가족이 가진 게 없다는 걸 충분히 자각하지 못했던 대학생 시절이 있었다. 영어 못 하면 취직도 안 된다는 선배들 말에, 미친 사람처럼 독학하고 장학금을 받아서 교환학생을 다녀왔던 때다.
어느 날 친구들과 다 같이 1달러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는데, 한 친구가 자기는 안 먹겠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이번 달엔 용돈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고작 1달러가 없다고? 아니 무엇보다 그걸 입 밖으로 낸다고?' 그리고 한 켠으로는 그렇게 당당하게 “나는 돈이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자신의 가난에 솔직하고 당당한 사람은, 나중에 뭘 해도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쥐뿔도 없으면서 티 안 내려 친구들 하는 거 다 따라 하고, 돈 떨어지면 피해 다니고, 집에 손 벌려 메우던 내가 훨씬 더 최악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도 변했다. 나와 세상에 당당하고 싶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내 용돈 금액을 오픈하고, 내가 얼마나 집밥을 열심히 해 먹고 사는지, 얼마나 최저가 핫딜을 좋아하는지를 당당하게 말하고 산다. 그 정도만 해도 '에게, 1달러가 없어?'라고 속으로 판단하던 과거의 나에서 꽤나 멀리 온 셈 아닐까. 이제는 스스로를 소박하지만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내 외면을 보고 가난하다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 과거의 나와 닮은 사람들은 그냥 웃어넘긴다. 어차피 그 사람들 마음이 더 가난한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렇게 솔직하게 나를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오픈할 수 있는 내가 더 건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세상을 향해 말한다. 나는 가난하지만 아주 괜찮고, 행복하다.
어쩌면 내일도, 그다음 날도 가난할지 풍족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즐겁다. 지금처럼 내 상황 속에서 행복할 방법을 찾아갈 거니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어느 순간에도 가난하고, 마음이 풍족한 사람은 어느 순간에도 풍요로울 수 있다.
가난의 고리를 바라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돈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예산이 주어지면 그 안에서 딱 최소한으로 살고, 남는 건 모두 저축하는 아이였다. 통장 잔고를 보던 그때의 두근거림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커서 알게 됐다. 나는 저축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내 통장에 돈이 조금이라도 모일라 치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비가 부족하다거나, 당장 낼 돈이 없다고 했다. 결국 내게 들어온 모든 돈은 나를 스치고 엄마에게로 이체되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돈을 모으지 않고 생기는 족족 써버리는 언니가 더 많은 경험을 하는 더 많은 걸 갖는 상황이 되었다. 인생에서 그런 경험은 여러 번 반복됐다. 그러면서 나는 ‘계획은 의미 없고, 지금을 소비하며 살며, 살다 보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라는 엄마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삶의 경험상, 그것만이 유일한 진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아껴서 모은 돈이 엄마의 밑 빠진 독으로 사라지는 동안, 언니는 해외여행도 가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해봤으니 나는 더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면, 혹은 부유하더라도 마음이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라면, 가장 큰 한계는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설계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수십 년을 내다보며 돈을 모으고 미래를 그리는 이야기가 허황된 꿈처럼 느껴지게 되고, 좋은 게 생기면 황급히 써버리는 습관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그 가난의 고리를 인지하고 끊어내는 것이, 가난을 건강하게 마주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가난하지만 행복할 수 있다.
나는 가난하지만 미래를 설계하고
돈을 모아갈 수 있다.
나는 가난하지만 내 가정을 꾸리고 책임감 있게 살아갈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부모에게 배우지 못했다면, 이제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돈은 생기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미래를 빚어가는 주춧돌이 될 수 있다는 것, 가난한 나에게도 분명한 미래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가난해도 괜찮은 이유는 끝없이 빚에 허덕일 것이어서가 아니라,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심으로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