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사랑할 자격은 충분하다
사람마저 돈으로 나누는 시대, 그래도 말하고 싶다
내 주변에는 집이 없어서 혹은 충분한 돈이 없어서 결혼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2030이 꽤 많다. 실제로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경험담에 따르면, 소개팅 주선자가 “서울에 전셋집 할 정도의 돈이 있냐, 매수할 정도의 돈이 있냐”라고 물어보았고, 전셋집 정도라고 하니 그 말에 맞춰 '딱 전셋집 해가도 괜찮은 정도의 여자'가 소개팅에 나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주선자도 나의 지인도 사람조차 돈으로 나누는 이 세상의 민낯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젊은 2030들에게 내가 “나는 20만 원 월세집에서 신혼을 마이너스로 시작했는걸!” 하고 말하면, 분위기가 싸해진다. 마치 “아 네, 다음 늙은이요” 같은 표정이다. 나도 아직 젊다고, 이 녀석들아.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젊을 때 가난한 건 정말 당연한 일인데, 가난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움츠러들어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그 자격지심을 안고 누군가를 만나면 잘될 가능성은 오히려 더 낮아진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언제나 말하고 싶다. 가난에 당당해지라고.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과 성실한 삶의 태도가 있다면 가난해도 결혼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그런데 당당하고 싶어도 사회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자꾸 주변에서 누구는 얼마를 해왔네, 집을 해왔네, 어디에 사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네, 역시 서울에 살았어야 했네 같은 말들이 쏟아진다. 끝없는 비교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의 처량한 신세는 더욱 또렷해진다. 거기에 선배들의 조언이랍시고 나오는 말은 늘 같다. “결혼할 땐 꼭 돈 보고해, 돈이 제일 중요해.” 이런 말들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하고, 결정사 가입을 고민하게 만들며, 마음은 안 맞지만 돈은 많은 집 자식을 계속 만나야 하나 혼란스럽게 만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돈이 인생의 최우선 가치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런 말을 굳이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옛 어르신들 말처럼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그래서 나는 성실하고 마음이 잘 맞고, 티키타카가 통하는 사람을 인생의 단짝으로 맞이하는 게 맞다고 확신한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우리는 뭐다? 너도 나도 가난해도 완전 괜찮으니까. 인성이 좋고 성실하고 서로 웃으며 대화할 수 있다면 인생은 생각보다 단단해진다. 언젠가 닥칠 힘든 순간에도 손을 잡고 함께 버틸 수 있다. 믿어보시라.
생판 남이 해줘서 더 의미 있는 말
놀랍게도 나는 그 진흙 같던 가난의 한복판에서 결혼을 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나에게 너무 깊이 빠져버린(?) 이 남자를 어쩌나 싶었는데, 돌아보면 그에게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그는 ‘현재의 돈’에 두는 가치가 낮았을 뿐이다. 나중에 내가 빚밖에 없는 나랑 어떻게 결혼을 생각할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직장이 안정적이잖아. 우리 둘이 꾸준히 벌면 무조건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지.” 미친 듯한 러브스토리라기보다는 남편만의 기준표에 내가 부합하는 사람이었고, 돈은 정년까지 내가 벌어다 줄 거라 믿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나는 입사 때부터 퇴사 희망자였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연애할 당시, 내가 내 빚을 오픈했을 때 남편이 해준 말은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우리가 만나기 시작했을 때 남편은 이미 30대 중반이었고, 나는 이 남자를 만나는 게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안 상황을 금액까지 낱낱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솔직히 다 듣고 나면 꽁지 빠지게 도망칠 줄 알았다. 그 말을 들은 당시의 남자친구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정말 좋은 딸이네. 엄마가 힘든데 힘을 보탠 건 누구라도 했을 행동이고, 나라도 그랬을 거야. 다만 내가 가진 게 없어서 도와줄 수 없다는 게 너무 미안하다. 우리가 잘 살아서 같이 갚아가자.”
아마 이때 모든 사랑과 따뜻함의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인지 이제는 그런 면을 찾기 힘들지만, 그 당시 남편의 말은 나를 살게 했다. 그리고 뼛속 깊이 고마웠다. 내 인생에서 그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따뜻한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당시 엄마는 오히려 돈을 더 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비난과 협박을 하던 시기였고, 형제들은 타지에서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다. 언니가 “하… 솔직히 네가 전화만 안 하면 나는 내 인생이 정말 즐겁거든”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생판 남이었던 그 사람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게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돌아보면 남편이 나에게 해준 말은 결국 이것이었다. “가난해도 괜찮아, 우리가 함께하면 잘될 거야.” 그리고 그때 손을 맞잡았던 선택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남편에게도 그렇기를 바란다. 세상에는 분명 꽤 많은 건강한 마음을 가진 ‘가난해도 괜찮아족’이 존재한다. 내가 나의 가난에 당당해지고,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다면, 생각보다 놀랄 만큼 큰 행복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