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괜찮아

by 해일리



원치 않던 가난, 수치심의 늪에서



나에게 10대와 20대의 삶은 한마디로 말해 생존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열심히 살지 않으면, 정말 이를 악물고 피똥 싸게 살지 않으면 내 삶이 크게 망가질지 모른다는 걸. 그래서 매 순간 가장 안전한 선택만 했다. 리스크를 감내하는 건 내게 허락되지 않은 사치였고, 항상 평균 혹은 평균 이상으로 갈 수 있는 길만 골랐다.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 끝에 남은 건 더 많은 대출 한도로 인해 만들어진 더 많은 빚이었다. 매달 월급을 받아도 내 손에 몇백만 원조차 모아보지 못했던 나는 어느새 고스란히 1억 원의 빚을 안고 있었다. 경제권도 없이 빚만 늘어가던 그때, 내 나이는 서른이었다.


부모의 빚은 나와 형제들에게로 흘러왔다. 나의 경우, 편부모였던 엄마의 빚이었다. 나는 절망했다.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살아도 결국 인생이 망가지는 길을 피할 수 없는 건가, 애초에 잘못 태어난 인생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창조자에게 돌아가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은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삶의 의미를 지워갔다.


그렇게 나는 원치 않던 가난을 맞이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에게 가난은 수치였다. 그래서 가난한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돈이 없다는 말을 철저히 숨겼고, 나 역시 그 누구에게도 티 내지 않도록 배웠다. 오히려 가난을 감추기 위해 더 큰돈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 사실이 누군가에게 드러날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원래 화를 거의 내지 않던 사람이었기에 그 모습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때 나는 배웠다. 돈을 언급하는 건 불경한 일이고, 특히 ‘돈이 부족하다’는 말은 극도로 수치스럽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빚더미에 깔려 삶의 의미를 잃어가던 순간에도 그 모든 상황을 철저히 숨겼다.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에 나가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일하고, 회사로 걸려오는 빚 독촉 전화를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받아가면서. 내 안이 썩어가든 말든, 그렇게 살았다.



너는 괜찮아, 당당해도 돼.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얼마나 많이 힘들었니. 돈이 없으면 없다고 말하지 못해서 더 무리하고 더 고생하고, 너를 너답지 못하게 하는 족쇄를 차고 그 안에서 허덕이느라 얼마나 오랫동안 애썼니. 이제 편해져도 된다. 너는 지극히 가난했고, 그리고 가난해도 괜찮아. 너의 가난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된 것뿐이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심각한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엄마를 탓할 필요도 없어. 엄마도 처음이었어. 이런 삶을 살아보는 게, 이런 가난을 겪어보는 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래서 몰랐던 거야.


그러니까 이제 너의 가난에 당당해도 돼. 가난은 수치도, 죄도 아니야. 오직 가난을 벗어나 흙무더기에서 숟가락으로 계단을 파고 올라 금수저가 된 사람들의 과거만이 영웅담처럼 소비될 필요는 없어. 너의 아픔도, 너의 가난도, 돈이 없어서 느꼈던 서러움도 모두 다 너라는 존재를 이루는 의미 있는 삶의 일부야. 그 안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한 걸음이라도 내디뎠다면 그 자체로 충분해. 설령 주저앉아 울기만 했어도, 뒷걸음질만 쳤어도 괜찮아. 그것 또한 너이고, 네가 주어진 아픔을 대처해 온 하나의 방식일 뿐이니까.


그렇게 나는 나의 가난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처절하게 슬퍼했고, 처절하게 들여다봤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에게나 편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병적일 정도로 힘들어했고,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과도기를 지나고 나니 이제는 가난을 훨씬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가난했기에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가난해도 괜찮아. 너는 가난하든, 가난하지 않든 여전히 좋은 사람이고, 여전히 멋진 사람이고, 네 인생을 스스로 꾸려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ChatGPT Image 2026년 1월 21일 오후 05_04_17.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