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매시장에 발을 들인 이유는 빚이었다

by 해일리



남의 힘을 빌리려 했던 시절



우리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곰 같은 나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고, 그럴수록 엄마는 더 무섭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우리의 시궁창을 타개할 또 하나의 ‘신박한 대안’을 들고 왔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늘 나를 새로운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밀어 넣는 사람이었다.


그 대안이란, 다름 아닌 부자인 남자와 나를 결혼시키는 것이었다.


미쳤다고 빚이 1억이나 있는 나와 부자인 남자가 결혼을 해주겠냐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세상은 대체로 등가교환으로 돌아간다. 사람도 좋고 능력도 있는데, 심지어 부자인 남자가 나와 결혼해 줄 리는 없다.


세상에는 나 정도 능력에 나 정도 외모, 빚도 없고 모아둔 돈까지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자기 객관화만큼은 꽤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 시나리오가 가능해지는 경우가 있다. 집안은 부유하고 겉으로 보기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에게는 뭔가 다소 큰 하자가 있어서 결혼이 계속 어그러지는 경우다.


중매 시장에서 아무리 연결해도 번번이 틀어지니, 예리한 중매쟁이들이 먼저 눈치를 채거나, 아니면 부모가 알아서 기준을 대폭 낮추는 상황이 된다.


“사람만 좋으면 된다,
나머지는 우리가 다 갖춰줄 테니.”

그렇게 상대 여성의 조건이 점점 느슨해진다.


그렇게 엄마는 나에게 남자를 데려왔다. 그쪽 집에서는 우리 집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OK라는 입장이었다. ‘이 상황에서 결혼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딸 콤플렉스에 완전히 절여진 인간이었다.


그리고 비겁한 마음이지만 나 또한 간절히 이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누군가 그랬다. 자식 의존적인 부모에게 가장 상처 입히지 않고 독립하는 게 바로 결혼이라고.

결국 나는 그 선자리에 나갔다.






정말 괜찮다고요?




막상 만나 보니 부자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사회성이 많이 없으시구나’ 싶을 만큼 나와 대화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또 어떨 땐 천진난만한 아이 같으셔서 내가 애 키우듯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성화에 나는 그 사람을 몇 번이나 더 만났다.


“엄마가 보기엔 집안도 너무 좋고, 저 친구도 괜찮은 것 같아. 네가 몇 번 안 봐서 그렇지, 부모가 워낙 좋은 분들이니까 자식도 괜찮을 거야.”

엄마는 늘 이렇게 포장했다.


나에게 엄마는 언제나 정답지였다. 엄마는 유능하고 현명하며 무엇보다 나를 가장 아끼고 잘 아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내가 보기엔 오답인 것 같은데 엄마는 계속 정답이라고 하니, 내 눈이 이상한 건가 싶었다. 제일 친한 친구에게 보여주며 물었지만 친구도 뾰족한 답을 줄 수는 없었다. 왜냐면 이 사람이 어떻던 중요한 건 내 마음과 내 선택이니까.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정말 내가 저 사람이랑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내 눈을 피하면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 눈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한참이 지난 지금, 엄마는 “주선자가 너무했다, 어떻게 그런 애를 너한테…”라며 말을 바꾸지만, 나는 그때 엄마의 대답과 시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엄마는 나를, 사랑도 존경도 없는 결혼에 밀어 넣으려 했던 걸까.


다만 그렇게 하기엔 내가 내 삶과 나 자신을, 그보다는 더 아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 남자와의 인연을 끝냈다. 내가 존경하거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다시 상거지 절망의 세계 한가운데 혼자 앉아 있었다. 엄마의 ‘치트키’는 그렇게 조용히 박살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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