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담보가 없던 절망의 순간

by 해일리


도대체 왜 못 갚냐고요!



연체 안내 전화는 늘 같은 방식으로 걸려왔다. 먼저 내 휴대폰으로, 내가 받지 않으면 회사로. “카드 값이 연체되셨습니다.” “오늘 납부 가능하신가요?” “납부하지 않으시면 이런 불이익이 있습니다.” 나는 늘 같은 순서로 대답했다. “네, 확인해 볼게요.”


전화를 끊은 뒤에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오늘도 연체됐대요'. 그러면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어젯밤에 들어올 돈이 있었는데 오늘 들어와.

오늘 보낼게'. 나는 '네'라고 답했다.


우리 둘 다 암묵적으로 내일이 되어도 갚지 못할 걸 알고 있다고 느낀다.

이 연극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그날의 빚 스트레스는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시작됐다. 그런데 어느 날은 전화가 조금 달랐다. 지역번호로 걸려온 전화였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늘 듣던 상담원의 그것이 아니었다. 웬일로 나이 지긋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고, 이런 전화를 자주 해본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는 다짜고짜 물었다.


“아니, 왜 대출 이자를 안 내세요?” 질문이라기보다 추궁에 가까웠다. 나는 본능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마련해서 낼게요.” 그렇게 말하고 끊으려 했지만, 그는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번에는 통보가 아니라 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긴장이 됐다. 순간 ‘지점 직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매달 몇 백만 원의 월급을 받는 사람이 고작 30만 원 이자를 7일째 못 내고 회사로 전화까지 받는 상황은 누가 봐도 이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나왔다.


“이 대출… 본인이 받아서 쓴 거 정말 맞아요?”
내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말문이 막혔다. 내 월급, 내 신용카드도, 대출도 사실은 모두 엄마가 쓰고 있었다. 원칙적으로는 남에게 주면 안 되는 것들이다. 혹시 이게 문제가 돼서 나와 엄마가 어디 금융 감사 같은 데 끌려가는 건 아닐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해명을 요구하는 사람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지금의 나는 너무나 초라하구나.







죽음을 생각한 순간




순간 화가 났다. 나를 거의 심문하고 있는 이 사람과 엄마와, 나 자신에게 모두. 돈이 없다는 것,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한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작게 만드는지 분노가 될 때까지 실감했다.


사실을 털어놓으면 이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아니, 그럴 리 없다. 그저 또 하나의 남의 집 사정일 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두려움보다 분노가 더 커졌다.


계속되는 질문 끝에 나는 결국 폭발했다.
“제가 장기 팔아서라도 갚을 테니까 다시는 저한테 전화하지 마세요!”
전화를 끊고 비상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펑펑 울었다.

이제 나에겐 더 이상 담보가 없었다.


새로운 돈이 나올 루트도 없었다. 수입은 있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남은 건 정말 이 몸 하나뿐이었다. 차라리 엄마에게 받은 걸 엄마에게 돌려준다고 생각하고 신장 하나를 팔까.


그 당시, 여자 친구에게 명품 가방을 사주려고 신장을 팔아 3천만 원을 받았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비위생적인 수술 환경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웠다는 문장도 함께. 안전한 방법은 없을까 잠깐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불법인데, 안전한 방법이란 게 있을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제 정말 바닥이구나. 그냥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간절하게 이 모든 걸 끝내고 싶다. 처음은 엄마를 위해서였다. 두 번째는 엄마를 돕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부터는 죽겠다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 생명을 걸고 있었다. 경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한 인간의 생명력과 존엄성은 그렇게 조금씩 소실되어 가고 있었다. 손과 발이 묶인 채 혼자 비명을 지르는, 유리 철장에 갇힌 죄수처럼.


그때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도 엄마는 내가 죽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살기를,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것이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진심으로 떠올려본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죄책감을 눌렀다. 엄마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온전한 몸과 정신으로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상황을 끝내야 한다는 것을.
지금 모든 것은 분명 잘못되었고, 나는 이것을 바로잡아야 했다.
그 어떤 부모가 자식이 죽기를 바라겠는가.

그래. 나는 살아야겠다.
그 모질던 은행 아저씨 덕분에 나는 드디어 결심했다.
살아남기 위해, 이 판을 뒤집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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