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했던 일상을 뒤흔든 한 마디
퇴근하고 온 남편의 눈빛이 이상했다.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었지만 말을 못 한다. 그런 눈빛을 처음 봐서 정말 불안했다. 순간 사기를 당했나, 어디가 아픈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어렵게 뗀 남편의 입에서
"엄마가 유방암 이래"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어머님은 건강검진도 매년 받으시고 운동을 좋아하시는 강철 체력의 호탕한 분. 아버님보다 13살이나 연하인 60대이셔서, 오히려 아버님의 건강은 많이 걱정해 왔지만 어머님이 갑자기 크게 아프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더 충격이었던 건, 항암치료를 3차까지 진행하는 동안 우리에게 숨기고 계셨다는 것이다.
내가 조산 위험이 있는 임산부라 신경 쓸까 봐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정말 억장이 무너졌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아들 내외한테까지 숨기시다니.
연로한 아버님이 어머님을 데리고 지하철, 버스를 갈아타면서 병원으로 모시고 다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항암치료를 하셨다고 한다. 그 생각을 하니 슬픔이 배가 되었다. 알뜰함이 몸에 밴 분들이라 택시는 생각도 안 하시는 것.
먼 거리인 부산에 사시니 명절 때, 생신 때만 찾아뵈었고 그렇다 보니 쉽게 우리를 속이실 수 있었다. 이번 설에는 친구네와 길게 필리핀 여행을 갈 거니 오지 말라고 하셨었다. 우리는 완전히 모르고 있었다. 왜 더 신경 쓰지 않았을까, 후회만 가득했다.
함께한 10년 동안 남편이 그렇게 무너지는 모습은 처음 봤다.
한참을 슬퍼한 뒤 기력을 차리고 아버님, 어머님과 통화하며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병원과 병에 대한 후기를 찾아보고 검색하며, 어머님께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간 백화점 명품관
항암 때 필요한 것들을 찾아보다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어머님께 모자를 사드리면 좋을 것 같았다. 당장 그다음 날이 어머님 3차 항암 퇴원일이라 퇴원 도와드리러 가기로 했는데, 집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으로 백화점 명품관에 갔다.
생각해 보니 어머님께 좋은 패션용품, 옷 하나 제대로 선물해 드린 적이 없었다.
"우리 며느리가 이렇게 야물다. 얘는 돈을 하나도 안 쓴다. 가끔은 좀 딸도 예쁜 거 사주고 너도 사 입고해라." 어머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아직까지 내 마음에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우리가 이탈리아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나름 고심해서 수제 가죽공방에 가서 어머님 가방을 사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님이 가방을 보시고 영 안색이 좋지 않으셨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일반적으로는 '이탈리아에서 가방을 사 온다'라고 하면 '명품 가방'을 사 올 것을 예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송했다. 내가 관심이 없는 영역이니 너무나 무심했던 것.
그게 지금까지 내 마음에 작은 가시처럼 걸려있었다. 다만, 삶의 무게에 치여서 한 번도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 그게 너무 후회되었다. 왜 더 잘해드리지 못했을까.
쇼핑 안 하는 실용주의자인 아들 내외는
냉장고를 바꿔드린 적도 있고 안마의자를 해드린 적은 있지만, 작은 거라도 명품을 해드릴 생각은 한 번도 못 했다.
그렇게 명품관을 돌아다니다가 어머님이 좋아하실만한 모자를 발견고,
남편과 상의 후 바로 구매했다.
물론 '일시불이요' 이런 멋진 모습은 없었고, 모아둔 상품권, 모바일 머니 다 털고 체크카드 결제였다.
남편은 처음에는 "그런 거 전혀 필요 없다. 엄마 모자 잘 안 쓴다(아니다, 자주 쓰신다. 남자들이란). 분명 한 소리 들을 거다" 하다가 내가 계속 설득하니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했다.
어머님의 기쁨, 그리고 우리의 다짐
퇴원날 3시간 반을 달려가서 어머님을 뵈었다. 울지 말아야지, 우리가 울면 어머님 마음도 더 아프실 것 같아, 마음을 다잡았다.
강철의 어머님답게 3기 항암임에도 약간의 초췌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셨다. 워낙 머리가 작으셔서 모자만 써도 자연스럽게 머리가 가려졌다. 그럼에도 너무 야위셨다. 살도 많이 빠지시고 핏기가 많이 없었다. 호탕함도 은은한 미소로 바뀐 어머님을 보며 마음이 미어졌다.
뭐 하러 왔냐고, 한참 뭐라고 하시다가 같이 밥도 먹고 카페도 가니 "그래도 얼굴 보니까 좋네" 이 말을 10번은 넘게 하셨다.
항암 후유증으로 어머님은 약간의 인지장애가 오셨다고 한다. 아까 한 행동을 기억 못 해서 돈을 보내고, 이따가 또 보내고 한다고. 아버님이랑도 그걸로 서로 참다가 싸우고 하시는 모양이었다. 우리랑 있는 동안도 같은 말을 여러 번 하셨다.
그동안은 어머님이 우리를 챙겨주고 신경 써주셨다면,
이제는 우리가 어머님, 아버님을 챙길 때가 온 것이다.
어깨가 무거우면서도 담담했다. 아낌없이 가져가는 친정과 달리, 아낌없이 퍼주려고만 하시는 시댁이었다.
돈을 보내드리면 다시 돌려주시고, 과하게 보냈다 생각 드시면 역정을 내시곤 했다. 너네 대출 갚고 살기도 힘든데 아버님 마음 아프니까 다신 이렇게 보내지 말라고.
그렇게 함께 커피를 마시고 집에 와서 준비한 선물을 드렸다. 꺼내놓으니 어머님은 처음엔 상표를 보고 이게 뭔지를 잘 모르시더라. 모자를 꺼내니 "이거 명품 아이가!" 이러면서 바로 들고 가서 써보셨다. 정말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맨날 닥* 제품만 써봤지 명품은 처음 써본다면서. 그 모습을 보니 정말 기뻤다.
사실 백화점에서 그걸 사서 나왔을 때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았다. 왜 진작 하나 해드리지 못했을까, 왜 이제야 갈 생각을 했을까 하는 후회와 지금 상황에 대한 슬픔 때문이었다. 근데 아이처럼 기뻐하는 어머님 모습에 나까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선물이란 건 이런 거구나’를 오랜만에 몸소 느꼈다.
마냥 좋아하는 어머님을 보며 아버님도 별말씀하지 않으셨다. 남편은 생각보다 더 폭발적이었던 선물의 효과에 감탄하며, 나중에 나에게 참 고맙다고 했다. 이 정도로 좋아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아마 어머님은 그걸 머리에 쓰는 기쁨보다
주변 지인들, 친구들에게 "우리 아들, 며느리가 해준 모자다"라고 말하는 기쁨이 훨씬 크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자는 어머님만의 당당함을 뒷받침해 줄 것 같았다.
브랜드를 좋아하는 검소하지만 패션에 진심인 우리 어머님.
이번 생엔 짠짠하게 그지없는 며느리와 아들이 이런 선물을 해줄 거라 생각도 못 하셨을 것이다(죄송해요).
항암치료, 수술이라는 힘든 과정을 겪어내실 때마다 잠시라도 그 모자를 쓰고 아들 내외의 사랑을 떠올리실 수 있다면 좋겠다.
앞으로는 모든 과정을 우리가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