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생명을 담보로
내 나이 서른, 빚에 허덕이던 그 시절, 현실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그냥 모든 걸 외면하고 싶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걸려오는 전화와 점점 심각해지는 대출 상담사들의 말들이 나를 흔들어 깨웠고, 끝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그 상황이 되기 전에 엄마에게 "이제 그만 갚아라", "최소한 내 수입 통장이라도 돌려달라"라고 요구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물론 했다. 정말 많이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늘 같은 방식으로 나를 막았다.
"오늘 차에 가스를 피웠는데, 창문이 아주 살짝 열려 있어서 살았어. 내일 다시 시도하려고."
그 말 한마디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울며불며 죽지 말라고 애원했고, 결국 필요하다는 돈을 줬다. 내 빚보다 더 무서운 건, 엄마가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였으니까. 엄마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내 입을 닫았고, 나는 또다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엄마에게 "형제자매끼리 계속 화목하게 살아라. 그동안 고마웠고 미안했다"는 식의 유언 같은 문자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오후엔 돈을 빌려달라는 문자가 따라왔다. 때로는 이미 언니에게 얼마를 빌렸으니 나머지는 네가 좀 달라는 압박도 함께였다.
엄마가 돈을 빌리는 방식은, 지금 돌아보면 다단계와 같았다. 처음엔 300만 원을 빌려가서 갚고, 다음엔 500만 원을 빌린다. 갚은 뒤엔 1,000만 원을 빌린다. 그리고 갚지 않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공사 잔금이 마무리돼야 저번에 빌린 돈까지 함께 줄 수 있다며 또 돈을 요구한다. 그리고 끝내 갚지 않는다. 내가 갚으라고 하면 죽겠다며, 본인의 생명을 담보로 내 입을 막는다.
공포에 떨며 조언을 구하던 날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던 시기에도 엄마의 협박은 계속됐다. 그동안은 남편에게 미안하고 괴로웠지만, 그래도 내가 돈을 벌었기에 마음이 최악으로 치닫진 않았다. 그런데 수입이 거의 없는 시기에도 이런 부탁을 한다는 건, 남편이 번 돈까지 내놓으라는 것 같아 정말 괴로웠다. 내 아이를 바라보며 너무 미안했다. 남편과 아이가 먼저여야 하는데.
나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리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불안해했다.
엄마가 정말 죽어버릴까 봐. 그때, 회사에 연륜이 있는 부장님이 떠올랐다. 바쁘실 텐데 정말 죄송했지만, 너무 절박한 마음에 조언을 구했다. 덜덜 떨리던 손이 아직도 기억난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말씀을 드렸는데, 부장님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절대 안 죽어. 내가 살면서 이런 경우도 봤고, 저런 경우도 봤다.
정말 죽을 사람은 절대 주변에 말하고 죽지 않아.
엄마는 그냥 죽고 싶을 만큼 본인이 힘들다고 너에게 말하는 거야.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치고 정말로 죽은 사람은 없었어.
내가 확신하건대, 엄마는 절대 죽지 않아.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네 판단과 생각대로 가면 돼."
그 확신에 찬 말이 그렇게 큰 위안이 됐다.
그리고 부장님 말씀대로, 엄마는 죽지 않았다.
내가 3천만 원을 빌려주지 않아서 집을 헐값에 팔았다며, 언니를 통해 원망의 뒷말이 들려왔다. 나는 내가 남편과 함께 모은 돈까지 엄마에게 줘야 할 의무가 있는지 물었고, 다 오해라며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는 믿을 수 없는 대답을 들은 뒤, 더 이상 엄마와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돈 한 푼 없는 상황에서도 작고 낡은 아파트가 아닌 신도시의 비싼 월세 집으로 들어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식들의 미래가 휘청거릴 만큼 우리의 모든 걸 쥐고 흔들면서도, 남들에게 보이는 것, 체면에는 목숨을 거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여전하시구나. 우리 엄마는 처음부터 절대 죽을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말에 그토록 휘둘린 내가 어리석었구나 싶었다.
몇 년 뒤 다시 연락을 이어갔을 때, 엄마는 전보다 스스로를 더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무기인 목숨조차 더 이상 먹히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정말 일정 부분 뉘우쳐서였을까.
그리고 이상하게도, 단호하게 끊어낸 뒤 오히려 나는 전보다 더 존중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전에는 말해도 묵살당하기만 했던 파산과 개인회생이, 이제는 내 돈과 내 말 한마디로 진행됐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무조건 내가 바로 서야 한다고. 가족이라는 길고 복잡한 인연과 애증 속에서 모든 걸 혼동하지는 말자고. 결국 나 자신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다고. 내가 휘둘리지 않고 단호해지자 모든 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