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이 무너뜨린 마지막 신뢰
나의 20대와 30대를 잠식한 것
엄마의 사업자금을 막기 위해 빚을 떠안아야 했던 나의 20대와 30대. 그 빚을 갚아가는 와중에도 계속되는 엄마의 요구와 일종의 협박을 견뎌야 했던 30대 중반이었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범주까지 폭주하기도 했다.
늘 총명했던 언니가 스스로 새로운 기회를 잡아 30대 중반에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을 때, 내가 언니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엄마한테 줬던 카드 다 자르고 가"였다.
내가 엄마에 대한 지원을 일절 끊자, 엄마는 어느새 언니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직업 특성상 신용이 좋았던 언니는 취직하자마자 엄마에게 마이너스통장 1억 원을 내어주었고, 엄마는 한도를 꽉꽉 채워 쓰고 있었다. 거기에 언니의 월급과 인센티브, 카드까지 쥐고 생활했다. 심지어 엄마의 설득으로 언니는 근무지까지 서울에서 집 근처로 옮기게 되었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집안 사정에 발목이 묶여버렸다.
언니는 그때 많이 후회했다. 네가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힘들다고 했을 때 모른 척할 게 아니라 같이 해결했어야 했다고. 그럼에도 자유로운 영혼이자 능력 많은 언니는 결국 해외에서 새 기회를 찾아 떠났고, 나는 격하게 응원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엄마가 쓰는 카드'였다. 언니는 마음이 약했고, 나는 엄마가 카드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다양하게 신용을 끌어 쓸 수 있는지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언니인척 꾸민 일
언니가 미국에 간 지 1년쯤 지났을 때, 사건이 터졌다.
엄마가 언니도 모르게 언니 명의의 카드 세 장으로 카드론 3천만 원을 빌려 쓴 것이다. 그것도 계속 연체되고 있는 상태로. 금융에 어두웠던 언니가 우연히 카카오페이 앱에서 자산·대출 조회 기능을 열었다가 알게 된 것이었다.
알고 보니 언니는 처음에 미국에 가기 전 카드를 끊으려 했지만, 엄마가 "1달만 더 쓰고 탈회할게, 2달만 더 쓰고…" 하며 간절히 매달리는 통에 결국 매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 핸드폰으로는 한국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카드사에 등록된 연락처는 엄마 번호로 바뀌어 있었다. 엄마가 언니인 척 행세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내가 가장 소름이 돋았던 건, 엄마가 언니인 척 카드사에 전화해 카드론을 받는 장면을 상상했을 때였다. 어떤 마음이면 자식인 척 위장해 그 아이도 모르게 몇 백만 원씩, 합쳐 몇 천만 원을 "네, 제가 OOO이에요" "OOO만원 받을게요"하며 아무렇지 않게 빌릴 수 있는 걸까.
이건 사기였다.
언니에게 카드를 자르라고 했을 만큼 나도 무척 꺼림칙했지만, 엄마가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언니가 그렇게 분노한 건 처음 봤다. 언니는 친한 가정법률 전문 변호사에게 여러 차례 상담했다. 결론은 엄마를 감옥에 보낼 각오가 아니라면 법적인 해결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엄마가 아닌 카드사를 대상으로 소송해도 카드사가 엄마에게 소송을 걸 터였으니 결론은 같았다. 빚이 몇 억 수준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는 게 너와 가족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나을 수 있다고. 그 변호사가 보기에도 언니는 두 눈 뜨고 엄마를 재판장에 세우고 감옥에 보낼 위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바뀔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고. 현업에 있어보니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더라고.
나는 일단 언니 카드사에 등록된 연락처를 모두 내 번호로 바꾸고, 신생아를 안은 채 카드론 연체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절대 다시 겪고 싶지 않던 고통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명의만 바꿔 돌아왔다. 독촉 연락이 오면 엄마에게 갚으라고 전했고, 엄마는 일부는 갚고 일부는 못 갚는 날들이 이어졌다. 한 개 카드를 막으면 바로 다음 카드에서 전화와 문자가 왔다. 매달 30일 중 20일 이상은 독촉에 시달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한계에 달했다.
카드사에서는 거의 대부업체로 언니를 넘길 기세였다.
그때 엄마는 내게 "이번 한 번만 막아달라, 미안하다. 그렇지만 네가 이렇게 보기만 하면 안 되지"라고 했다. 이 사기극에조차 내 탓도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러고 어떠한 반성도, 바뀌겠다는 약속도 없이 엄마는 그렇게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었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악몽 같은 순간들
이 빚은 내 빚도 아니고 언니의 빚이었으며, 나는 이미 내 빚도 많은 상황이었다.
끝까지 무책임하고 우리를 기만한 엄마와,
내가 가장 힘들 때 모른 척했지만 결국 그 모든 부담을 안게 된 언니. 이 모든 짐이 버거웠다.
결국 나는 남편에게 죄인이 되어 우리 부부의 대출 통장에서 돈을 꺼냈고,
언니는 어렵사리 마련한 미국 생활비를 모두 토해내어 나머지를 채웠다. 그렇게 우리는 또 엄마의 빚을 갚았다.
이번 빚이 이전과 달리 더 깊은 상처가 된 건, 엄마의 기만 때문이었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나는 내가 자라며 보아왔던 엄마의 모습을 가슴 한편에 늘 품고 있었다. 우리를 극도로 고생시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나에게 '키워준 은혜'와 깊은 '명예 있는 사람'이었다.
키워준 은혜는 평생 사라지지 않겠지만, 더 이상 내게 엄마는 명예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그 어떤 상황에서든 돈에 관해서만큼은 엄마를 믿지 않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