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의 전화
언니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엄마 친구에게서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너희들, 너네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니?"
아무리 그래도 키워준 은혜가 있는데,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는 너희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연락했다고 하셨다. 엄마가 또 그 친구분께 돈을 빌리려 했던 모양이었다. 자식들에게는 손 벌리기 미안하니 너에게 벌린다고 했다고.
그 친구분은 나름대로, 제때 갚지도 않으면서 매번 빌려달라는 엄마에 대한 스트레스와 걱정을 안고 언니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자식들이 뻔히 알면서 모른 척하나 하는 괘씸한 마음도 있으셨을 것이다.
언니는 모두 털어놨다고 한다. 언니 이름으로 된 마이너스통장 1억 원, 내가 엄마를 위해 신용대출·카드론·보험대출까지 영혼을 끌어다 드렸던 1억 원, 동생 이름으로 된 카드론,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벌었던 수입 전부를 엄마에게 드려왔다는 것을.
나는 빚만 잔뜩 짊어진 채 결혼한 것이었고, 언니는 모아둔 돈 한 푼 없이 오로지 장학금에만 의존해 미국에 가는 것이라고.
엄마 친구는 언니의 얘기를 다 듣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너희가 그렇게 살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고. 그리고 언니가 미국에 가기 전에 갖고 있던 달러를 언니 손에 쥐여주셨다고 했다. 이거라도 좀 보태 쓰라고 하시면서.
언니가 그 친구분과 나눈 얘기를 엄마에게 전했다.
전하자마자 엄마 입에서 나온 말은,
"아… 이제 동창들도 다 알았겠네."
엄마 친구들에게 우리가 모른 척하는 나쁜 자식들로 비춰지게 된 것,
엄마 친구도 눈물이 날 만큼 우리 사정이 처참했다는 것,
그 모든 걸 만들어낸 게 엄마 자신이라는 것.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 엄마에게 가장 신경 쓰인 건 엄마의 체면이었다.
모든 걸 망가뜨린 것이 엄마 자신이었음에도, '아무도 모르면' 괜찮은 거였나 보다. 해수면 위로 올라오지만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흙탕물 속에서 온몸이 썩어 들어가도 괜찮은 게 엄마의 방식인 걸까.
늘 겉보다 속을 생각하는 나와,
속보다 겉을 생각하는 엄마가 이렇게나 다르다는 걸 가장 선명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나는 언니 얘기를 듣고 잘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창들이 모두 사실을 알게 돼서 다행이었다. 엄마가 돈을 빌릴 수 있는 곳들을 모두 막아야 그나마 추가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손발이 모두 묶여야 엄마는 사업을 포기할 것이었다.
이번만 막으면… 다음에 많이 벌면… 우리 눈에 엄마는 다음 판을 외치는 도박꾼 같았고, 그 말들은 진실에 눈을 가린 채 덧없는 미래만 부르짖는 허망한 절규로 들렸다.
그 순간만큼은, 엄마의 좌절이 나에겐 희망이었다.
키워준 은혜의 무게
키워준 은혜. 그게 무엇이라고. 나는, 우리 형제는 엄마를 버릴 위인들이 못 됐다.
완전한 절연이라는 선택지는 늘 있었다.
블로그에 하소연을 쓸 때면 마음 좋은 이웃분들이 비밀 댓글로 본인의 경험담과 함께 절연해야 한다는 값진 충고를 해주셨다.
모두 감사했고, 맞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심하게 어긋나기 전의 기억들이 있었다. 내가 일곱 살 때 아빠를 교통사고로 잃고, 전업주부에서 갑자기 애 셋을 키우는 사람이 되어 온몸이 닳도록 일하던 모습. 그 모든 힘든 순간들을 혼자 버텨내던 모습들.
돈이 넉넉지 않았지만 내 눈에 문제가 생기자 당시 보험도 안 되던 수술을 무리해서 해줬던 것, 어디 가서 기죽지 말라고 늘 좋은 걸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려 애쓰던 것, 밤새워 운전하던 모습. 그런 것들이 내 안에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엄마가 이렇게 망가진 건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약했던 엄마가 애 셋을 잘 키워보려고 억지로 강해지고 무리하다가, 그 과정에서 어딘가가 망가져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황된 도취와 무리한 사업 강행의 시작은 우리를 위한 마음이었다.
인생에서 좋은 것만 취하고 별로인 것은 버릴 수 없듯, 이 모든 게 다 나의 인생이듯, 나에게 엄마도 그랬다.
그렇게 감사했던 모습도, 지금의 어긋난 모습도, 모두 나의 엄마였다.
그래서 나는, 다 커서 지독하게 당했던 돈에 대한 배신과 기만을 모두 키워준 은혜로 덮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엄마를 안고 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언니는 똑똑한 장녀지만 해외에 있고, 엄마에게 특히 마음이 약했다. 동생은 정말 착하지만 막내라 마냥 순하기만 했다. 결국 칼을 제대로 쥐고 칼춤을 출 망나니 역할은, 제일 독하고 냉정한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기왕 할 거, 제대로 춰보자. 다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