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훔쳐 본 죽음의 순간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을 보고

by 하일

나는 같은 콘텐츠를 두 번 소비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쉽게 싫증이 나고 질려 하는 편이라서.


그러다 4년 전에 봤던 영화를 우연히 다시 마주했다.


바로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28기: 격돌! 낙서왕국과 얼추 네 명의 용사들>이었다.


4년 전에는 그저 유쾌한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소비했던 영화. 다시 본 영화 속에서는 찰나 동안 죽음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마음에 파랑을 하나 남기고 스쳐 지나갔다.


그때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


하늘 위의 왕국이 붕괴하고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소멸하려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상실감과 고요함.


특히 주인공이 존재의 소멸을 마주하는 장면에 이르자 나는 실제로 '죽음의 순간'을 찰나 동안 바라본 듯한 강한 정서적 충격을 느꼈다.


숨이 턱 막히고 시간이 정지된 듯한 서늘함.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색감으로 표현된 이 순간은, 분명히 사후세계를 은밀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두 인물의 담담한 대화 속에서는 초연함과 알 수 없는 씁쓸함이 있었다.


과연 내가 죽을 때 마주할 감정일까. 사뭇 두려워졌다.


울고 싶지 않아 눈시울만 붉힌 채 고개를 숙인 부끄러운 오후였다.


왜 4년 전이 아닌 지금, 이 장면에서 멈춰 서게 되었을까.


그때는 그저 낙서가 지워지는 것을 허구와 환상으로만 치부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쉽게 싫증 내고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습관이 '소멸'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삶이 지워질까 봐, 기억이 멈출까 봐, 끊임없이 새로운 '낙서'를 덧칠해 왔던 것은 아닐까.


결국 이 영화는 나에게 찰나의 죽음의 순간을 응시하게 하고, 결국 살아가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했다.


이제 나는 도망치지 않고, 이 영화가 남긴 물결을 내 삶의 방향을 비추는 빛으로 품고 나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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