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사회적 자아와의 괴리감

by 하일

집에 돌아가는 길, 마음 한편이 사무치게 불편했던 적이 있었다. 왜 그토록 불편함을 느끼는지 알 수 없어 한참을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그저 관계 과잉에서 비롯된 불편함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저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탓에 집으로 돌아서는 길이 아쉽고 외로웠던 것으로만 치부한 것이다. 몇 년 동안을 그 사고에 머물러 있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관계에 의존한 나날들이 있었으니까.


'나'라고 해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오롯이 '나'를 바라보아야 찾을 수 있는 것들을 자꾸만 타인에게서 찾는 몹쓸 버릇이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지금은 혼자 지내야만 하는 시간을 담담히 마주하고 있다. 미룬 일들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노래도 부르고 공부하며 평범에 썩 멀지 않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북적거리는 인파를 헤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끊임없이 나는 그 인파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착오였나.'


...


아직도 내 마음의 미제를 풀어내지 못했다.


다만, 어렴풋이 추측하는 바는 '페르소나'에서 오는 탈진이 아닐까 생각한다.


집에서의 나는 보통 사색에 잠겨 창작 활동을 즐기곤 한다. 일종의 정화 과정이며 재정비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밖에서의 나는 사람들을 이끌고 모임을 주도하며 누군가의 기분을 섬세하게 파악하는 편이다. 필요 이상의 배려를 해주기도 하고, 부탁에 대한 거절을 대차게 할 수 있는 편도 아니다.


누가 봐도 소모적인 페르소나이다. 지극히 타인 지향적인 사회적 자아를 분출하고 다니는 탓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침전하는 것이다.


결국 그 페르소나를 위해 방전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충전하는 과정이 숙명처럼 느껴지는 것 또한 거듭 탈진하는 연유가 되기도 하겠지.


그 과정이 버거워 다시 인파로 흘러 들어가는 쪽을 선택하는 연유는, 결국 '나'를 마주하기 싫은 것 아닐까. 타인에게 인정받는 '자아'에 심취한 게 아닐까. 소모된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는 길이 멀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이렇게 나는 살아간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냐는 물음이 생긴다.


당신의 대답이 궁금하다.


어떻게 지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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