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2025년 10월 14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우울이 내 곁을 맴돌다 공기에 스며들었다.
그러다 차츰 내 폐로 들어와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숨이 막혔다.
몇 년 만에 느끼는 아주 깊은 우울이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을 적에 느꼈을 법한 깊이였다.
그렇게 한동안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우울에 잠식되어 시들어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여버린 해야 할 일들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게 아마 오후 4시였을까.
나의 사고에서 출발한 이 우울은 결국 신경 작용 중 하나라는 걸 안다. 그래서 이 지독한 호르몬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헬스장에 가서 무작정 러닝을 뛰기로 했다.
그리 재미있지 않은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인터벌 러닝을 하니 어느새 숨이 끝까지 차올랐고 목이 쓰라릴 정도로 호흡이 가빠왔다.
그렇게 러닝을 마무리하고, 나는 도망치듯 무작정 아끼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몇 년 전에 나와 함께 오랫동안 동거를 했던 하우스메이트이다. 그의 대학 입학 시점, 어느 이후부터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리고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1년 가까이 생활하며 마음을 나눴던 친구이다.
그는 내가 가장 우울했던 시기 중 반절 남짓을 바라봤던 사람인지라, 무의식적으로 내가 그를 찾았던 게 아닐까.
그렇게 내가 우울에 빠져있다는 걸 조심스럽게 알리자, 그는 여러 농담들을 던지는 동시에 우스갯소리로 '내가 절대 죽지 못하는 이유'를 만들라고 했다.
'자신의 앞으로 유산을 상속하겠다는 유서를 작성하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울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유년부터 20대 중후반까지의 전반적인 감정은 우울이었다.
마음이 녹아내려 증발할 정도의 우울이었다고 설명하면 될까.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우울을 '힘의 원천'으로 삼아 창작 활동을 하며 살아갔다. 아마 불가항적인 우울에 대한 치열하고 처절한 생존 방식이었겠지.
그와 동시에 '감정에 닿아있음에 감사하자'라며 긍정적인 사고를 억지로 주입했었다.
그때는 그랬지.
오늘, 나는 이 우울을 매우 적극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지금의 나에게 전반적으로 필요한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시 유년과 20대의 사이 그 어느 지점의 씁쓸함을 맛보기 전에 지레 겁을 먹은 탓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그 신경 작용 자체에 대한 인간 본능의 거부감이었을까.
그 어느 쪽이라고 한들,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지금은 우울하지 않다. 그 우울이 불과 몇 시간 전에 나를 잠식했음에도 말이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우울하다고 혹은 죽고 싶다고 선뜻 말을 뱉어내는 게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 말인지.
그리고 오늘 깨달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내 부정적인 모습마저 안아주고 있었다는 것을.
...
한참 우울감이 심하게 몰려왔을 시절에 나는 '우울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고, 사람들의 위로는 그저 상투적이고 형식적인 위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가심과 진심이 섞인 위로들을 전부 듣고 있지 않았던 건 바로 '나'였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 따위는 믿지 않는 편이다.
우울을 나누는 건 누군가에게 반드시 짐이 된다.
그러나 그 짐을 같이 짊어지려고 애쓰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오늘 사무치게 감사했다.
불쑥 내 집에 찾아오겠다는 당신.
내 일정을 집요하게 묻던 당신.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당신.
웃음을 머금도록 농담을 던지는 당신.
울고 싶으면 울라고 말하는 당신.
보고 싶다고 말하는 당신.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