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번지점프와 이런저런 생각들

by 이유진

친구와 둘이서 호주에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하버브리지 클라이밍이나 스카이 다이빙, 사막투어 같은 것들이 인기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사막 투어만을 했고, 신나게 모래썰매를 탄 기억이 난다. 스카이다이빙은 사실 무섭기도 했고, 다리를 걸어 올라가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비용이 비싼 것도 한 몫했다. 물론 돌아오고 나서는 약간의 후회를 했다. 또 다른 친구가 호주에 가서 스카이다이빙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할 때에 나도 그때 한 번 해볼걸 싶었다. 그래도 막연히 언젠가는 한 번 해보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기에 그리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혼자 혹은 친구와 다니는 여행은 내 인생에서 잠시 제처 둔 지금이라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잊고 살고 있는 지금, 우연한 기회로 번지점프를 하게 됐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몸으로 하는 것에는 웬만큼 한다는 자신감이 있는 편이라 번지점프의 두려움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게다가 언젠가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잘됐다는 생각으로 자신만만하게 도전에 참여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번지점프대를 보니 꽤나 높은 높이에 깜짝 놀랐다. 무한도전, 1박 2일 등 유명한 프로그램에서 다녀간 곳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번지대에서 다소 과장된 몸짓을 하며 뛰기를 거부하던 출연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당시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조금 과장이 섞였다고 생각했다. 뭘 저렇게 까지 오버할 일인가 싶었고, 내가 만약 뛴다면 슈퍼맨처럼 멋진 포즈로 뛰어내릴 수도 있겠다는 무모한(?) 생각도 했다. (영화나 CF 같은 데서 봤던 절벽에서 멋진 다이빙을 하는 청년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여러 명이 대기하고 있던 가운데 먼저 호명됐을 때에도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나갔다. 나는 진심으로 한 번에 망설임 없이 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몸으로 하는 것에는 자신 있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튼튼한 줄이 있는데 괜한 걱정 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런데 번지대에 선 순간 내가 완전히 틀렸구나 싶은 생각이 딱 들었다. 그야말로 눈앞이 아찔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감에 발끝이 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진행하시는 분으로부터 들었던 번지 자세(몸을 세운채로 그대로 앞으로 떨어지기)는 가당치도 않는 말이었다. 너무 무서웠다. 그것은 어떤 공포였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이야기를 하는데, 번지 경험이 있는 남편은 '죽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무서웠냐'며 웃으며 나를 놀렸다. 맞다. 죽는 것도 아닌데, 나는 무엇이 그리 무서웠을까.


결국 나는 일보 후퇴했다. 일단 다른 사람들이 먼저 뛰도록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렇게 사람들이 뛰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내려가시는 교관분을 붙잡고 어떤 자세로 뛰는 게 좋은지(?)를 재차 질문했다. 그분은 나 같은 사람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는 듯이 무미건조하게 한 마디 하시고는 내려가셨다.


자세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뛰면 돼요. 용기를 내야 해요. 그게 중요해요.



맞다. 그게 중요했다. 결국 내게 필요한 것은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였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뛰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 역시 나와 비슷했다. 두려움과 공포감이 얼굴에 서려있었다. 하지만 순번이 되자 앞으로 전진했고, 놀랍게도 한 사람을 제하고는 모두가 한 번에 점프를 성공했다. 앞서 말했던 그 자세로 말이다!


나는 그 모습들을 보면서 살짝 충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얻었던 것도 같다. 혹은, 어쩌면 못 뛰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냥 뛸 걸 하고 후회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준비하는 동안 용기를 내야지라는 마음으로 '애도 둘 낳은 아줌마가 뭘 못하겠어!'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사실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공포감이었으니까) 어찌 됐든 나는 한 번 더 점프대에 섰고, 정 못하겠으면 밀어주겠다는 아저씨의 말을 듣자마자 혼자 뛰겠다고 하고는 그대로 쓰러졌던 것 같다.


뛰어내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풍경을 봤는지는 모르겠다. 처음 뛰어내릴 때에는 그야말로 아무런 소리조차 낼 수 없었고, 이제 괜찮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한번 튕겨 올라가면서 너무너무 무섭다는 생각과 함께 그때부터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한 번 떨어지고 나면 그다음은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것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됐다. 그냥 더 무서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너 대단하다. 근데 어땠어? 뛰고 나니 개운해? 어떤 희열이 있었어?"

"그냥... 잘 모르겠어. 그냥 무섭기만 했어."


맞다. 그 어떤 개운함도 재미도 없었다. 뛰어내렸다는 짜릿함? 희열? 그런 것도 없었다. 자신감을 얻었냐고? 그렇지도 않다. 그냥 무서웠고, 어떻게 뛰었을까 싶은 생각만 들었다. 다시 뛰라고 한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사실 뛰어내렸을 당시에는 다시는 뛰지 않겠다는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또 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며칠 지나고 한 번씩 번지대에 섰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되는데, 처음 그 자리에 섰을 때 느꼈던 서늘한 공포감은 조금 가신 것 같다. 한 번 더 뛸 수도 있겠다는 겁 없는 생각들을 하게 됐다.




"대단해요. 보통 한 번 섰다가 포기하고 다시 뛰는 사람은 잘 없다고 하더라고요."


뛰고 내려왔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번지점프를 하고 그 어떤 재미나 희열을 느낀 것도 아니고,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된 것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첫 번째 도전으로 뛰지는 못했지만 다시 도전해서 뛰어내렸다는 그 사실이다. 그리고 그 팩트가 주는 힘이 있음을 믿을 뿐이다. 공포감을 이겨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뛰어내렸다는 것은 처음 느껴본 그 공포감을 이겨냈기에 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그 공포감을 간접 경험(영화 같은 매체)이 아닌 직접 경험으로 느낀 것은 아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직도 내가 그 순간 느꼈던 공포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단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하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결코 죽을까 봐 겁났던 그런 공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죽을 걱정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뛰고 나서 친구들에게 이리저리 알렸는데, 대부분이 대단하다고 했지만 '나는 안 한다'는 반응이었다. 그걸 왜 하냐는 친구들의 말에, 글쎄, 뭐라 해줄 말이 없다. 나는 왜 했을까? 그냥 이런 걸 하고 싶은 사람이었을까? 사람들은 왜 이런 것들을 하려는 걸까? 내가 느낀 공포감은 무엇이었을까? 번지 한 번 뛰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만 많아졌다. 글을 쓰다 보니 궁금증이 더 많이 일어난다. 아직 명쾌한 답변을 줄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내가 번지를 뛰기 위해 느꼈던 시행착오에 대해서는 술술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