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해야 할 일

글쓰기와 SNS

by 이유진

요즘 들어 가장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는 기억이 날듯 말 듯 한 순간의 간질간질함이다. 한 번씩 친구와 대화를 할 때면 그녀의 세세한 기억력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는데, 내 기억력이 무딘 건지 친구의 기억력이 뛰어난 것인지. 친구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는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도 책을 읽다가 학창 시절 함께 등하교를 했던 친구 한 명이 떠올랐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한 참을 궁리하다가 그 친구에게 SOS를 보냈다. 당시를 회상할 수 있는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적는 가운데 유레카처럼 희미했던 그 이름이 번쩍 떠올랐다. 스스로를 기특해하면서 그 이름이 맞는지 여부에 대해 물어보니 친구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에피소드 하나를 더 이야기하면서 다시 한번 나를 놀라게 했다. 새삼 친구의 기억력에 감탄함과 동시에 흐려져가는 기억들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친구들과 추억 이야기를 할 때면 나만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그저 웃고 넘겼는데 요즘 들어서는 이거 좀 문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만큼 나의 기억력에 괜한 걱정이 들곤 한다. 왜냐면 남편과 대화를 가운데도 종종 그런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과의 연애 때의 일들을 다 기억한다고 장담하는데, 남편은 내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답답한 듯 나를 보지만 정말 기억이 안나는 걸 어찌하겠는가. 나 역시 답답할 노릇이다.


엄마가 한때 '건망증'으로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던 때가 있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뭔가가 없어지면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에게 '엄마, OO 어딨어?'라고 묻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엄마의 대답이 '모른다'가 되면서 엄마에게 어떤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걱정했었다. 다행히 식구들의 걱정과 잔소리(?) 덕분에 엄마의 건망증은 많이 좋아졌지만 요즘 내가 엄마의 건망증이 '남의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가벼운 문제 중의 하나라고 여겼는데, 그때 생각난 것들을 그 즉시 행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까먹게 되는 일들이 점점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기록의 중요성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나 같은 사람이 정말 기록을 해야 하는구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그제도 그랬다. 아이들을 재우려고 누워있다가 문득 쓸거리가 생각나서 혼자 키득대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물론 휴대폰을 켜서 끄적여 놔야지 했지만 혹여 잠들기 직전의 아이들이 깰까 싶어서 기다렸는데 내가 먼저 잠들어버릴 줄이야. 아침에 일어나니 당연히 기억나지 않았다. 뭔가 간질간질하게 알듯 말 듯 했지만 결국 기억해내지 못했다. 기억나지 않는 아쉬움을 이루 말할 길이 없지만 어쩌랴. 다른 걸 쓸 수밖에.


불과 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글쓰기가 나의 천직인 양, 이제야 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는 미친듯한 열망으로 글쓰기에 매진하던 때가 있었다. 둘째가 낮잠이 들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말 제외) 어쨌든 책상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곤 했는데, 요 한두 달 새에 많이 느슨해진 게 사실이다. 막상 자리에 앉아 있으면 뭐라도 쓰게 되는 게 사실인데, 모든 것이 그렇듯 시작하기가 자리에 앉기 까지가 괜히 미루고만 싶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아마 멋진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라는) 한 두 차례 빼먹게 되기가 일쑤였다. 어찌 됐든 책상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렸던 그때에는 '작가의 서랍'에 이리저리 끄적여 놓은 글들이 한 무더기는 아니더라도 5편 정도는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중에서 하나를 다듬고 다듬어 일주일에 한 편씩 발행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근래에는 <꿈이 있어 다행이야> 외에는 발행하는 글의 편수가 확연이 줄어들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또 번뜩 들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지만, 눈을 붙이고 싶지만 일단은 써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뭐라도 써놔야지 또 쓰게 된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거지같이 시작하라는 말처럼 뭐라도 끄적여 놔야지 이후에 쓸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것을 다시 배우게 됐다. 맨땅에 시작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시작의 두려움


아무 글씨가 없는 '흰 바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무엇을 적을지 몰라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나를 자리에 앉게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수정해서 쓸 것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자리에 앉지 못하게 만들었다. 뭐라도 끄적여 놓은 것들이 있을 때에는 조금 살을 붙이고 이리저리 구슬려가며 데코레이션을 하게 되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그저 하지 말자는 생각이 고개를 먼저 들었다. 사실 지금도 글 하나를 다듬으면서 갑자기 생각난 이 글을 또 까먹을까 봐 얼른 화면을 옮겨서 마구잡이로 쓰고 있는 중이다. 초고를 쓰는 것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당장 발행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걸 또 다듬으려면 얼마간의 인내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써두면 결국 어떻게든 다듬고 다듬어서 발행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쓰게 된다.


뭐라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기특하다 여기기로 했다.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을 나의 글쓰기 시간으로 못 박아 놓았던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칭찬하기로 했다. 그리고 너무 잘 쓰려고 애쓰려는 마음을 좀 더 내려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애를 쓰면 쓸수록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것들이 더 눈에 띄고, 그럴수록 자신감은 떨어져 괜히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스멀스멀 기어올라 오기 때문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머리보다 손이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사실, 일정 시간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만을 기억하기로 했다.


새로운 SNS의 도전


한 마디 덧붙이자면 얼마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블로그며 유튜브를 하면서 SNS가 더 이상 낯설지는 않았지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또 다른 영역처럼 느껴져서 손대기가 두려웠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시작이 어렵지 막상 해보니 엄청 이상한(?)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인스타에 빠지는 지도 조금 알게 됐다. 인스타는 정말 간편함이 무기랄까? 블로그든 유튜브든 나의 SNS는 한 편을 제작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걸리는 데 반해 인스타는 굉장히 즉각적이었다. 그래서 아쉬웠던 육아일기를 인스타를 통해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요즘 조금씩 올리고 있다. 그냥... 아이들을 키우면서의 일들이 나만 아는 게 조금 아쉽다고 할까? 적어도 우리 아이들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내 기억에서 조차 사라질 순간들이 아쉬워져 조금이라도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예전처럼 거부감이 들지는 않게 됐다. 그저 기록해 두지 않으면 먼지처럼 흩어져버릴 기억을 잡아주는 훌륭한 도구라는 것에 한 표를 주기로 했다.


SNS를 종용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스타를 홍보하는 글도 아니고. 그저 나는 기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가장 요지는 글쓰기이고, 요즘 글 쓰는 일을 소홀히 한 나에게 주는 경고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날리는 것뿐 다른 이유는 없다. 이렇게 또 써두면 한 번씩 나태해질 무렵 다시 읽으며 정신이 번뜩 들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누가 나에게 채찍질하는 사람이 없으니 나라도 하는 수밖에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저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 글쓰기나 SNS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보조제'임을 알리고 싶다.





*표지 사진 : Photo by Fredy Jacob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