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찾아온 날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의 흔들거림과 온 사방팔방 떠다니는 나뭇잎들의 향연에 무서워서 집에만 있었더랬다. 그러다 밤이 되니 너무 답답해서 혼자 슬그머니 집을 빠져나와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아무도 없을까 걱정했던 우려와 달리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풍경을 보며 나만 태풍이 무서웠던 건가 싶어 헛웃음이 살짝 나왔다. 그러면서 카페에 있는 사람들을 잠깐 둘러보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서 뭔가를 열심히 만드는 모습이 보였다. 대놓고 쳐다보기는 뭐한지라 책을 읽으며 슬쩍슬쩍 보았는데 까만 바탕에 '박지민 아내'라는 분홍 형광 문구가 빛나는 플래카드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박지민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가수라는 건 알 것 같았다. 정성스럽게 오리고 붙이는 모습이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났다. 까만색 바탕 뒤로 보이는 형광색의 색지가 확연히 눈에 띄었다. 그 위로 혹여나 스크레치가 날까 혹은 관리를 잘하기 위해 덧 데어 붙인 얇은 코팅용 비닐도 참 정성스러웠다. 내가 왜 이렇게 자세히 아냐면 나도 그 언젠가 만들어 본 기억이 나기 때문이었다.
중간중간 만든 카드를 들고서 한 명이 서서 보고 또 수정하고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신나는지 키득키득 웃어대는 모습이 그리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 두 학생들을 보면서 눈으로는 책을 읽었지만 어느새 머릿속에는 오래전 나의 학창 시절이 절로 회상되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1997-8년도의 그때. 당시에는 아내라는 호칭보다는 대부분이 OOO'부인'이라 칭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울에 오면서 신기했던 일 중의 하나는 연예인들을 종종 마주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구에서는 연예인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특히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직접 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서울 아이들에게는 익숙했을지 모를 (소위 말하는 라디오나 TV 가요 프로그램의) 공개 방청을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TV 속의 오빠들을 더욱 동경했다. 주로 TV 본방을 사수했고 그걸 또다시 보기 위해 열심히 녹화를 하는 것이 덕질의 기본자세였다. (그 많던 녹화 비디오는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눈물의(?) 모뎀을 사용하던 시절, 엄마 몰래 전화선을 뽑고 그 자리에 컴퓨터와 연결되는 선을 꽂아서 인터넷을 했다. 파란 바탕의 천리안 혹은 유니텔과 같은 PC통신에 접속하여 팬클럽 동호회방으로 들어가면 화면 가득 (오빠들의 사진이 담겨 있을) 목록들이 주욱 나열됐다.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오빠들의 모습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로딩되는 과정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전체 사진이 완성되기까지의 시간이 어찌나 길었던지... 혹여나 통신 중에 전화가 와서 엄마가 알아챌까 두려움에 떨며 안절부절했던 수많은 날들. 통신을 하면 '지직-지직-' 전화가 먹통이 되었던 시절이었으니 늘 심장이 쫄깃한 채로 접속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니 광통신 케이블 개발로 집전화와 별개로 인터넷을 따로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고 PC통신도 윈도 버전이 생겨났다. 그야말로 천지개벽할 만한 일이 일어난 것!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무제한으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지면서 지방순이들에게 '덕질'의 새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모뎀 사용 시 전화비 폭탄 걱정에 마음 졸이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광통신이라는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잠자기 전에 한 번만 봐야지 하며 접속하여 날밤을 지새우던 '덕질'의 날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물론 그때는 '덕질'이라는 용어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 지방 팬이 서울 공연에 갈 일이 생겼다. 사실 나는 서울까지 갈 생각은 못했는데, 당시 반 분위기가 '지금 아니면 언제 가나? 이번에 다 같이 가보자!'는 것으로 흘러갔다. 이번 기회에 서울 한 번 가보자며 콘서트 표를 예매하기로 계획을 세웠고, 지금은 외국계 은행으로 바뀐 은행 앞에서 친구들과 전날부터 밤을 새우며 각자 표 한 장 씩을 구했다. 오프라인으로 밤새 줄을 서서 표를 구매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정말 그 줄에 서 있었던 것이 맞나 의심될 만큼 그 옛날의 기억이 의심스럽지만, (응답하라를 보면서도 내가 정말 저기에 있었던가 하며 의심했다.) 함께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표를 구하고 팬클럽에서 마련한 단체 버스 자리도 예매했다. (그 콘서트에 가기 위해 엄마를 얼마나 졸라댔던지,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허락한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사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로서는 당시의 일들이 드문 드문 떠오를 뿐이다. 그 가운데 기억하는 것들은 팬클럽에서 배부하였던 단체옷을 입고 야광봉을 흔들며 (대형 스크린이 없었다면 보지도 못했을 오빠들을 보면서) 열심히 노래를 따라 불렀던 것. 공연 중에 사고가 있었는데 그 사고 때문에 콘서트 장이 눈물바다가 됐던 것. 그리고 아쉬운 콘서트가 끝나고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던 몇몇의 친구들이 (그 깜깜한 밤에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오빠들 숙소에 한 번 가봐야 한다고 목놓아 외쳐댔던 것. 그중에서 일부 친구들이 대구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지 않고 숙소로 가봐야겠다며 난리 치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나마 이성을 갖고 있었던 나와 또 다른 친구들이 그건 안 될 일이라며 얼른 버스에 타기를 종용했고, 우리 모두는 다행히 대구로 다시 돌아가는 버스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정말 같이 버스를 안 탈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정말 겁이 났었다.)
까만 밤, 드문 드문 차가 다니고 콘서트 장 외에는 조용했던, 붉은 가로등 때문에 더욱 고요했던 그 밤. 잠실 운동장을 가득 매웠던 함성소리가 귀에 채 가시지 않은 채 우리는 대구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누군가는 눈물을 훌쩍이며, 누군가는 피곤해서 잠이 든 채로 그렇게 다시 우리들의 집으로 돌아왔다. 콘서트가 저녁에 시작했던 탓으로 (막상 서울에 올라왔지만 서울 구경은 전혀 하지도 못한 채) 서울의 밤 분위기만 느끼고 내려갔던 나의 중학교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9월이었다.
콘서트의 기억은 단편이지만 사실 중학교 학창 시절 내내 반 친구들과 함께 했던 오빠들을 향한 덕질의 시간들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우리의 오빠들.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전혀 몰랐지만 우리는 그들로 인해 똘똘 뭉쳤고, 그들 때문에 울고 웃으며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언제나 밤하늘 속의 별처럼 먼 존재였지만 또 한편으론 우리 일상 속에 늘 함께 했던 그들이 있어서 그 시절, 우리는 참 행복했었다.
사족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학생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카페에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촌스럽게도 고등학생 때 까지도 카페는 어른들이 가는 곳이라는 생각에 한 번도 들러본 적 없었는데 요즘 카페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참새방앗간 같은 곳이 되었다. 마치 파리의 흔하디 흔한 카페처럼 말이다. 세상 늙은 사람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세상이 많이 바뀐 게 절로 느껴진다.
두 여학생은 콘서트를 잘 보고 왔을까? 그 시절 오빠들을 향한 열정은 다 어디로 갔나 싶을 만큼 나는 요즘 아이돌 가수들이 누가 누구인지도 모를 만큼 늙은이(?)가 돼버렸다. 그저 그 두 여학생을 보면서 잠깐이나마 옛 추억여행을 한 것이 즐거울 뿐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가 있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빨래를 개고 나는 소파에 누워서 TV를 틀었던 철없던 그때. 리모컨을 들고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데, 내 귀에는 낯선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는 '7080 콘서트'가 방영될 때면 잠깐만 이것 좀 보자고 황급히 나를 제지하던 엄마. 이런 옛날 노래를 왜 듣느냐며 궁시렁 대는 나의 말은 공중에 흩어지며 천천히 노래를 따라 부르시던 엄마가 지금에 와서 너무 격하게 공감이 되는 나. 나는 이제 늙어버린 것일까?
*표지 사진 : Photo by Anthony DELANOIX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