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아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마드리드 공항에 내려서 우리가 걷기 시작할 사리야역으로 가기 위해 차마르틴역으로 이동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역을 배회하자니 대학 시절 배낭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배낭을 가득이고서 돌아다녔는데, 그때 그 경험을 또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깜깜한 밤, 역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열차의 문을 여는 순간, 지난 스페인 여행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야간열차를 타고 이동할 거라는 안내를 들었을 때에는 내가 그런 걸 탔었나 싶었는데 그 내부의 모습을 마주하니 마치 어제 일인 양 생생하게 그날의 기억이 펼쳐졌다. 그때의 나는 머리가 참 길었는데.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8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사리야역에 도착했다. 깜깜한 새벽, 집을 나서던 그날처럼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이른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 오픈한 카페가 있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었다. 부슬비가 어느새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의를 입고 각자 단단히 장비를 마치고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깜깜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순례길의 첫 시작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짐을 꾸릴 때에는 판초 우의와 비닐 장화가 꼭 필요할까 싶었다. 내 기억 속의 스페인은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 정도의 기온에 높고 푸른 하늘이 너무도 예뻤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카페(까친연)를 검색하면서 내가 가는 산티아고는 내가 갔었던 바르셀로나, 그라나다와 같은 스페인 남부 지방이 아닌 북부지방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걷는 길은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고산지대)이지 산티아고 그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비록 그들의 무게가 있을지라도 예측할 수 없는 날씨 가운데 (만에 하나라도 비가 내린다면 없어서는 안 될 장비였기에) 이왕 챙겨가는 거 한 번 정도는 사용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그런데 그들이 걷는 5일간 내내 나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첫째 날은 그래도 오전에 비가 그치면서 맑은 공기가 가져다주는 예쁜 풍경이 있었다. 정말 맑고 깨끗한 공기에 드디어 내가 순례길을 왔구나 하는 들뜬 마음이 있었다. 게다가 배가 고플 때쯤 발견한 멋진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던 점심 탓으로 그리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걸을 수 있었다. 물론 비는 그쳤대 내렸다를 반복했고,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는 비바람 소리는 봄 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된 것 마냥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문제는 둘째 날이었다. 그날은 시작부터 비가 내렸다. 오전 8시경이었지만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깜깜한 밤처럼 느껴졌다. 낙엽이 뒤덮인 산길을 걷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나 혼자서는 걸을 수 없는 길이었다. 작은 랜턴과 휴대폰 조명을 켜고 걸으시는 분들에게 의지하면서 그야말로 앞사람 발만 보면서 빗물로 인해 질퍽 거리는 산길을 걸어갔다. 한 30분 정도 걸었으려나. 드디어 해가 뜨면서 여명이 비치기 시작했다.
비는 조금씩 그치는 듯했으나 끊이지 않고 내렸고, 이 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인지 우리나라 시골 마을 어디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수밖에 없었다. 비바람은 잠시도 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다들 지쳐가기 시작했다. 배낭은 무겁고, 발은 아프고... 춥고 배가 고팠다. 게다가 비수기라 그런지 문을 연 카페테리아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간신히 발견한 간이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옷을 말리고 자판기 빵과 과자로 배를 채웠다. 그러는 사이 새로 사 왔던 트레킹화가 맞지 않은 탓으로 첫째 날 막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걸었던 동료 한 분은 20만 원 상당의 그 트레킹화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다들 예쁘고 새것인 그 운동화를 아까운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우리들 중 누구도 그 운동화를 선뜻 집어 드는 사람은 없었다. 배낭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버린 통에 오전인지 오후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힘겹게 걷던 동료 중 한 분은 결국 물집이 생겼고, 점심을 먹으러 들렀던 식당에서 물집을 터트리고 테이프로 벤딩 처리를 했다. 그리고 배낭이 너무 무거웠던 탓으로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의 권유로 갖고 있던 책 한 권을 식당에 두고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허리 디스크 유경험자로서 여행 전, 최소한의 짐을 싸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베르게에 한 번 묶어보겠다는 생각으로 가져온 침낭이 있어서 괜히 가져온 것일까 고민했는데, 내 가방의 무게는 그 동료의 무게에 비하면 새털처럼 느껴졌다.
다들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신발을 벗고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는 것에 안도했지만 농담인 듯 아닌 듯 남은 길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비가 도무지 그칠 기새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발이 너무 아프다는 것. 하지만 멈출 수도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에 뒤이어 동양인 가족이 비에 젖은 생쥐 꼴로 식당에 들어섰다. 중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자녀들이 대단해 보였다. 엄마 아빠 원망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이 언뜻 스쳤지만 그건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뱃속에 따뜻한 것이 들어가니 몸 상태가 좀 나아진 기분이 들었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다시 길을 떠났다. 발이 너무 아픈 탓에 신발 끈을 조금 단단히 동여매어 보았다. 한결 발이 덜 아팠다. 등산화를 구입할 당시 사장님은 너무 꽉 메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조언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 일이 이후 참사를 불러일으킬 줄이야.
어쨌든 계속 가야만 했다. 도대체가 비는 그칠 줄을 몰랐고, 바람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최악이라면 최악일 수 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저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나는 두 명의 언니들이 걱정되었다. 두 분의 가방 무게가 너무 무거운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분은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던 분이라 그 고통이 어떨지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파리한 안색을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걱정이 일었다. 사실 그분들은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하신 분들이라 나보다 더 잘 걸으실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 날 그들은 너무 지쳐 보였고, 자꾸 뒤처지기 시작했다. 뒤쳐지는 그들이 걱정되어 뒤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들의 걸음걸이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력이 체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했던 사람이고 꾸준하게 운동을 했기에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는 체력이 좋은 편이다. 지난해에도 마라톤 하프코스에 도전하기 위해 근 7-8개월 정도를 꾸준하게 달리기 연습을 했고 하프 코스를 완주했다. 하지만 하프코스를 뛰면서 풀코스에는 절대 도전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풀코스를 뛰신 그분들은 나 보다 훨씬 더 잘 걸으리라 예상했고, 길을 걷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뒤편에서 그들을 따라가며 걷는 모습을 보는데, 전문가는 아니지만 걸음걸이가 불완전해 보였다. 한 분은 골반이 틀어진 것이 확연하게 눈에 보였고, 다른 한 분은 종아리가 조금 휜 상태로 오자 걸음을 걷고 있었다. 저런 몸 상태로 어떻게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을까! 그 이후로는 걷는 내내 그 생각만을 했던 것 같다. 체력도 자세도 나쁘지 않은 나 같은 사람도 하프를 뛰면서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에 비해 불완전한 신체 상태로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생각을 하니 약간 소름이 돋았다. 그야말로 정신력과의 싸움이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인간의 의지와 정신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나는 그들을 보조해서 걷는다고 했지만 솔직히 그들을 보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내 발의 고통은 그들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무거운 배낭을 보노라면 내 어깨의 아픔은 별거 아니겠다는 싶었다. 사실 나도 등산화를 조여 맨 탓인지 어느 순간부터 왼쪽 발목의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시답잖은 이야기와 농담을 나누면서 그냥 무시한 채 걸었다. 누군가의 고통으로 나 자신의 고통을 무마하는 것의 옳고 그름은 제하고, 지금 생각하면 함께 걸으면서 서로의 고통을 나누었던 것 같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그들도, 나도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막바지에 들어서 너무 힘들었던 것은 도대체가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보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시는 다른 동료 한 분이 계속해서 얼마 안 남았다고 하셨지만 말씀과는 다르게 마을은 보이지 않았고 끝없는 산길의 연속이었다. 마음속으로는 '도대체 언제까지 가야 하나' 하는 절망의 말이 자꾸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이제 얼마 안 남았대요'라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점점 더 파리 해지는 안색으로 물을 찾으시는 언니가 흘러가는 개울물이라도 떠먹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에는 진짜 큰일 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든 물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가정집 2층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던 할머니를 향해 열심히 '아쿠아'를 외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창문을 열어보지도 않으셨던 할머니는 전혀 물을 가져다주실 것으로 보이지 않으셨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손짓으로 응답하실 뿐이었다. 어찌나 서운하던지. 다행히 얼마 안 가서 식당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아마 조금 더 가면 슈퍼 같은 곳이 있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잠시 쉬면서 목을 축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 쉬고 얼마를 더 걷다 보니 결국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상황이 너무 좋지 않으니 쉬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쉬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하에 알베르게에 머무는 것은 취소하고 다 같이 호텔로 향했다. 비수기라 좋은 것은 숙소가 텅텅 비었다는 것이었다. 호텔 전체를 우리 팀 전체가 차지할 수 있었고, 삼삼오오 모여서 다음날 어떡해야 할 것인지 대책회의를 했다.
여자분들은 대부분이 너무 지쳐 보였다. 오늘 너무 힘들었다는 말과 함께 지금 여기에 왜 온 건지 스스로가 용납이 되지 않는 듯 보였다. 나 역시도 이상태가 계속 지속된다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일었다. 꽉 조여매고 걸었던 탓인지 왼쪽 발목은 멍이 들어있었고, 발 뒤꿈치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씻고 나니 몸은 좀 괜찮아졌는데 과연 내일 30km 정도를 걸을 수 있을까 싶은 걱정이 절로 일었다. 오늘 이렇게 힘들게 걸었는데 20km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고 싶지 않을 만큼 우리는 지쳐버렸다. 첫째 날은 첫날의 기운을 받아 어찌어찌 걸었다. 둘째 날은 그저 걸을 수밖에 없어서 꾸역꾸역 걸었다.
그런데 이제 어떡해야 하나? 대책이 필요했다.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