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아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여자들은 한 방에 모여서 요거트, 오렌지, 바나나, 초콜릿 등으로 저녁을 때우기로 했다. 사실 나도 꼼짝달싹하기 싫었던 지라 그것들을 먹으며 뭉게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호텔 안 라디에이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숙소 안은 굉장히 썰렁했다. 짧은 영어로 데스크 직원과 대화했지만 그녀 역시 영어가 짧았고, 5분여간을 대화했지만 결론은 현재 작동하지 않는 걸로 마무리했다. 밤새 들어오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다행히 수리가 되었고, 라디에이터는 잘 돌아갔다. 새삼 우리나라의 뜨끈한 방바닥이 그리워졌다. 맨발로 방바닥을 딛고,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생활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 날은 하루 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그 택시 편에 배낭을 보낼 수 있으면 걸을 수 있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도저히 걸을 수 없는 몸 상태라면 하루쯤은 택시를 타는 것이 남은 일정을 위해서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일기예보는 비 내리는 것이 90프로 이상이었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두꺼운 침대 이불과 침낭으로 몸을 감싼 채 이야기를 나누다가 먼저 식사를 다녀온 분들이 식당이 가까우니 저녁을 먹고 오라고 하셔서 우리 중 일부는 밥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비 오는 거리를 다시 나섰다. 식당에 들어서니 따뜻한 온기와 약간의 소란스러움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게다가 맛난 음식들을 먹으니 다시 기운이 살아나는 것 같았지만 이내 노곤한 기운에 미친 듯이 잠이 쏟아졌다.
맥주를 마시면 왠지 위험할 것 같은 생각에 참았는데, 역시 위험한 일이 발생했다. 내 옆자리에서 맥주를 한 잔 마신 동료 한 분이 식당 앞에서 그만 쓰러져버린 것이다.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지는 그녀의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내 순발력은 이미 늦었고, 그녀는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머리를 부딪히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잠들어버린 것이다. 몸이 얼마나 고단했을 터인지 하마터면 큰 일 날 뻔 한 사건이었다. 업고 가려고 준비하던 찰나 불현듯 깨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잘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아무튼 다들 정신력 하나는 엄청난 사람들이다.
아침이 밝았다. 해가 짧은 겨울이기 때문에 일찍 일찍 서둘러야 했다. 게다가 오늘은 무려 30km가 예상된 거리이기 때문에 다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출발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시는 분은 세 분으로 결정이 났고, 정말 감사하게도 그들은 사람들의 배낭과 짐들을 맡아주시기로 하셨다. 나는 고민하다가 침낭 하나를 맡겼고, 첫째 날 포르토마린에 도착해서 구입했던 스틱은 두고 가기로 했다. 어제 하루 사용해 보니 나에게는 스틱이 조금 불편했다. 아무래도 고급 재질의 스틱이 아니다 보니 생각보다 무게가 있었고,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어깨가 불편한 내게는 그 피로감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덕을 오를 때나 도랑을 건너거나 할 때 꽤나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에 필요한 분들은 경량 스틱을 준비해 가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정말 감사하게도 오전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 곳에서 과연 해를 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동트는 해를 바라보니 정말 눈물이 날 듯 감격스러웠다. 모두 같은 생각인 듯 연신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이렇게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인지. 매일 보던 해가 이렇게 반가운 것인지. 다들 어제의 고통은 잊은 듯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셋째 날의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제 물집이 터졌던 언니는 짐을 맡아 주시기로 한 분들 덕분에 하루 더 용기를 내셨던 것 같다. 우리는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들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자연스레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떠올랐다. 남편은 내가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두말없이 승낙했는데, 이 이야기를 친구와 나누면서 남편에게 고마워하라는 그녀의 말에 그게 뭐가 대단한거냐며 되받아친 기억이 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3년간 육아에 시달린 내게 이 정도 보상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길을 걸으면서, 그리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당연한'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녀의 말처럼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여기 오게 됨으로 해서 결국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남편과 친정 엄마에게 전가되었는데, 그것만 생각해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이내 남겨진 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분들도 사실 걷고 싶은 마음이 일부 들었을 것이다. 다들 직장이 있고, 한 가정의 부모로서 혼자서 이렇게 멀리 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인데, 누군들 완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으랴. 물론 당신들이 판단한 것이지만 당연히 걸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로서는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부신 햇살을 보기도 했고, 어제와는 달리 문을 연 카페테리아가 있어서 맛난 커피도 한 잔 하면서 기분 좋은 걸음을 걷다 보니 그런 마음은 한층 더 깊어졌다. 게다가 어제의 고통은 이미 잊혔고, 이전보다 동료들이 더 가깝게 느껴진 것도 오늘의 순례길을 더욱 좋게 만들어 주었기에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이 왔다갔다했다.
하지만 우리의 미안한 마음을 하늘은 또 알아준 것일까. 걷기 두어 시간쯤 지나기 시작하자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비는 카페테리아에서 커피 한 잔 하기 전부터 내렸다.) 그래도 잠시나마 햇살을 본 것에 감사하며 다들 좋은 마음으로 점심 식사를 위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언제 햇살이 나왔냐는 듯 비는 다시 강력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비를 맞고 걸어본 적이 있을까 싶은, 이렇게 오랫동안 우의를 입고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은. 사실 앞으로 남은 이틀에 비하면 셋째 날의 빗방울은 참으로 가소로운 것이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날씨가 앞으로 갈수록 조금씩 진도를 빼주었다는 생각에 또 감사(?)하다. 첫째 날부터 마지막 날과 같은 비를 맞았다면 글쎄.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한참을 걸었고, 또 비 맞은 생쥐꼴로 (점심식사가 예정되어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그 많은 짐들을 갖고 택시로 이동하여 미리 먹을 음식까지 주문해두신 그분들께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꼴을 보고서는 더욱 안쓰러워했고, 자기들은 오늘 걷지 않기를 잘했다며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셨다. 그 긴 시간 걸은 거리가 택시로는 고작 10여분밖에 안된다는 말씀을 하시며 지금 이렇게 비가 미친 듯이 오는데 우리 여기 왜 걷고 있냐며 웃으며 농을 하셨다. 덕분에 우리는 웃으며 든든한 식사를 했다. 스페인은 역시 타파의 고장이라 훌륭한 안주거리들과 질 좋고 맛 좋은 올리브유를 많이 먹게 돼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나는 원래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제의 일도 떠오르고 해서 맥주 한 잔을 참고 참았는데 다들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체력이 대단하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일부는 술김에 걷는다는 이야기도 하셨지만 말이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도 비는 예상대로 잘도 내렸다. 일기예보가 잘 맞아서 슬퍼지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떠나는 채비를 하는 우리를 안 쓰러이 보면서 안녕을 고하는 그들에게는 좀 덜 미안해지기는 했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낫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비가 내리고 발의 고통은 여전했지만 배가 채워지고 나면 좀 괜찮은 듯했고, 장갑은 왜 꼈을까 싶을 정도로 금방 젖어버려 한 번씩 쭉쭉 짜줬지만 그래도 안 끼면 또 손이 시려져서 다시 끼고 걸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장갑은 어머니께서 준비해주신 것이었다. 면 장갑이 아니라 젖어도 꽤나 보온을 유지했는데, 어머니께서 이것저것 챙겨서 가져다준 물품 중에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 정말 많았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그 어머니와 같은 분을 카페테리아에서 만날 수 있었다. 비에 젖은 생쥐꼴로 들이닥친 동양인 무리가 그분 눈에는 낯설다기 보다는 안쓰럽게 보이셨나 보다. 한 잔에 무려 4개의 오랜지를 투척하여 신선한 즙을 내어 주셨고, 혹시 필요하다면 건조기를 사용하게 해 주겠다고, 더욱이 가게 곳곳을 이리저리 뒤져 찾아오신 난로들을 직접작동시켜 주시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장사가 안 되던 가운데 사람이 와서 그랬던 걸로 치기에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씨는 진심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가고 난 뒤 바닥에 떨어진 그 물기들은 누가 다 치울 것인가!)
사실 이 이후부터는 나는 실로 어마어마한 고통을 이고 걸었지만 그 고통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생의 감사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늘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것만큼 감사한 일은 없다고 했다. '매사에 감사하라'는 것이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장 먹고살기 바쁜 누군가에게는 그저 목탁 두드리는 개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힘들어 죽겠는데 감사할 일을 찾아보라는 그 말은 불난데 부채질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정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사에 감사하는 것이 '힘겨운 삶' 가운데 아주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감사는 현실수용이었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감사였다. 우리는 항상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바라고 더 나은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처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 현실을 내 발로 딛으려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 용기는 감사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특별하지 않을까? 혹은 왜 이렇게 삶이 지루할까 고민하고 있다면 맨 발에 새 구두를 신고 발 뒤꿈치에 상처를 만들어보라. 잔인한가. 그러니 그냥 그 지루함에 감사하다고 생각해보자.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정말 감사한 일은 늘 우리 곁에 매 순간 존재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덜 슬퍼질 것이라 여긴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 나은 미래는 없다.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