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야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순례길을 걸으며 떠올릴 한 단어를 찾는다면 아마 '고통'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고통'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고통은 쉬이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달리기를 하면서 매번 느끼지만, 이때 느꼈던 고통은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신체의 아픔이었다.
사실 고통의 절정은 셋째 날 오후와 넷째 날에 찾아왔는데, 셋째 날 오후의 비극은 내 발 뒤꿈치가 까졌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즙을 내 주신 비타민C 가득한 오렌지 주스는 순간의 피로감을 풀어주었지만 내 발뒤꿈치까지 미치지는 못했나 보다.
이날은 비로 인해 불어난 강물로 신발을 벗고서 강을 건너기도 했고, 이래저래 비로 인해 곳곳에 물 웅덩이가 산재했고, 내리는 빗방울이 슬슬 스며들기도 했는지 발 뒤꿈치가 까졌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슬금슬금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는데, 왠지 신발을 벗고서 눈으로 확인하면 걸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그래서 그냥 꾹 참고서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너무 아파서 손수건을 발목에 감고 신발끈을 동여 매 보기도 했지만 걸으면서 밀리는 탓에 큰 효과는 없었다.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너무 아팠다. 물론 그 자리에서 가방을 풀고 가져온 밴드나 테이프를 붙여야 하는 게 맞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는 내리고 가방을 내릴 곳도 마땅찮고,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을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냥 빨리 도착했으면 싶었다. 그래서 그냥 아무 말 없이 혼자서 걸었고, 그렇게 걷다 보니 또 어느 순간 무감각해졌고, 결국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신발을 벗고서 처참한 몰골을 확인하니 도중에 안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와서 피를 보게 될 줄이야!
넷째 날도 역시 30여 km를 걸어야 하는 날이었다. 전날의 비극을 다시 경험하지 않으려면 만반의 채비가 필요했다. 밴드를 겹겹이 붙이고 근육 테이프를 몇 번이나 덧붙인 후 양말을 신고 몇 번을 체크했다. 이날도 역시 어김없이 비가 내렸고, 우리는 이젠 체념했다. 가는 도중 선두에서 길을 알려주시던 대장님과 길이 엇갈리는 바람에 나머지 동료들과 함께 고속도로 길을 걷기도 했다. 그 바람에 잠시 쉬어갈 카페테리아를 찾지 못해 15km를 내리 걷게 되었다. 쉬지 못해 걸어서 힘들었다는 점, 고속도로 위를 걸은 덕분에 지나가는 차량 때문에 조금 무서웠다는 것만 빼면 (아주 조금이지만) 그나마 단축된 길을 걸었다는 것은 꽤나 고무적인 일이었다.
"혹시 애들 생각나요?"
한창 길을 걷던 중에 함께 걷던 분이 물어왔다. 그 질문을 듣고서 아주 잠깐 멍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순간 대답을 주저했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는 아이들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고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대충 뭉덩스러운 답변을 했을 때, 그분은 아주 명쾌하게 내 대답을 대신하셨다.
"나는 전혀 생각이 안 나."
이어지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정말 맞았다. 바람 부는 궂은 날씨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아픈 발바닥을 참고 걷다 보니 아이들 생각이 날 겨를이 없었다. 그저 걸으면서 언제 이 길의 끝이 있을까만 생각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첫째 날 도착해서 남편으로부터 (첫째 아이가)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살아가는 일상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두 아이들을 챙기면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남편과의 관계, 내가 해야 할 하루 일과에 대한 것들, 처리해야 할 많은 집안일 등 하루하루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실로 많았는데, 이곳에서 와서 힘들긴 하지만 오직 나 한 사람만 챙기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발 아픈 것, 내 어깨 아픈 것, 오늘 하루 무사히 다 걸을 수 있는 것 등 오로지 내 한 몸만 잘 추스르면 된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물론 비바람이 몰아치고 발바닥의 고통이 느껴지니 온전히 풍경을 즐길 수는 없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고통 때문에 다른 쓸데없는 걱정들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나도 모를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나도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아마 그분 역시 자기가 인지한 그것에 대해 동의할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사실 여기 와서 이렇게 걷는 게 미친 것 같기도 하고, 힘들긴 한데, 한편으로는 누구를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홀가분한 것도 있어요. 매일 아이들 뒤치닥거리 하고, 혼자 계시는 친정엄마한테 매일 전화해서 말동무해드리고 이것저것 챙겨드리고 했었는데, 여기 와서 그거 안 하는 게, 너무 편한 것 같아. 몸은 힘든데, 정신적인 피로감이 없다는 게 정말 좋아."
그 아이러니한 고통 속에서의 쉼을 나는 그날 오후에 아주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뒤꿈치 상처를 정비하고 다시 남은 길을 걷기 위해 출발했다. 고통의 절정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한 채, 또 잠깐의 햇빛을 봤다는 것에 만족하며 오후의 햇살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후부터 그야말로 비바람이 휘몰아쳤고, 발뒤꿈치의 고통과 불나는 것만 같은 발바닥으로 인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발이 부어서 모든 발가락 끝이 등산화에 닿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서 앞서 걷던 날들과는 조금 다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간 나는 선두가 아닌 후미로 동료들과 페이스를 맞춰 걸었는데, 이 날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느 순간은 발에 불이 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달리기를 시작했고 그렇게 뛰면서 걸어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선두에 서게 됐다. 늘 뒤쪽에서 앞에 보이는 형형색의 우의를 보면서 걸었는데, 오늘은 내가 맨 앞에서 뛰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살짝 미쳤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햇살이 없는, 오전인지 오후인지 분간할 수 없는 흐릿하고 바람 부는 산길이 무서울 법도 했다. 그런데 그 날은 그 무서움보다는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내 앞서 가던 외국인 커플을 의지했던 것도 같고, 간간히 뒤돌아보면 저 멀리 보이는 주황색의 우의 덕분일지도 몰랐다.
걷는 것도 힘든데 달렸다고 하면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말로 뛰었다. 정신없이 달리면서 고통을 조금 잊기도 했고, 우의를 뒤집어쓴 채 빗소리를 들으며 나 혼자 노래를 불렀다. 말 그래도 정신을 놨다. 도대체 여기에 왜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지금 비 오는 순례길 위에 서 있다는 것. 무엇을 위해 걷고 있는지 그런 답변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내가 오로지 지금 할 일은 그저 걷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만 명확했다. 이렇게 단 한 가지만을 추구하며, 혹은 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경험은 실로 생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통 속에 쉼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나에게는 바로 이날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커다란 나무를 스치던 스산한 바람소리와 빗소리가 귓속을 때린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약에 취한 기분이 그런 걸까 하는 위험한 상상을 해본다. 하루키는 현실 맥주의 맛이 마라톤을 하면서 상상한 맥주만큼 맛있지 않다고 하면서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딱 그 말이다. 그날의 고통은 마치 환상처럼 남아있다. 한 번 더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그 기억을 떠올린다고 해서 고통스럽지는 않다. 추억이 모두 미화되는 것처럼.
다녀오고 나서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양발의 새끼발톱은 모두 빠져버렸고, 엄지발가락엔 아직도 피멍 자국이 남아있다. 발톱이 빠질 때 하나도 아프지 않았는데, 그건 아마 당시에 발톱이 빠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랬으니 그렇게 아팠겠지. 발톱이 빠지는 고통도 견뎌낼 만큼 그날의 나를 걷게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단지 지독한 고통 속에서 휴식을 경험했다는 것만은 명확하다.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