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아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산티아고를 떠나기 전 지인이 내게 말했다. 가서 의미를 찾고 오시라고. 알겠다고 답했지만 나는 사실 그곳에 가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의미를 찾는 것이 막막하기도 했고, 지난 1년간 열심히 달려왔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기에, 이 여행에서 뭔가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막연히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때마침 기회가 되어 산티아고에 가게 되긴 했지만 나는 기독교인도 아니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삶의 좌표를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삶은 '의미'를 찾는 것의 연속이었다. 나는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용 재수를 하던 시절, 스터디 멤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 힘든 이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은 내 의견에 반대하며 지금의 이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이미 합격한 다른 동기들에 비해 그저 아까운 1년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했다.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지금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시간들인 걸까? 그 동기의 말처럼 한 번에 합격한 다른 친구들에 비해 그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 재수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난 그 해 시험에서 또 낙방했고, 아무 의미 없이 1년을 더 낭비했구나 싶은 생각에 괴로워했다.
모든 경험 속에서 의미를 찾았던 나는 그래서 힘들기도 했고, 또 매사에 너무 진지하기도 했다. 어떤 활동을 할 때마다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삶은 그것을 찾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부터 힘들다고 여겨졌다. 왜냐하면 '의미'라는 것은 뭔가 '값진 것'이고 '훌륭한 것' 혹은 '보람찬' 결국 '성공'이라는 귀결점에 맞아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험에 거듭 미끄러지는 나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인지 나는 혼란스러워졌고 내 인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게 된 것에 좌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생각했던 삶이라는 것이 어떤 정형화된 틀 속에 갇혀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삶이라는 여정에서 어떤 경험을 함에 있어 반드시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나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확신했다. 어떤 길로 들어서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되든, 그냥 그것을 해 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작년 한 해, 그 어떤 시간보다 많은 것을 시도하고 경험을 하면서 일 년을 보냈다.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은 것만 같았고, 그 시간에 푹 빠져 힘든 줄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태해졌고, 지쳐가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대단한 결과가 없는 사실에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튜버가 되고 매일 블로그 글을 쓰고, 번지점프를 하고 혹은 마라톤을 뛰었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그런 경험을 통해서 '나'라는 사람이 엄청 달라진 것도, 그럴 싸한 결과물을 얻은 것도, 대단한 만족감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경험에서 의미를 반드시 찾지 않아도 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내가 있을 뿐이다.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다양한 경험은 내 안에 쌓이고 있었고, 그 경험이 쌓이고 쌓여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과' 혹은 '결과물'이라고 하기엔 적당한 표현이 아닐 수 있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주고, 그 경험을 통해서 어떤 의미 혹은 어떤 배움을 얻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 역시 그랬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경험을 제공하면서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알기를 바랐고, 아직 어린 두 아이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면서 무엇인가를 배우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것은 경험을 제공하는 자의 '욕심'일 뿐이었다. 많은 인풋을 제공했는데 왜 아웃풋이 이 정도밖에 안되냐를 따지다 보면 결국 잘잘못을 따지게 되고 남는 것은 실망과 상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내 인생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지난 삶이 조금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모든 경험에서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길이 홀가분해졌다.
어깨는 무거웠지만 머리는 가벼웠다. 이 길의 끝에서 내가 뭘 얻게 될지 기대하지 않았기에 그저 그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고통을 온전히 느끼며, 함께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우리 일행 말고도 혼자서 걷는 사람, 둘이서 걷는 사람, 가족이 걷는 사람 등 그런 악천후 속에서도 걷는 사람들은 있었고, 그들이 그 길 위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바람 몰아치는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그저 '걷는 사람들'이었고, 그 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만족했다. 다시 한번 그 빗속에서 그 길을 걸으라고 한다면, 아마 걸을 수 없을 것이다. 끔찍했던 발가락의 고통을 또 한 번 느낄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 길을 걸은 것을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
책을 다시 읽고 처음으로 내 생각을 (공개) 기록으로 남기면서 뭔가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오랜만에 깊은 사색에 빠져서 지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당연하게도) 큰 변화는 없다. 그저 좀 더 이것저것 경험을 많이 해 본 내가 있을 뿐이었다. 그 가운데 내가 배운 것은 '나 스스로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삶의 의미와 위대함이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스스로 모색하여라. 헌신하고 모든 것을 걸어라. 그러나 그 길이 아니라 해도 실망하지 말거라. 앞에 다른 길이 나오면 슬퍼하지 말고 새 길로 가거라. 어느 길로 가든 훌륭함으로 가는 길을 있는 것이다.
구본형 선생님의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떤 길로 가든 훌륭함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그 말씀이 참 위로가 된다. 나 스스로 '이렇게 해야 옳고 맞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그 길에서 벗어났을 때, 내 삶은 비극이 됐고 힘들어졌다. 그런데 그 길을 벗어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어느 길로 가든, 빨리 가든 느리게 가든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산다면 매 순간이 가치 있는 경험이고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