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하기 위해

by 이유진

아이들이 아프면 가는 병원이 있다. 그곳은 동네에서 인기 있는 병원이라 예약을 해도 가서 3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곳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기다리게 되었다. 대기실에서는 한창 TV가 방영 중에 있어서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거기서 익숙한 얼굴의 여배우가 자신이 슬럼프를 극복한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게 됐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녀는 이 말이 자기에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배우들은 일이 없는 시기에 참 힘들다고 하던데 그녀 역시 그런 시간을 보냈던 것인지, 진심 어린 고백에 나 역시 감정이 이입됐다. 그리고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그 구절은 나에게도 크게 와 닿았다. 두 명의 아이들은 기다림에 지쳐 나를 보채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칭얼거림은 일시 정지된 듯 혼자만의 생각에 잠깐 빠져들었다. '그래, 지금이라도 방향키를 제대로 잡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다 오늘 새벽에 책을 읽으면서 똑같은 구절을 읽게 되었다. 타이탄의 도구들 85페이지에 그 여배우가 말했던 구절이 그대로 나온다. 깜짝 놀랐다. 아마 그 여배우는 휴식기 동안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았나 보다.


책에서는 자전거 운동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아침운동으로 자전거를 타는데 기를 쓰면서 왕복해서 달려오는 시간이 43분 정도 걸린단다. 그러다 너무 힘이 들어서 좀 느긋하게 달려보자는 생각으로 다녀오니 45분 걸리더라는 거였다. 그런데 좀 느긋하게 달리면서 그간 보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그 시간이 정말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단지 2분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렇게 악을 쓰고 달렸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고 스스로에게 틈틈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무조건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능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페이지를 접고 바로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달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달리지 않는 이유는 그런 생각을 자꾸 하고 싶어서다. 예전에는 생각이 많은 내가 싫었는데 요즘은 생각을 많이 할수록 좋아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글 쓸거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달리면서 읽었던 구절이 자꾸 생각났다. 그러면서 10여 년 전 친구와 함께 했던 제주도 자전거 여행이 떠올랐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대학을 다닐 무렵 제주도 자전거 일주가 한창 유행이었다. 친구와 나는 자전거를 끌고서 2박 3일 동안 제주도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여름 방학 때였던 터라 정말 더웠던 날이었다. 그야말로 더위와의 싸움이었고,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우리 둘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열심히 달렸는지 모르겠다. 물론 해안도로를 달리면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달린 기억도 있지만 대부분은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이글이글 타오르던 아스팔트의 아지랑이가 떠오른다. 그 와중에도 피부가 상할까 싶어 얇은 긴 옷을 입고서 달렸던지라 정말로 더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다 달리고 나서 받았던 수료증은 정말 뿌듯했다. 자전거를 반납하러 갔을 때, 우리와 동시에 자전거를 빌렸던 또래의 친구들이 중간에 포기하고 자전거를 반납하러 온 것을 보았다. 우리는 3박 4일 예정이었는데 하루 당겨 완주했던지라 그 친구들을 만나게 됐던 것이다. 친구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알게 모르게 승리했다는 기분에 취해 더욱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함께 해준 친구에게 정말 고마웠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당시 나는 오로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데에만 의의를 두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굳이 제주도까지 가서 달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날의 경험이 절대 헛된 것은 아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시간 동안 인내를 배웠고, 친구와 함께 하면서 동료애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라는 명제를 알게 되니 너무 앞만 보고 달렸던 게 아닌가 싶다. 제주도까지 갔던 만큼 좀 더 느긋하게 즐기면서 달렸어도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그 이후로도 제주도는 자주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에 제주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우리 인생은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제주도처럼 멈춰있지 않다. 시간은 자꾸 흐르고 지나간 시간은 다시 붙잡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인 것이다. 너무 빠르게 가려다가 일상의 소중한 경험들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기 위해 조금 천천히 달리되 계속해서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토끼처럼 빨리 달리고 여유롭게 쉬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거북이처럼 계속해서 달리고 싶다. 어느 순간까지, 혹은 빨리 이루고 해치우자 라는 말보다는 그저 주어진 하루를 어제와 같이 꾸준히 실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멈추지만 않으면 되는 거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제도 그랬다. 여느 때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는데 너무 졸음이 몰려왔다. 의자에 있는 쿠션을 책상 위에 두고 얼굴을 기댄 채 잠깐 잠이 들었다. 10분여 정도 지났을까?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잠을 이기려고 애쓰는 모습이 마치 수험생 같은 기분이었다. 순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도 내게 일찍 일어나라 말하지 않고, 글을 써야 한다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새벽 3시만 되면 눈을 뜨고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하고 블로그 포스팅을 한다. 그리고 아이가 낮잠에 드는 시간을 기다려 아이가 잠이 들면 무조건 글을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은 못할 것 같아서다. 어제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해야겠다는 의지로 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에게 만족스럽다. 그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 것에 참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내 인생의 방향은 아주 조금 틀어졌다. 방향키를 아주 조금 뒤틀었을 뿐인데, 이 뒤튼 힘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다면 내가 도착할 곳이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전과는 아주 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제 방향을 바꾸었으니 때로는 빨리 달려 나가게 될 수도 있고 조금은 느리게 달릴 때도 있을 것 같다. 단지 내가 할 일은 속도와 관계없이 엔진을 끄지 않고 나아가는 일뿐이라는 것이다.




지금 내 인생이 잘 나아가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잠깐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펴보자.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지도를 꺼내볼 필요가 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내 인생의 방향키를 약간만 틀어보자. 그리고 동지를 찾아보자. 혼자서는 힘들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던 것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살펴보면 함께 갈 동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 언제든 함께 하면 좋겠다. 함께 할 때 우리의 여행은 좀 더 즐거워질 것이다.




*표지 사진 Photo by Maximilian Weisbeck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