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되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오랜만에 친구 교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나에게 영상 촬영 하나를 부탁했다. 이전 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인데, 발령을 받고 보니 동기였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잘 몰랐지만 같은 학교에 근무를 하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유대감은 깊어졌고, 동료 교사라기보다는 친구로 함께 몇 년을 보냈다. 그녀는 현재 외국의 한국 국제학교에서 근무 중인데 친한 선생님들 몇몇과 함께 하는 단톡방에서 늘 안부를 묻고 있기에 이렇게 개인적인 연락은 오랜만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근무했던 학교의 선생님께서 정년퇴직을 하시게 되어 퇴직 기념 축하 영상을 친한 부장님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보다는 그 선생님과 함께 동학년을 했던 내가 촬영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겠냐며 영상 촬영 제안을 했다. 나는 흔쾌히 그렇겠다고 수락했다.
퇴직하신다는 그 선생님은 수년 전 나와 함께 3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다. 내가 처음 선생님을 뵀을 당시, 우리 학교에 처음으로 발령을 받으신 해였고, 나는 막 결혼을 한 상태였다. (당시 근무한 학교는 소규모로 한 학년이 3학급 정도로 운영되었는데, 보통 부장님 한 분에 젊은 선생님, 그리고 연세가 있으신 선생님 이런 구성으로 학년이 구성되었다.) 선생님은 이미 내 또래의 자녀가 있으셨고, 나는 막 결혼을 한 상태라 그런지 선생님은 나를 딸처럼 생각하시며 굉장히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게다가 나는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한터라 임산부 상태로 일 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때문인지 나를 더욱 안쓰럽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당시의 나는 임신을 하기에 늦었다는 생각으로 결혼하자마자 임신을 서둘렀는데, 지금에 와 돌아보면 왜 그리 생각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뭐 이미 지난 일이지만) 선생님의 그런 걱정과 염려 덕분이었을까. 무사히 1년을 보내고 아이를 잘 출산할 수 있었다.
그 선생님 반에 말썽꾸러기 학생 한 명이 있었는데 다루기가 쉽지 않은 아이였다. 부모의 불화로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또래의 친구들에 비해 좀 과격하고 거친 면이 있었다. 선생님 역시 그 아이로 인해 힘들어하셨지만 늘 아이를 측은하게 여기시고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하셨던 기억이 난다. 한 번쯤 소리를 치실만도 하셨는데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아이도 아마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알았던 것인지 다른 사람들의 말은 듣지 않아도 선생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함께 동학년을 했던 선생님 중에 또 한 분의 연로 선생님이 계시는데, 2월 말 학년 준비 기간에 처음 뵀을 때의 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 선생님과 1년을 함께 보내면서 배운 점이 정말 많다. 선생님을 떠올리면 자줏빛 벨벳 투피스 정장이 생각난다. 2월에 뵀을 때와 달리 3월 학기가 시작하는 날, 머리와 화장을 단정하게 하시고 그 옷을 입고 출근을 하셨는데, 그 모습이 매우 인상이 깊어서 여쭤보았다. 선생님께서는 매 해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그 해를 기념하는 옷 한 벌을 구입하셔서 기념식을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날도 역시 평소에 입던 옷을 입고 출근을 했었던 터라 선생님의 그런 모습과 태도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정말 할머니처럼 아이들과 잘 놀아주셨다. 당신의 손자 손녀가 있어서였을까. 저학년 아이들과 종이 접기며 자연환경을 접목한 미술 놀이며 다양한 조작 활동들을 많이 하셨는데 식물도 많이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 반에는 새도 키웠었다!
한 번은 선생님께서 같이 연수를 듣자는 제안을 하신 적이 있다. 창덕궁에서 하는 연수였는데 무려 5일 정도를 외부에 나가야 하는 것이라 처음에는 부담이 됐다. 오후에 아이들을 보내고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데 나갈 시간이 있을까에 대한 염려가 있었지만 일단 따라나서기로 했고 그렇게 나갔던 연수를 통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사실 그 전에는 주로 원격연수로 연수 시간을 모두 채웠는데 그렇게 한 번 직접 참여하는 연수를 듣고 나니 배움의 효과가 확실히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 이후로는 가능하면 직접 가서 배우는 연수를 듣게 됐다. 그 외에도 선생님께서는 방과 후에 그림 그리기를 꾸준하게 하시고 주말에 레슨도 받으시며 종종 전시회도 열곤 하셨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에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난 노장 선생님들 대부분은 따뜻하시고 정이 넘치셨다. 한 번은 동학년도 아니었고 단지 같은 층을 쓰신 선생님께서 나의 부른 배를 보시더니 대뜸 돈 얼마를 쥐어주신 일이 있다. 한사코 거절하자 선배 교사가 주는 거면 그냥 받는 거라고 하시며 자기도 선배들한테 받았다며 출산 잘하라고 끝끝내 손에 쥐어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종 학부모들이 연세 있으신 선생님들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참 아쉽다. 나도 편견이 있었다. 기간제 활동을 하면서도 종종 그런 분들을 뵌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만난 선생님들 대부분은 참 좋으신 분들이었다. 물론 급변하는 시대에 기기 문명에 발 빠르게 대처하시지는 못하는 부분은 있다. 하지만 그것과 대체할 수 없는 연로 선생님들만의 학급 운영 방식이나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에는 정말 배울 점들이 많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 중에 학부형이 된 이들 역시 나에게 젊은 선생님이 담임이 되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경험담을 곁들여 연로 선생님들의 좋은 점에 대해 말해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가 처음 학교에 갈 때에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모든 걸 다 제치고 아이들을 받아들이는 넓은 품은 젊은 친구들이 가지려야 가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 따뜻한 분들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또 많이 배웠다. 그들을 통해 배운 건 서로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었다. 지난해, 복직을 하게 되니 나는 더 이상 막내 교사가 아닌 게 되었다. 학교에는 젊은 20대 선생님들이 많아졌고, 그들 앞에서 나는 어느덧 선배교사의 위치가 되었다. 자연스레 어떤 선배교사가 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고, 그간 만났던 많은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그 가운데 나는 어떤 모습의 선배가 될 것인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던 시절에서 이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다 보니 생각보다 고민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역할을 부가되는 것임을 알게 됐다. 내 할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할 일에 단순한 일만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까지 포함되니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다행히(?) 올 해는 다시 막내가 되었다! 학년 부장님의 포스가 만만치 않다. 생태교육을 전문으로 하시는 분이라고 하시는데, 벌써부터 부장님 반에는 내가 그간 본 적 없는 다양한 식물들과 자연 재료들이 넘쳐난다. 그 반 친구들은 아마 또 특별한 경험을 하며 1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일 년을 이끌어 주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아직 덜 여문 탓인지 막내인 위치가 편한 것 같다. 배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갈 수 있는 선배 교사들이 아직 많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연로 선생님들께서 쉬이 떠나지 마시고 교직에 남아주시면 좋겠다. 그들로 인해 학교는 아직 따뜻한 정이 남아있고, 그 온기로 인해 아이들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Photo by Sergiu Vălenaș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