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너무 멀어졌다. 지금 사는 집에서도 앞으로 이사를 가야 할 집에서도 멀어지게 되면서 나에게 새로운 삶이 찾아왔다.
여태 대중교통을 타면서 출퇴근을 한 나로서는 시내버스 노선 말고는 제대로 아는 길이 없었다. 알아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 필요가 있어졌다. 상황이 인간을 만든다고 했던가. 나는 이제 운전을 하게 됐고, 올림픽대로를 타야 할지 강변북로를 타야 할지 고민하는 프로 출퇴근러가 되었다.
아직은 초행길이라 어느 길로 가는 것이 혹은 몇 시에 나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를 실험하고 있다.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도 가보고 지리를 잘 아시는 어머님께서 알려주신 대로도 가봤지만 아직 정확히 정하지는 못했다. 굳이 왜 이런 실험을 하냐 싶을 법도 하지만 왕복 60여 키로를 길바닥에서 보내야 하는 만큼 시간과 피로도가 상당하기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고 싶다. 늘 가까운 거리만 오가서인지 사실 길 위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크다.
맨 처음 학교를 방문했을 때는 그럭저럭 할 만하다 싶었다. 세상에 내가 올림픽대로를 운전하다니! 찐 직장인이 된 기분이었다. 늘 누군가의 동승자로 합류했던 그 길 위에(사실 거의 다닐 일은 없었던) 내가 내 힘으로 운전을 해서 운전하는 기분은 그냥 시냇길로만 다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아마 한강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를 보낸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서울 나들이를 종종 하게 됐다. 우리 학교는 서울에 위치하진 않았지만 대학 친구들이 서울에 많이 살았고, 그 덕에 서울에 자주 들락거리게 됐다. 그렇게 한 번씩 오가면서 누린 서울의 매력 때문일까. 당시의 나는 늦은 밤 2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너면서 진짜 서울 사람이 돼야지 하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문턱이 꽤 높았다. 내 기준에서 서울 사람의 자격은 먼저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이미 물 건너갔고, 그다음은 이곳에서 직장을 얻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임용고시의 합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쉬이 되지 않았고, 까만 밤 한강 다리를 건너던 나의 추억은 점점 더 궁상맞아졌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한강을 볼 때면 그때의 내가 떠올라서 괜히 혼자 울적해지곤 한다. 한강 다리를 건너는 지하철의 덜컹거리는 소리, 조금은 여유로워진 실내 각자의 세상에 빠진 사람들, 창밖으로 보이는 화려한 불빛과 대조되는 까만 물결. 여기가 서울이구나 싶었던 그 밤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와서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그때 나의 상상력은 이렇게 운전하는 것까지는 포함하지 않았는데,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 운전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될 줄이야!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분명 한 번 오갔던 길인데도 다음에 가면 또 새롭다. 한 번은 영동대교를 지나 강변북로로 올리는 날이 있었다. 그런데 나가는 길이 2개인지 3개인지 네비에서 자꾸 ‘두 번째 길입니다’를 알려주는데, 두 번째가 무슨 말인가를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나가는 길이 보이자마자 그 길로 접어들었고, 그렇게 빠지자마자 잘못 들어섰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혼자 발을 동동 굴렀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시켜보자 싶어 일부러 꼭두새벽부터 나왔는데, 이렇게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니 애가 탔다. 다행히 도로 개발자들은 나 같은 사람을 다 염두에 둔 턱인지 우회하여 다시 접어서는 길을 만들어두었고, 네비는 다시 또 친절하게 안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길 역시 초행길이라 그런지 나는 유턴하고 돌아서 두 개로 나눠지는 강변북로 길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가 가야 할 반대방향, 즉 아까 잘못 들어선 그 길에 또 똑같이 접어들게 됐다. ‘어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네비는 ‘다시 검색합니다’라를 연발하며 재탐색하기 시작했고 그런 이성적인 네비와 달리 나는 갑자기 감정이 복받치며 눈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 예상 도착시간은 내가 굳이 일찍 나온 것이 무의미해진 시간이 되었고,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과 나의 바보 같음에 그냥 너무 화가 났던 것이다.
근래에 뭔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좌절감이 겹쳐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는 것 같고,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냥 그저 그런 것인가. 혹은 내가 정말 열심히 안 하고 있는 건가. 혹은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이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지언데, 내가 지금 거기에 갇혀있는 꼴이구나 싶은 생각까지 드니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이런 것도(운전) 제대로 못하나 싶은 생각들이 한데 뒤섞이면서 정말이지 우울해졌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커피도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똑같은 행위를 두 번 반복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길에 접어들었고, 일찍 나온 것이 허무하게도 평소 도착하던 시간에 도착했다. 차가 막혔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렇게 도착한 교실에 앉아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계속 우울해한다고 누가 떡 하나 주는 것도 아니겠다 싶어 감정을 추스리기로 했다.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마셔야겠다 싶어 준비하려던 찰나 용변이 급해서 화장실에 들어서는데 전화기 진동 소리가 우렁차다. 모르는 번호. 혹여 출판사일까. 볼일을 끝내고 후다닥. 전혀 기대하지 않은 척, 태연한 척. 부재중에 남겨진 번호로 다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선생니임~, 거기 교장선생님 자리니까 어서 차 좀 빼주세요오~”
O.M.G. 그래. 바로 이거지. 그냥 웃음이 나왔다. 늘 그렇듯 생은 나의 예상 밖이다. 시냇길로만 다니던 내가 한강을 보면서 달리는 프로출퇴근러가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예상치 못했던 이 난관은 또 극복할 것이다. 늘 그랬듯 나는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힘겨운 출퇴근도 또 나의 꿈도.
세월이 지나 언젠가, 한강을 보며 서울 사람이 되고 싶다 꿈꿨던 지난날을 추억하는 지금의 나처럼 이 날의 에피소드를 웃으며 추억하는 나의 모습이 분명히 있으리라 여긴다. 그 날이 조금 빨리 와 주기를 기대하며 오늘의 하루도 다시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