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을 끝내고
드디어 다 끝났다. 1월 말에 개학을 하고 학년 업무 마무리를 하면서 정신없이 몇 주를 보냈다. 생활기록부를 마무리하니 졸업 준비를 위해 바빠졌다. 지난 연말,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면서 학교는 다시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었고, 과연 졸업식에는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으로 그렇게 연말을 마무리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최근 들어 확진자가 줄어드는 추세가 이어진 덕분으로 2월부터 아이들은 다시 등교하게 됐고, 졸업식을 각 교실에서 하게 됐다.
교실에서 진행하면서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교실을 방문하셔서 아이들에게 졸업장을 나눠주기로 하셨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아졌다. 일단 교실을 깨끗하게 청소를 해야 했다. 평소에 좀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와 함께 내 자리부터 아이들 책상 정리까지 마무리했다. 교실 여기저기 붙은 아이들 작품이며, 수업 때 만들었던 게시물들도 싹 치워버렸다. 이것도 추억인데 싶어 한참을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보기에는 지저분해 보여 다 떼어내고 아이들 사진을 몇 장 인쇄하여 붙여두었다. 칠판 마저 깨끗이 정리하고 각 반에 배부된 예산으로 미리 구입해 둔 현수막을 걸었다. 깔끔하게 졸업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정리된 교실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애들 둘을 등원시키고 출근하느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둔 집이 생각이 났지만 뭐 어쩌랴. 일상이 그런 것을.) 아이들과의 이별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들과 정돈된 상태로 헤어지고 싶었다. 나의 졸업식 목표는 울지 않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헤어짐이 아쉽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 놓인 시점이다. 뒤 돌아보며 아쉬워하기보다는 앞으로의 날들을 기대하며 나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웃으면서 '안녕'하고 싶었다.
졸업식 당일에 참석을 못해 아쉬워하실 학부모님들을 위해 실시간으로 줌을 통해 졸업식 모습을 송출했다. 아이들이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을 받는 장면을 보기 위해 학부모님들의 얼굴이 교실 앞 티브이 화면에 뜨기 시작했다. 비록 비대면이긴 하지만 졸업식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 반은 제일 끝반으로 아직 교장선생님께서 오시기엔 20여분 정도의 시간이 남은 상태라 너무 일찍 들어오시게 한 건 아닌가 싶은 후회가 들었다. 하릴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졸업식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영상과 멘트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학부모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렸다. 예상했지만 누구도 선뜻 손을 드는 분이 없으셔서 결국 내가 설교 아닌 설교를 하게 되었다. 나 역시 미리 준비했던 것이 아닌 턱에 횡설수설했고,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못 했다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결론은 아이들을 많이 사랑해주시라는 말이었다. 그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매번 혼내기 또는 협박을 일삼고 있는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아이들이 나오는 화면만 보아도 좋다는 학부모님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나는 이제 아이들의 마음도 학부모님들의 마음도 모두 공감이 된다. 그래서 혹시라도 나와 같은 분이 계실까싶어 그런 어쭙잖은 설교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횡설수설하는 사이 드디어 교장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예행연습을 했지만 연습할 때 계시지 않았던 교장, 교감선생님을 비롯 졸업장 수여를 위해 도와주실 몇몇 선생님들이 우르르 등장해서 인지 아이들은 졸업장을 받으면서 우왕좌왕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르겠다. 일부러 연습을 더 시키지 않았던 건 어쩌면 이런 모습을 기대했던 건지도 모를 까닭이다. 내빈을 다 모셔놓고 하는 강당 졸업식이 아니었기에 너무 딱딱하고 절도 있게 받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다. 긴장한 아이들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등치는 산만하지만 이럴 때 보면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그래서 참 좋다. 이런 것이야 말로 오롯이 담임 만이 느낄 수 있는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귀여운 녀석들.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 모두 나가시고 교가를 부르고 전체 졸업식은 끝났다. 이제 정말 마지막 시간이었다. 이 교실에서 우리가 나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미리 준비한 피피티로 아이들에게 준비했던 마지막 잔소리를 했다. 식상한 이야기 일지 모르겠지만 결국 내가 마지막까지 아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절대 미래를 단정 짓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앞으로 그들이 착각할지도 모를 수많은 좌절과 실패들을 실제로 그러한 것이라 단정 지으며 자기 삶의 행복을 알아차리지 못할까 봐 내내 그것이 걱정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부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1년 내내 이야기했으니 어느 정도는 알아 들었겠지? 부디. 제발.
마지막으로 준비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을 만들면서 혼자서 훌쩍였던 탓일까. 막상 영상을 보니 괜찮았다. 아이들에게 울지 말자고 내내 당부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나의 결혼식 날, 절대 울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신부 입장 전, 손을 잡아주던 아빠에게 절대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그때의 나와 크게 달라진 것 없는 모습으로 나는 여전히 아이들 앞에 서 있었다. 굳이 목표랄 것은 없지만 그랬다. 나의 결혼식 날도, 그리고 결혼하고 처음 맞는 아이들의 졸업식 날에 나는 울고 싶지 않았다. 좋은 날이니 말이다.
영상을 보고 여느 때처럼 아이들과 인사를 했다. 마치 내일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처럼 헤어졌다. 언제 가는 거냐고 이제 가면 된다고. 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선생님 말투가 저게 뭐냐 했을지도 모를 그런 무뚝뚝한 목소리로 다 끝났으니 가도 된다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사진이나 찍고 가라고 소리치던 나와 투덜대면서 엉기적엉기적 모여들던 장난꾸러기들.(물론 예쁜이들은 투덜대지 않는다!) 6-5반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기 전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았지만,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하면서 어느덧 서로에게 잊을 수 없는 꽃 한 송이가 되었다. 단 하나의 존재는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6학년을 기억하며 '그때 참 좋았다'라고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그들의 기억 속에 자리하기를 바란다. 길다면 길고도 짧다면 짧았다고도 할 수 있는 2020년의 우리의 계약은 이렇게 끝이 났다.
여느 날처럼 고단했던 하루였다. 다 정리를 하고 아이들과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해서 금방 잠들 줄 알았는데 곯아떨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이 잠투정으로 한바탕 울고 불고 하는 통에 살며시 찾아들 던 잠은 확 달아나버렸다. 엄마의 잠을 깨워놓고 잠든 두 아이를 보며 한숨이 났다. 그때부터였다. 정작 졸업식에서 괜찮았던 나의 맘에 뭔가 모를 허전함이 몰려왔다. 나의 경험상 보낸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라는 걸 알아서 일까. 아니면 달님이 자리한 밤의 기운 때문일까. 우울감까진 아니지만 울지 않겠노라 외치던 그 기백은 어느새 자리를 감추고 사춘기 소녀인 냥 센티함이 훅 나를 덮쳐왔다. 아이들은 물론 잘 살 것이다. 그 시절의 나와 비교하면 얼마나 훌륭한 아이들인가. 그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걱정해야 할 것은 나일뿐. 마음을 추스르자 싶었다. 헤어짐이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한바탕 울었더라면 지금은 괜찮았을까 싶었지만 아니다. 울지 않고 헤어지길 잘했다. 그렇게 마음으로 다독였다.
갑자기 현수막 문구가 생각났다. "always to try to be kinder than is necesarry." <아름다운 아이, 원더>에 나온 구절이다. 현수막을 만들면서 어떤 문구를 입력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이 문장이 번뜩 떠올랐다. 내게 그 문장이 왜 그리도 와 닿았던 것인지, 왜 이리도 오래 남아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주려던 아주 큰 무엇인가 보다 내가 신경 쓰지 못했던 사소한 관대함과 친절이 그들에게 더 크게 와 닿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단지 우리가 성공하고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군가에게 무례할 필요가 없다는 말처럼 한 사람이 보이는 선의의 친절이 얼마나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인지를 아이들이 꼭 알았으면 싶은 나의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에게 그런 친절을 잘 베풀었을까. 오늘 졸업식은 친절함으로 가득 찬 것이었을까. 지난 일 년 간 나는 그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려고 노력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노력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도 궁금해지는 밤이었다.
나의 일상은 늘 그랬듯 다시 시작될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다시 출근을 하고, 아이들과 만나고, 헤어지고는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그들도 마찬가지다. 다시 학교와 학원을 오가고,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며, 수업을 듣고, 놀고, 게임을 하고, 다시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공부를 하는 쳇바퀴 굴러가는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자리에서 그리고 아이들은 아이들의 자리에서 각자 할 일을 다할 뿐이다. 그 가운데 조금 더 성장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거북이처럼 느려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기를 바란다. 자기의 역할을 다하는 가운데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ps. 그동안 고마웠어. 나는 나의 자리에서, 너희는 너희들의 자리에서, 우리 행복하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