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 있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수업은 전격 원격으로 전환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나오던 것도 아예 나오지 않게 되자 몇몇 아이들이 걱정이 됐다. 쌍방향 수업은 이루어지지만 그들에게 원격수업이란 그저 학교를 나오지 않은 날과 같은 의미였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다가 프로게이머를 가르쳤다는 분이 떠올랐다. 나는 그 어머니를 독서모임을 통해 알게 됐는데 아들이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많이 속상했는데 나중에는 알고 보니 유명한 사람들도 가르치고 했었다는 이야기가 번개처럼 기억이 난 것이다. 생각난 김에 바로 연락을 드렸다. 우리 반 아이들 몇몇과 줌으로 인터뷰가 가능하겠냐는 요청에 아들과 이야기를 해 보겠다며 흔쾌히 받아주셨다. 그렇게 연결이 되어 쌍방향 수업이 끝나고 3명의 아이들과 게임 선생님과의 인터뷰 혹은 개별 상담이 진행되었다.
“선생님, 근데 저는 애들한테 게임이 안 좋으니 게임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안 하고 싶어요. 전 게임하면서 배운 게 많거든요.”
20대 후반의 게임 선생님은 현재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계신데 영상 제작 주문이 많아 현재 바쁘게 운영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말하자면 그분은 자기 일이 잘 풀린 셈이다. 그런데 게임에서 배웠던 것들이 사업을 운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하셨다.
“네, 그럼요. 저도 그러길 바라지 않고요. 그저 게임만 하면 안 된다는 걸 말씀 좀 해주시면 좋겠어요. 프로게이머들 많이 아실 테니 그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활하는지 혹은 자기 삶과 게임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좀 알려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게임을 하기 위해 다른 것들도 한다는 그런 말씀들이요.”
“네, 맞아요. 게임이 직업이 되면 마냥 재밌지만은 않죠.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사전에 선생님과 통화를 하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해주면 좋을지 말을 좀 맞췄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지 그것이었다. 게임을 하지 마라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 내가 아무리 말해도 그다지 와 닿지 않으니 직접 해봤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달라지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쌍방향 수업이 끝나고 드디어 4 사람이 만났다. 나는 방해가 될까 싶어 서로 소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진행될 무렵 화면도 끄고 소리도 껐다. 다행히 게임 선생님께서 가르쳐 본 경험이 있어서 인지 아이들을 잘 이끌어 주셨다.
사실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알아들은 말이 하나도 없다. 유명한 프로게이머들의 이름을 말하는데 그게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중간중간 언급되는 게임 용어들은 그저 외계어로 들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살짝 흥분한, 혹은 들뜬 그리고 굉장히 집중한 아이들의 모습뿐이었다. 이런 거 왜 하냐고 했던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 부탁드린 시간은 3-40분 정도였는데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1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아이들과 선생님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언제 끝나냐는 식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랑 수업할 때는 단골 질문인데 말이다.
사실상 나에게는 충격의 시간이었다. 그간 나는 아이들의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그들의 입장을 알고 있다 혹은 이해하고 있다 여겼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일부 아이들에게는 나의 이야기들이 먹혔을지 모르겠지만 이 친구들에게는 전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왜 내 이야기를 안 듣는 것인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내가 하는 ‘좋은 이야기’들은 그들에게 전혀 와 닿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전두엽과 후두엽을 운운하며 게임의 해로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던 나를 보며 아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페이커가 누구인지는 알아요?”
“이놈의 자식이, 페이커?! 엄마를 놀려?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아마 우리가 부모 자식 간이었다면 이런 대화가 오가는 싸움을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싸움의 원인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모르고 내 기준에서 못마땅해 보이는 일에 대해 걸고넘어지며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정도 거리인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착각에 빠져 살아가는 것인지.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을 때 내 말이 100프로 그들의 귀에 가서 꽂힐 것이라고.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었구나 녀석들. 완전한 나의 착각이었음을.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길어지면 잔소리인 것을 알면서도 시시때때로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던 나를 반성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는가>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누군가는 결국 자기가 만들어 낸 사람임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 기준에 비추어 마음이 안 들면 비난을 하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상대가 아니라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나도 그렇다. 매번 책을 읽으면서 ‘그래, 내 생각이 틀렸을지도 몰라’ 라고 골백번 생각하고 다짐하지만 골이난 상태로 남편과 대치하게 될 때 그것은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옳은 사람은 바로 내가 돼버린다. ‘네가 틀렸다고, 멍청아!’ 이성이 파고드는 것을 억지로 밀어내는 감정의 폭풍우에 휩싸인 자아는 어찌나 강한지. 이성이 날카로워지는 순간은 언제쯤이나 찾아오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을 남편에게 강요하고 있는 모습을 불현듯 알아차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자신을 볼 때. 거기에 더 나아가 비단 그것이 우리 가족에게만 해당한 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그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특히 나는 선생님이니까. 직업적으로 매 순간 올바름을 강조하는 고지식한 사람이라서 아이들이 참 내 말이 귀에 안 들어왔겠구나 싶어 졌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대신 내 방식만이 맞다고 우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내가 하는 일들이 나에게 좋다고 너도 이렇게 하라고 강요하지는 말아야겠다는 뜻이다.
강요는 하지 말되, 단지 우리는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서로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고매한 인격체를 가진 이성적 인간이 먼저 자리하게 될 수 있기를. 감정적으로 ‘그럴 수 있구나’ 받아줄 수 있는 드넓은 이해력을 가진 인간이 되기를. 내가 게임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듯, 그들이 책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부디 받아들이기를. 아멘, 나무아미타불. 오! 알라. 득도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멀다. (덧, 페이커 선수 공부 잘했다는 이야기 하실 때, 이왕이면 책도 엄청 많이 읽었다(확인할 바 없음)는 그런 이야기도 해주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미련이 많은 중생은 마지막까지 게임과 책의 공존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