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준비하는 엄마가 되자

아이를 기다려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by 이유진

"시완아 빨리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시완아 어서 옷 입어야지."

"시완아 빨리 나가야 해."

"시완아 빨리 가자. 어린이집에 늦겠다. 어서, 어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나와 아이 둘을 데리고 등원하는 길이었다. 문득 매일 아침 어린이집에 등원하기까지 아이에게 '빨리'라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풍경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아이에게 오전 내내 했던 말들이 귓가에서 맴돌듯 환청처럼 들려왔다.


일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아침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다. 하지만 왜인지 9시 반까지 가야 하는 어린이집은 늘 10시가 돼서야 도착하곤 한다. 일단 아이들이 일어나면 아침밥부터 준비한다. 밥을 잘 먹지 않는 첫째 아이의 특성상 아침을 잘 챙겨 먹이는 게 하루의 주된 업무(?) 중의 하나다. 답답한 나의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처음 세 숟갈 정도 먹고 나면 밥 먹기에 관심이 없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밥을 입에 물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정말 속이 터질 것 같다는 게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된다. 결국 답답한 마음에 빨리 먹으라고 채근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는 협박과 사탕발림이 난무한 아침밥 먹이기 전쟁이 시작된다.


"시완아 빨리 먹어야지 어린이집에 갈 수 있지."

"너 빨리 안 먹으면 젤리 안 줄 거야."


그 와중에도 '빨리'라는 말은 빠지지가 않는다. 그나마 다행 중의 하나는 둘째가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요즘은 잘 안된다. 형을 따라서 이것저것 먹게 되다 보니 자극적인 것에 입맛에 길들여져서 밥을 잘 안 먹으려고 든다. 게다가 본인이 하겠다는 의지가 생기면서부터 자기가 먹겠다며 숟가락을 들고서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안 씹고 있는 첫째와 난리 치는 둘째를 동시에 대면하게 될 때면 힘들게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매일 도를 닦지만 수련의 길은 멀기만 하다.)


겨우 겨우 밥을 먹이고 그래도 했던 말이 있기 때문에 젤리 하나를 쥐어주고 나면 그때부터 또 전쟁은 시작된다. 밥 먹는데 시간을 많이 소요한 터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도 준비를 하고 시완이도 준비를 하려면 정신이 없다. 게다가 둘째가 꼭 밥 먹고 똥을 싸는 지라 그거 씻기고 하다 보면 정말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말똥 말똥 눈을 뜨고 있는 둘째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기에 둘째까지 옷을 입히고 준비시키다 보면 시곗바늘은 어느새 9시 30분을 향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직 18개월밖에 안된 둘째를 제쳐두고 그나마 말이 통하는 첫째 아이에게 자꾸만 '빨리빨리'를 주문하게 된다. (어느 순간 말 수준이 높아져서 마치 친구인 듯 이야기하게 된 덕분일 수도 있다.) 그렇게 겨우 채비를 해서 나오지만 이미 어린이집 등원 시간은 훨씬 지나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도 포기를 못하고 밖에 나와서도 '빨리' 가자고 아이를 채근하기 시작한다.

이렇듯 어린이집에 가기까지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손을 씻고, 옷을 입고, 어린이집 가방을 정리하고...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아직 아이는 손이 여물지 못하고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자꾸 아이에게 '빨리'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만큼 혼자 제대로 할 수 있기를 바라길래 수없이 '빨리'를 되뇌며 아이를 다그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한동안 맴돌았다.




그제는 비가 내렸다. 아이 비옷을 찾는데 또 어디에 둔 것인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미리 준비해 두었으면 좋았으련만 결국 비옷은 찾지 못한 채로 허둥지둥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 우산을 챙겨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비가 내리니 킥보드는 탈 수가 없어 첫째 아이는 우산을 들고 걸어가고 나 역시 우산을 들고 유모차를 밀면서 알 수 없는 자세를 한 채로 어린이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미 등원 시간은 훨씬 지났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서두르는 나의 걸음과 그저 세월아 네월아 구석구석 구경을 하면서 걸어오는 아이의 느긋한 걸음은 엇박자를 타면서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신호 하나를 놓쳤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 우의를 예쁘게 차려입고 우산을 들고 장화까지 완벽하게 신은 여자 아이가 나타났다.


신호가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횡단보도 말미에 커다란 물 웅덩이 하나가 보였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안 그래도 집을 나서면서부터 곳곳에 놓인 물 웅덩이를 보고서는 슬슬 걱정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아이는 지난번 비가 내렸을 때 물 웅덩이에 발을 담갔다가 운동화와 양말이 젖어드는 경험을 한 뒤로는 쉽사리 발을 담그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발을 담가보고 싶은 마음은 가시지 않는지 걸어오면서 몇 번의 위기를 겨우 겨우 넘긴 터였다. 지난날의 기억을 돌이키며 겨우 겨우 지나쳐 왔는데... 왠지 불길한 마음이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앞서가던 여자아이는 장화를 신은 채로 물 웅덩이에 들어가 찰박찰박 몇 번 발을 구르고는 지나갔다. 당연히 첫째가 그냥 보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앞선 아이가 사라지자마자 그대로 돌진!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운동화는 젖어갔다.


나의 반응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어린이집은 늦은 데다, 비는 내리고, 유모차에 우산에, 아이는 잘 따라오는지 봐야 하고, 한창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서 아이가 물 웅덩이에 뛰어든 것은 그야말로 기름이 부어진 나무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엄마가 물 웅덩이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치는 바람에 아이도 놀라고, 앞서가던 여자 아이와 할머니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미 후회한들 어쩔까 싶지만 물은 엎질러져 버렸다. 결국 그것은 나에 대한 화였다. 더 일찍 나오지 못한 것, 미리 우의를 준비해 두지 못한 것, 장화를 매번 산다고 다짐해 두고는 막상 비가 그쳐버리면 또 잊고 구입을 안 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얽히고설킨 상황에서 나에 대한 화가 결국 아이에게 날아간 것이었다. 물 웅덩이에 발을 담그는 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 장화를 준비하지 못했으면 여벌의 양말이라도 가방에 넣어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운동화야 젖을지 몰라도 어린이집에 가서 발 닦고 신을 양말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 소리치지는 않았을 텐데... 괜스레 미안해져서 엄마가 장화 꼭 사두겠다고 말했다. 여태 이런저런 핑계로 장화 사는 것을 미뤄왔던 것이 이렇게 후회가 될 줄 몰랐다. 미리미리 준비 좀 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서 부랴부랴 컴퓨터를 켜고 유아 장화를 검색했다.




누군가 내 옆에서 '빨리'라는 말을 붙여가면서 채근하는 것을 상상하니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별로인데, 매번 아침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아이의 기분은 어땠을까? 갑자기 이유남 교장 선생님이 쓰신 <엄마 반성문>이 생각났다.


p.53 그동안 나는 부모가 아니었구나. 관리자이고 감시자이고 통치자였구나, 그것도 아주 무섭고 나쁜!


이유남 선생님은 책에다 자신의 사례를 거침없이 풀어놓으셨다. 왜 아들, 딸이 자신으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는지.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엄마는 훌륭한 직장인이고 존경받는 선생님이시다'(p.58)라는 답변을 들을 수밖에 없었는지. 아들의 대답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얼른! 빨리! 바빠!'를 외쳤다는 이유남 선생님의 솔직한 고백을 읽으면서 '나는 선생님 같은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다' , '내 기준에 맞춰서 아이를 닦달하지 말아야겠다' 수없이 다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고작 40여 개월 정도밖에 안된 아이에게 내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나를 보면서 큰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다그침에 그간 기분이 상하고 마음 다쳤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감정코칭의 전문가이신 하임 기너트 박사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p.209 엄마 반성문)

아이의 행동보다 감정을 먼저 이해하라. 감정을 받아주고 행동을 제한하라.
아이의 기분을 무시하지 마라. 행동을 문제 삼되 아이의 인격을 꾸짖지 마라.


밥을 먹을 때마다 또 늦었다고 채근할 때마다 아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내 딴에는 어쭙잖은 교육학 지식으로 행동을 뭐라 하되 인격은 존중해 주라는 것을 실천한다고 나름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끝에 가서 버럭 소리치는 것에는 아이를 향한 비난의 감정이 담겨있었음을 알게 됐다. 정답은 이미 알고 있다. 이유남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우선 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아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엄마가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어디를 가든 늘 서둘러 준비해서 허둥지둥 나가는 잘못된 습관이 아이에게 전가되고 있음을 깨닫고 나니 정말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의 잘못이었는데, 그 잘못의 비난을 나 대신 아이가 고스란히 맞고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미리 준비하는 엄마가 되자고. 늘 '빨리' 혹은 '어서'를 외치며 아이를 닦달하기에 앞서 나 먼저 준비하는 엄마가 되어보자고. 그러려면 마음의 여유를 갖는 사람이 되는 것부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긴다면 그만큼 준비하는 시간도 생기지 않을까? 어찌 아이가 나에게 맞춰 줄 수 있겠는가. 내가 맞춰야지.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뭘 더 해주려고 하는 것보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그들을 기다려주고 이해해주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도록, 그러기 위해 조금만 더 미리 준비하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표지 사진 : Photo by Kristin Brow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