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믿어주고 사랑하기
달리기를 시작한 지 두 달쯤 돼가는 것 같다. 새벽에 읽어나 책을 읽다가 내용이 너무 지겨웠던 탓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나갔던 것이 그 시작이 되었다. 나름 '유튜버'인 만큼 그냥 달리는 것이 뭔가 아쉬워 '달리기와 수다'라는 섹션 하나 만들어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달리면서 드는 생각들을 나 혼자 중얼대며 올리고 있는데, 그것 때문인지 달리면서 자꾸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 한 바퀴에 200여 미터 되는 작은 공원을 다람쥐 마냥 돌고 있던 중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연히 읽게 된 <마녀 체력> 서평에서(아직 책을 읽지는 못했다), 작가가 말한 달릴 때의 기본자세 중 '손은 달걀을 잡듯 가볍게 주먹을 쥐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에 따라 주먹을 풀어야겠다 싶은 찰나, 내 엄지손가락이 나머지 네 손가락 밑으로 들어가서 말려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피식 웃음이 났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시작된 걱정들
첫째 아이가 아직 돌이 안 된 신생아 무렵일 때, 수유 다음으로 내가 많이 했던 것은 휴대폰 검색이었다. 아이에게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인다 싶으면 일단 검색부터 했다. 그리고 아이의 증세와 관련하여 '괜찮다'라는 댓글을 보기까지는 멈추지 않았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엄지손가락이 밖으로 빠지지 않고 안으로 말려있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출처가 확실치는 않은데 엄지손가락이 안으로 말려 있으면 '소아마비'일 수 있다는 황당무계 한 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나의 쓸데없는 걱정은 시작되었다. 한동안은 정말 아이의 손만 보였다. 그리고 자꾸 엄지손가락을 밖으로 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아이의 손은 내 바람대로 쉽게 나오지 않았고 그 상태를 꽤 오래 유지했다. 물론 지금은 손가락 발가락 다 잘 펴고 아직 작은 손이지만 엄지손가락으로 새끼손가락을 눌러 손가락 3개를 세울 수 있을 만큼의 힘도 생겼다. 그걸 보며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그것은 '사두(고개가 한쪽으로 기운 것)'에 관한 것인데, 어느 날인가부터 아이의 고개가 약간 삐뚤어진 것처럼 보였다. 10개월 전후로 기억하는데, 그때도 하루 종일 휴대폰을 붙잡고 검색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보면 사두인 것도 같고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엄마의 눈에는 티끌 하나도 커 보이는 게 아니던가. 첫째 아이의 두상은 지나치리 만큼 동그랗고 예뻤지만 늘 한쪽으로만 고개를 돌리고 자던 것이 괜히 심각하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또 한동안은 거기에만 빠져 있었다. 얼굴이 혹시 비대칭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몇 번이나 사진을 찍어보고,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검색을 했다. 그리고 소아과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의사 선생님들께 물어보곤 했는데, 결론은 멍울이 만져지는 것도 아니고(사두가 분명한 아이들은 보통 목 부분에 멍울이 만져진다고 한다) 본인들이 보기에는 괜찮으나 혹시 모르니 계속 걱정이 된다면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에는 소견서 한 장을 받아 대학병원에서 (소아과가 아닌)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게 됐다.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며 받았던 초음파 검사 결과 사두는 아니지만 약간 고개가 삐뚤어지는 것 같으니 집에서 꾸준히 반대쪽으로 돌려주는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6개월 뒤에 한 번 더 오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재검사에는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뒤로는 사두라고 하기에는 너무 정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병원을 다녀온 후 한동안 스트레칭은 열심히 해줬다) 이제 5살이 된 첫째 아이는 누가 봐도 멀쩡한 상태다.
그냥 걱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혹시라도 나보다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을 엄마들을 생각하니 내가 지나왔던 쓸데없는 걱정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다.
걱정의 80퍼센트는 일어나지 않을 일
여러 책에서 많이 나오는 문구인데, 나는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공지영)>라는 책에서 이 문구를 읽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라 여타 자세한 것들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걱정의 80프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2프로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은 뚜렷이 기억한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찾아보니 내 기억이 맞다는 것에 놀랐다) 아마 그 당시 그 문구가 나에게 엄청난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떤 시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그때도 쓸데없는 걱정으로 가득했나 보다. 다행히 나는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았고 그 시기를 잘 넘긴 것 같다.
'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걱정들이 큰일이 아니구나, 괜찮구나'
둘째 아이를 가지면서 다시 시작된 걱정들
그렇다 아이를 키우면 정말 걱정이 많아진다. 비단 이 걱정은 임신을 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당시의 나는 무엇을 먹을 때마다 걱정하며 검색 하기를 반복했다. '팥'을 엄청 좋아해서 팥빙수나 비비*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임신 중의 큰 낙이었다. 그러던 중 어쩌다 팥이 임신 중에 안 좋다는 말을 듣게 되면서 그 후로 먹을 때마다(중요한 것은 안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걱정하면서 죄책감을 느꼈다. 비단 '팥'에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커피가 그랬고, 회(또는 초밥)가 그랬다.(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먹어도 괜찮아요'라는 말을 찾기 위해서 그리 검색을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째 때의 경험으로 둘째 때는 좀 나아지려나 했지만 둘째를 임신했을 때에도 마찬가지 였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검색을 했고, 담당 의사 선생님께 진료받을 때마다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 마냥 질문했다. 게다가 둘째 아이를 낳고서도 마치 아이를 처음 낳아 본 사람처럼 검색할 일이 즐비했다. 두상이 첫째만큼 동그랗고 예쁘지 않아서 한동안 또 검색에 빠졌고, 의사 선생님께 수차례 문의했다. 또 첫째와는 달리 자꾸만 올라오는 침독 때문에 늘 붉어져 있는 뺨이(피부가 희어서 더 눈에 띄었다) 걱정돼서 아기 피부에 좋다는 온갖 로션을 검색했다. 혹시나 아토피가 아닌가, 내가 임신 중에 뭘 잘못 먹었나를 걱정하며 그 시기를 보냈지만 물론 지금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피부가 좋다. 당시에는 호들갑을 떨며 어떤 로션이 좋을지를 비교하느라 하루를 다 보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에 아이랑 좀 더 놀아줄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로션의 종류보다는 (아기용을 나온 성분이 순한 제품이라면 뭐든 상관없이) 그저 엄마가 좀 부지런히 씻기고 자주 로션을 발라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왜 걱정 하는가?
물론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어찌 아이 키우는 데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을까. 게다가 난 이제 겨우 3,5살 된 아이를 키우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니 내 걱정의 근원을 떠올리게 됐다. 거기에는 또 '남들처럼...'이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가 혹시나 남들에 비해 떨어지는 아이가 될까 봐 혹은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더 잘나지 못한 아이가 될까 봐 하는 걱정이 도사리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도 밥 안 먹는 첫째와 간식만 찾으려는 둘째를 보며 혹시나 제대로 골고루 안 먹어서 '키가 안 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아이를 채근하게 만들고 있다. '남들만큼 키가 안 크면 어쩌나' 혹은 '대한민국 남자 평균보다 5cm 정도는 더 컸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나의 쓸데없는 걱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박혜란)>을 다시 펼쳐 들었다. (늘 제목만으로도 위안을 받는 책이다) 오랜만에 서문을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여러분,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세요.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축복이랍니다.
모든 문장이 와 닿았지만 그중에서 이 것을 고른 것은 결국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이의 앞날을 걱정하기보다 지금 있는 그대로를 자세히 보아주고 집중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지금 휴직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힘들다고 여겨질 때가 있다. 살림하고 육아를 하면서 차라리 일하러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이 수십 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어쩌면 아이를 향한 걱정 속에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휴직기간동안 나를 위한 시간, 그리고 아이를 위한 시간들을 모두 충족시켜야겠다는 압박감이 나의 '걱정'들을 배가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단은 박혜란 작가님의 말처럼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집중하고 아이를 사랑해보자 다짐한다. 그러면 나의 걱정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에 대한 화남과 잔소리도 좀 누그러질 것을 기대한다. (오늘 아침 쿠션 커버에 낙서를 하던 아이들에게 무섭게 화를 낸 것에 대한 후회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걱정하지 말자'라고 큰 소리로 한 번 말해 본다. 이미 많은 책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걱정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을 믿어주고 사랑하는데 온 마음을 쏟아보자.
*인용 사진 : Photo by alexander bracke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