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디의 잔소리 보다 본보기가 되어주기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으로 가고 있던 중이었다. 할머니 한 분이 인도 주변에서 서성이시다가 마을 버스가 지나가자 마자 잽싸게 무단횡단으로 길을 건너가셨다. 문제는 유모차를 끌고 계셨다는 것이다. 유모차에 앉았던 아기는 간난쟁이도 아니었고 4-5세 정도 되어 보였다. 게다가 앞을 보고 있던 유모차라 아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훤히 알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정은 알 수 없으나 굳이 저렇게 가셔야 했을까 싶은 생각과 부디 아이가 모르고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되서 그와 비슷한 상황을 한번 더 보게 됐다.
그날은 첫째 하원길에 아이 둘을 데리고 집 근처 공원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공원을 빠져 나오는데 첫째처럼 킥보드를 타고 가는 여자 아이와 엄마가 보였다.(대략 7세쯤 된 것 같았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 가고 있었는데 그 모녀는 갑자기 인도가 아닌 길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인도를 따라 계속 걸어갔고 그 모녀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도로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마침 학원 차들이 지나가고 있길래 학원 차를 타는가보다 생각하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첫째가 항상 이런 저런 구경을 하느라 뒤쳐지기 때문에 아이가 잘 따라오는지 살피기 위해 자꾸 뒤돌아 보게 되었고 그 모녀에게도 자꾸 눈길이 갔다. (아마 지난 번의 할머니가 떠올라서 설마하는 마음이 계속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결국 그들이 무단횡단 하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요리 조리 기회를 살피더니 차가 잠깐 안보이는 틈을 타서 무단횡단을 하며 길을 건너갔다. 나도 모르게 혀를 차게 됐다.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알게 된 것은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과히 상상이상이라는 것이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이 비단 천재에게만 해당되는게 아니구나 싶은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특히나 부모의 말이나 행동을 자연스럽게 따라하게 되는데, 첫째가 세돌이 가까이 올 무렵 정말 봇물이 터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실감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간 얼마만큼을 쌓아두었던 것일까. 내가 저런 말을 언제 가르쳐 줬었나 싶을 만큼 말을 잘하는 것을 보고 정말 아이들의 습득력이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게다가 더욱 놀랐던 일은 첫째가 하는 말은 그야말로 내가 하는 말과 90프로 일치하다 싶을 만큼 내 말투와 거의 비슷했다는 것이다. 그걸 깨닫고 아이를 보니 첫째 아이는 내가 자기한테 했던 말들을 그대로 동생에게 하고 있었다.
"아기야, 이거 입에 넣으면 안돼, 알았지?"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맨 처음 '알았지?'하는 말을 듣고서 그만 뒤로넘어가는 줄 알았다. 말투며 억양이며 그대로 나와 같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던 것이다. 늘 첫째에게 무엇인가를 다짐하고서 마지막에 알았지?를 붙였는데 그 습관 그대로 아이도 나를 따라서 동생한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저 놀라웠다. 아이 앞에서 말을 가려야 한다는 말씀을 평소 어머니로부터 많이 들어왔는데 그제서야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둘째가 아직 신생아였을 무렵 첫째와 달리 통통한 편이었던 지라 남편이 괜한 걱정을 하면서 '지완이 너무 무거운 것 같아'라는 말을 종종 한 적이 있었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화들짝 놀라시면서 아기 앞에서 그런 소리 하면 안된다고 다 듣고 있다고 하시면서 쉬쉬 거리셨다. 그렇다. 어머니 말씀처럼 아이들은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첫째 시완이가 내 말투를 따라하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말하기에 정말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황희 정승이 소가 들을까 귓속말로 이야기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떠오른다. 어릴 때 그 이야기를 읽으며 훌륭하신 분이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소가 듣는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이야기가 얼토당토 아닌 이야기가 아님을 실감하고 있다.
게다가 아이들은 말 뿐 아니라 보는 것 역시 마치 매의 눈 같다. 내가 생각치도 못한 부분에서 정말 빠르게 모방한다. 어제도 양치를 하고서 입을 헹구려는데, 첫째가 컵을 쥐고 있어서 급한 마음에 두 손을 모아 물을 담아서 입을 헹궜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첫째는 갖고 있던 컵은 내팽겨 치고는 나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순간 내가 잘못했다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고 말려봤자 실랑이만 길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상황이 빨리 마무리 되도록 도와주자 싶어서 제대로 오무리지 못한 손을 물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이후가 난리였다. 씻고 깨끗하게 갈아입은 잠옷소매로 물이 줄줄줄 흐르기 시작했고, 소매가 다 젖어버렸다. 결국 빽 소리를 지르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소리를 치지 말자 그렇게 다짐하지만 급한 순간이 오면 잘 안된다. 그저 예전에 비해 소리치는 빈도가 많이 줄었다는 것에 위안을 얻을 뿐이다.) 비록 소리는 질렀지만 이내 사과하고 아직은 손이 너무 작으니 양치할 때는 '컵'을 사용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아이를 다독여 주었다. 나역시 아이의 번개같은 '따라하기'를 보며 다시금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난 달에 있었던 조카의 사고가 절로 떠올랐다.
지난 달에 동생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둘째가 고막이 터졌다는 소리에 깜짝 놀란적이 있다. 남동생이 면봉으로 귀를 파는 것을 보고 그걸 따라하다가 그만 면봉으로 고막을 뚫어버린 것이었다. 이제 30개월 정도 된 아직 아기인데 얼마나 아팠을까. (다행히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동생은 자기가 면봉통을 치우지 않았음을 자책하면서 나에게도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마신다.'라는 옛 말씀이 절로 떠올랐던 날이었다.
실제로 아이들은 내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 보다 스스로 배우는 것이 더 많다. 아이를 키우면서 크게 와 닿는 부분이긴 하지만 사실 학교 현장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학생들은 내가 가르치는 학습 내용도 배우지만 내가 의도하지 않은 나의 말투, 손짓 등의 것들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위 사진에서 6번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그 영역인데, 교육학 이론에서는 이를 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말한다. 교육과정에 없고 교사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학생이 학습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놀라운 것은 내가 의도한 것 보다 의도하지 않은 가르침을 더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이 배우게 되는 것들을 생각하면 나의 언행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무단 횡단을 하던 두 사례를 보며 나도 모르게 걱정이 되었다. 무단횡단을 했던 할머니와 엄마는 각각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데리고(혹은 아이가 보는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인지를 못했음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다 보고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햇음이리라. 우리 일상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해 보니 비단 그 할머니와 엄마만의 잘못은 아니겠다 싶었다. 나 역시 안 그러려고 하지만 급하다는 이유로, 혹은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휴대폰을 붙잡고 있는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나의 사정을 알게 뭔가. 그저 그들의 눈에는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엄마의 모습만 기억될 뿐인 것을.
매순간 올바르게 하기는 어렵겠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뭐든지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다시금 생각한다.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된 행동과 말들은 가급적 안 할 수록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래라 저래라 백마디 하는 것보다 한 번의 모범을 보일 때 효과가 절대적으로 크다는 것은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 알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위험한 사고로 연결될 수 있는 일들은 절대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모습은 아이의 거울임을 잊지 말자. 아이들은 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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