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년짜리 계약관계입니다.

같은 반으로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해

by 이유진

얼마 전, 전교 어린이 임원선거가 있었다. 우리 학교는 6학년 학급 회장이 자동으로 입후보되기 때문에 우리 반 남녀 회장이 각각 후보로 진출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선거 홍보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기에 아이들의 연설은 미리 촬영을 한 뒤에 각자 교실에서 방영을 해 주었다. 아이들이 선거방송을 보는 동안 나는 숙제 검사를 하면서 슬쩍슬쩍 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참 신기했던 것은 우리 반 친구들이 나올 때에는 나도 모르게 집중을 하며 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물론 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반 친구들이 나올 때에는 킥킥 웃기도 하면서 약간의 잡음이 있었던데 비하여 우리 반 회장들이 나오니 집중하며 보는 모습이 참 신기하다 여겨졌다.


6학년 아이들이니 다른 반에도 각자 친한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반이 되었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서는 모종의 의리가 결속된 듯 느껴졌다. ‘당연히 우리 반 친구를 뽑아야지.’ 하는 그런 거 말이다. 물론 나는 아이들이 내 컴퓨터에 와서 구글 설문지로 투표를 할 때 비밀투표의 원칙에 따라서 아이들이 누구를 뽑는지 보지 않았다.(맹세코!) 하지만 6학년 외에도 4, 5학년 남녀 부회장을 뽑아야 하기에 방송을 보면서 체크를 할 수 있도록 용지가 하나 배부되었는데 그 용지는 투표하고 난 뒤 수거되었다. 정리하면서 우연히 2-3장 정도를 보게 되었는데, 6학년 회장에는 당연히 우리 반 남녀 후보가 체크되어있었고, 한 장은 아예 체크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체크되어있지 않은 그 한 장을 보면서 기분이 더욱 묘해졌다.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우리 반 친구를 뽑았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가 가끔 생각난다. 코로나로 인해 자꾸 개학은 미뤄져만 가고 3월은 결국 휴업으로 지나갔다. 그러다 4월 중순에 사상 최초로 온라인 개학이라는 것을 실시했다. 개학 전에 교과서며 온라인 수업을 위한 학습자료들을 나눠주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에 온 적이 있었다. 그전에 오픈 채팅방을 개설해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아무래도 얼굴도 보지 않은 상태라 채팅방은 나 말고는 말을 하는 이들이 없었고, 나 역시 중요사항에 대한 안내만 할 뿐이었다. 아이들이 오는 날, 나는 혼자 흥분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매우 뻘쭘해하며 쭈뼛쭈뼛 봉투를 받아 들고서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남학생도 여학생도 모두 똑같았다. 그래도 여학생들이 조금 친근하다 느껴져서 가방이나 휴대폰에 달린 연예인들의 사진을 보면서 ‘좋아하는 연예인이야?’ 하고 말을 걸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칼 같은 ‘네’라는 대답이 끝이었다. 그때의 그 뻘쭘함이라니.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이들의 그런 반응이 서운하게 느껴진다. 우습게도 말이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벌써 2학기가 시작되었다. 주 2회나마 등교를 하면서 아이들과 나는 이제 서로에 대해 좀 알게 되었다. 우리 사이에는 같은 반이라는 결속력이 흐르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뻘쭘함은 온데간데없고 아이들과 나는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내가 어떤 스타일인지 아이들이 어떤 스타일인지 조금이나마 익혀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린 왕자의 여우가 말한 길들이기라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 졌다.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참 귀엽다. 이미 나보다 키가 더 큰 친구들도 있는 덩치가 산만한 6학년이 뭐가 귀엽겠냐 싶겠지만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볼 때, 혹은 졸려서 눈이 절로 감기는 모습을 볼 때, 다음 시간이 체육일 때 체육관에 빨리 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하는 모습을 볼 때 등 아이들이 참 예뻐 보인다. 비록 마스크로 인해 전체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는 것은 나도 모르게 큰 힘이 된다. 매번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남아야 하는 아이도 혼자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아이도 모두 귀엽다. 숙제로 나가는 글쓰기를 검사하면서 아이들의 생각을 아는 것도 즐겁고, 엉망진창 알아볼 수 없는 글씨를 쓴 아이들도 얼마나 하기 싫은 걸까 싶은 생각이 들어 그마저도 그냥 이해가 된다.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단지 몸짓에 불과하지 않는 아무런 존재가 아니었지만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이제는 서로에게 꽃이 되었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지만 그건 부질없는 바람이라는 것을 안다. 그저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이 순간이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이런 여유를 갖게 된 데에 큰 영향을 준 선생님의 말이 있다.


사립학교에서 기간제로 1년을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4학년을 맡았는데, 나름 나의 첫 제자들이라 부를 만한 그 아이들에게 많은 정성을 쏟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기도 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에 놀러 가기도 했다. 멋 모르는 신규 선생님의 열정을 걱정하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종업식을 한 날, 아이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교실은 텅 비었다. 나는 왠지 모를 서운함에 우울감을 느꼈던 것 같다. 울적한 표정으로 교무실을 배회하던 나를 어떻게 발견하셨는지, 당시 6학년을 맡았던 선생님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선생님, 너무 우울해 마세요. 선생님으로 인해 좋은 영향을 받은 아이가 1년에 단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거예요.
아이들 때문에 즐겁기도 하지만 실망도 많은 법이죠. 그러니 너무 속상해 마세요.



꽤 오래전 기억인데도, 나는 언젠가부터 그 선생님의 말이 머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덜 서운해졌다. 치기 어린 신규 시절에는 내 뜻만큼 따라오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혼자 속상해하고, 서운해하고 그랬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선생님의 말씀이 어떤 것이었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출산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도 한 몫했다. 큰 기대를 버리니 큰 실망도 사라졌다. 물론 아직도 완전히 해탈한 단계는 아니라 아이들의 행동에 서운함을 느낄 때도, 조금은 속상함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않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그냥 그럴 수 있지’ 싶은 생각이 들면 서운한 감정도 속상한 마음도 금세 풀어진다.


아이들에게 단 하나의 존재가 되고 싶은 바람은 애초에 사라졌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이제는 조금 여유가 생긴다. 그저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쉽게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즐겁고 기쁜 순간이 지나가듯 힘든 시간들도 다 지나간다는 이치를 알고 포기하지 말라고 나를 보며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우리 반 아이들도 내가 유튜브를 하는 것을 안다. 아이들 역시 내 영상이 인기가 많은 영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매주 한 편씩 영상을 올리는 나를 보면서 힘을 내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앞으로 계속해서 영상을 올릴 것이니 앞으로 힘이 들 때 한 번씩 나를 찾아보라고, 포기하지 않는 나를 확인하면서 여러분도 힘을 내라고 말했다. 그건 진심이었다.

우리의 계약은 1년짜리다. 아이들과 나의 진한 결속력은 1년이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깨진다. 여름이 지나 겨울이 오는 것처럼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 내가 1년짜리 계약을 10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SNS였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하는 나를 보며 그들 역시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얻길 바란다. 1년이 지나도 내가 아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오늘 아침도 나만 반가운가 라는 생각으로 서운했지만 티 내지 않았다. 주말을 지나 나를 만나는 것이 즐거운 친구들이 적어도 한 명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힘을 냈다. 아이들에게 너희가 자유로운 순간은 언제냐 물어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숙제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릴 때라고 대답했다. 반대로 선생님이 자유로워지는 순간은 언제일까라고 되물으니 아이들은 갸우뚱했다. 나는 학교에 나와 나의 일을 하는 순간에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무슨 말인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 내가 진심으로 자유롭다고 느꼈다.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할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매일 등교하지 못함으로 인해 나누지 못한 것들이 많아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잘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짧지만 아이들에게는 아주 길게 느껴질 수 있는 시간이 아니던가. 그러니 코로나를 핑계로 미뤄왔던 것들을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아직 우리의 계약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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