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이해교육>을 듣고 나서
학교에서 의례적으로 하는 행사 중에 장애이해교육이 있다. 창체 시간에 배당되는 수업으로 보통은 담임 재량으로 관련 영상을 시청하거나 때로는 간단한 장애체험교육 등을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외부에서 강사님이 오셔서 수업을 해 주기로 하셨다.
이전 학교에서 장애를 가진 친구들과 통합수업을 한 경험이 있고, 그 학교에 있는 동안 꽤 많은 아이들을 보았기에 선생님이 오셔서 하실 말들이 어떨지 예상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강의에 대한 큰 기대 없이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일들을 빨리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강사님과 함께 오신 보조 선생님께 자리를 내어드리고 교실 뒤편에 가서 자리를 마련했다.
아이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시고 본인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등에 대한 소개로 강의는 시작되었다. 시원시원한 말투와 수업을 이끌어가시는 수준이 이미 많은 경험이 있으신 분이구나 싶었다. 게다가 교실 앞에서 서 계신 모습 만으로는 어떤 장애를 가지신 건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질문이 있거나 대답을 할 때에는 그냥 손을 들면 알 수 없으니 '저요'라고 큰 소리로 말해주면 좋겠다고 하실 때, 그제야 그분이 가진 장애를 실감할 수 있었다.
후천적 장애
"저는 패션 전공을 했고, 유명 배우들과 작업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패션 전공이라니? 분명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를 가졌다고 본인을 소개하셨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이지?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하게 되었다.
강사님은 후천적 장애를 가진 분으로 20살 즈음에 자기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군대에서 야맹증으로 인해 총을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35살이 돼서는 앞을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각 장애가 거의 확실해졌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 후천적 장애의 비율은 88프로 정도였다.)
본인은 은행 ATM기 앞에서는 장애인이 아니라고 느끼지만 맥도널드 키오스크 앞에서는 장애인이라고 느끼며, 본인의 집 안에서는 전혀 장애인이라고 느끼지 않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소란하던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지며 어디선가 수군대는 소리가 들릴 때 본인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느낀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외국의 다양한 사례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셨는데, 스웨덴과 같은 나라에서는 스웨덴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에게 한시적으로 장애권을 주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한 서비스를 받게 해 준다는 이야기였다. 복지 국가의 위상을 새삼 느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심사가 까다로운 것은 아마 복지와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돈과 정책) 때문일 것인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주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유모차와 일시적 장애
그렇게 강의를 하시던 도중 유모차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셨다.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지 못하는 곳들은 유모차도 지나가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유모차를 한창 끌고 다니던 때를 떠올리게 됐다. 강사님의 말에 따르면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 나 역시 당시에는 일시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그랬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데에는 여러가지 불편함이 많았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어려움이 많으며 그 외에도 우리 시설 곳곳에는 생각보다 일반인(?)들이 전혀 느낄 수 없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하는 곳이 많았다. 가장 단적인 예를 들자면 차도에서 인도로 올라서는 문턱 즉, 유모차나 휠체어가 잘 오르내릴 수 있도록 일부러 낮춰둔 그 바로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생각보다 많다. (유모차를 위한 배려 - 유모차와 관련된 일화는 여기에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성숙된 시민의식
강의가 끝나고 아이들로부터 질문을 받으셨다. 열정적으로 강의를 듣던 나 역시 질문을 했다. 아이들의 질문은 창의적이었고,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서 궁금증이 많은 듯 보였다. 그들의 질문을 통해서 추가적인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 가지 더 질문하고 싶었다.
"선생님의 이 강의의 최종 목적은 무엇이신가요?"
'저요!'라고 손을 드려던 나는 멈추었다. 내가 하려던 질문은 어쩌면 무의미한 것이었다. 사실 질문하지 않아도 그 강의를 제대로 들었더라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앞서 질문한 우리 반 학생의 질문에 그에 대한 대답은 나왔다. 그분의 목적은 이미 분명했다.
"저는 사실 외국에 나가면 제가 장애인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해요. 그 나라가 맞고 우리나라가 틀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냥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장애를 기피하거나 특수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 그저 우리 사회의 한 일원이라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바로 내가 유모차를 위한 배려라는 글에서 이미 내렸던 결론과 일치했다. 그 어떤 제도나 물리적인 시설에 대한 요구에 앞서 성숙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강의를 오신 강사님이 이렇게 강의를 하러 다니시는 궁극적인 목적일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유모차를 끌지 않는다.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아이들은 훌쩍 자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겪었던 그 불편함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냈다. 그 강사님을 마주하던 순간까지도 나는 나 역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냈던 사람이었음을, 일시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전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 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란 그 어떤 특정인에게 내리는 비극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덧붙이자면 강사님의 건강한 마인드를 본받자는 것이다. 당신의 삶을 집어삼킬 수 있었던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한 그 모습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과 시련이 있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부단한 노력이 있었을지.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준비하고 있다는 그 말씀에 나 역시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강사님께 좋은 강의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건네자 이렇게 강의 다니면서 선생님이 질문한 것은 처음이었다며 웃으셨다. 그 말씀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분의 작은 발걸음이 언젠가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게 되는 원동력이 되리라. 물론 우리 아이들이 그에 힘을 더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나저나 반 아이들에게 오늘 강의를 주제로 한 글쓰기 숙제를 냈는데, 과연 어떤 이야기를 써 올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Photo by Josh Calabres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