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배려하는 따뜻한 세상을 꿈꾸며
혹시 유모차를 끄는 여자를 상상해 본 적이 있을까? 나는 항상 멋진 선그라스와 한 손에는 커피,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당당하게 유모차를 끄는 모습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딱 반대다. 커피는 웬걸 전혀 우아할 수 없는 모습으로 첫째 아이가 잘 따라오나 안오나를 살피며 노심초사하는 내 모습만 있을 뿐이다. 그저 둘째가 칭얼대지 않고 가만히 잘 앉아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사실 유모차를 타고 이리 저리 다니다 보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 좋은 것 보다는 불편한 것들을 많이 체험하게 되는데, 길을 다니다 보면 인도로 올라가는 문턱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턱이 내려진 곳도 있지만 대부분이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정말 사소한 것이고 정작 문제는 조금 멀리 이동해야 하는 경우 봉착하게 된다.
지하철타기
차가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데, 유모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려면 통과해야 할 몇 개의 관문이 있다. 우선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최소 2번의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그 예로 한 번은 친정엄마가 놀러 오셔서 아이를 데리고 남대문 시장에 간 일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데 그 앞에 서있는 줄이 맛집 저리가라 할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간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많이 이용해봤다 생각했지만 이리 긴 줄은 또 처음인지라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몇 번의 엘리베이터를 보낸 후에야 겨우 탈 수 있었다.
게다가 넉넉하지 않은 자리에 유모차를 끼워 타야 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유모차가 성인 2자리 정도는 차지 하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게 되면 자연스레 다음 엘리베이터를 탄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노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문이 닫히는 것을 조절할 수 없고 매우 느리게 작동되어 하나를 놓치면 많은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지하철 타는 시간 보다 지하철 타기까지 혹은 내려서 밖으로 나가기 까지의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전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수단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환승이라도 해야할라 치면 엘리베이터를 한 번 더 타야하는데 이마저도 찾기 힘든 경우가 있다. 그래서 밝히기에 부끄러운 일이지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 경우도 있다. 그나마도 에스컬레이터가 있으면 차라리 다행이다. 없는 경우 남편이 아이를 타 있는 유모차를 통째로 들고 오르락 내린 일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겪어 봐야 아는 것임을 알게 된 순간이다. 항상 느끼지만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 대신 밀고 올라갈 수 있는 언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매번 아쉽다는 생각이 한가득이다.
그렇게 겨우겨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면 또 하나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건 바로 사람들이 꽉 찬 지하철이다. 내가 타려는 지하철이 만원이 된 상태라면 아무래도 비집고 들어가기가 힘이 들고 눈치가 보인다. 한 번은 분당선을 타고 가던 길이었는데,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유모차 바퀴가 어떤 아저씨의 발을 친 것 같았다. 아저씨는 정말 무안할 정도로 화를 내셨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죄송하다'는 사과밖에 없었다. 내릴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의 불편한 기색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조심하고자 했지만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또 한 번 아저씨에게 어떤 피해를 드린 것 같았다. 사과 하면서 내렸지만 내리는 내 뒤통수에 대고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를 치는데,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복잡 미묘한 심정이었다. 물론 매번 이런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배려해주시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불편해 하시는 분들도 만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지하철이 가장 잘 되어있다는 서울에서도 유모차로 지하철 타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대중교통이 서울 만큼 발달하지 못한 곳은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버스타기
그래도 지하철이 버스 보다는 낫다. 지하철은 갈아타지만 않는다면 유모차를 끌고 이동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수단이다. 유모차를 타고 버스를 탄 적은 거의 없다. 유모차를 갖고 버스를 탔던 날은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탈 수 있었고, (엄마가 유모차 한 쪽을 들어주셨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유모차를 갖고 버스를 탈 엄두를 내지 않는다. (물론 혼자서도 간편하게 접을 수 있는 유모차가 있다면 좀 더 수월할 것 같다.) 게다가 버스는 지하철 처럼 여러 칸이 아니기 때문에 한정된 자리에 유모차가 한 자리 차지한다는 것은 이모저모로 서로 불편한 일이 된다. 그래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큰 장점이 있기에 버스는 늘 나에게 있어 그림의 떡 같은 존재이다. (내가 갖고 있는 유모차로는 마을 버스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우리 동네에서 도서관을 가려면 마을 버스를 이용하거나 택시를 타야한다. 아이가 이제 아장 아장 걸을 수 있게 되면서 마을 버스를 타고 도서관에 가게 됐다. 물론 유모차를 끌고 갈 수는 없다. 마을 버스는 저상버스가 없기 때문이다. 매번 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고 택시를 타기도 그래서 한 번은 유모차를 끌고 걸어가 보자 싶었다. 왜냐하면 책을 많이 빌리게 되기 때문에 책을 들고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대략 25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이 정도면 운동도 할 겸 걸어다녀도 좋겠다 싶어서 요즘은 유모차를 끌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가고 있다. 그렇게 유모차를 끌면서 걷다보니 이 글을 쓰게 됐다.
그래, 택시도 있다. 하지만 사실 매번 타기엔 요금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택시를 탈 때 역시 유모차는 골칫덩이다. 트렁크에 접어서 넣는 일이 아무래도 번거롭고(혼자서 택시 타려면 아이를 누군가 봐야 하는데 그것도 걱정이다) 심지어 택시 아저씨들이 (유모차를 보고서) 지나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성숙한 시민의식
사실 나야 유모차를 두고 다른 이동 수단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뭐 대단한 박애주의자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면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휠체어를 탈 수 밖에 없는 분들은 나보다 훨씬 더 불편하실 것이라 생각된다.
그 간의 경험을 통해 내가 느꼈던 것은, 그 어떤 물리적인 불편함 보다는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더 넓은 엘리베이터 혹은 더 많은 엘리베이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성숙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유모차를 혹은 휠체어를 끌고 타도 불편해하는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얼마나 좋을까. 제도적인 것들이 뒷받침 되기에 앞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허용하는 시민의식이 자리잡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돈 얼마 줄테니 애를 낳으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기들을 낳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굳이 임산부 자리, 장애인의 날 같은 것들을 지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우리는 더 보호받지 못해서 혹은 안달스럽게 우리의 것을 쟁취해야 한다는 삶에 사로잡힌 것 같다. 법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반드시 보호받아야지만이 우리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제도를 만드는 것 역시 시민의식을 고취시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상버스 버스 뒷 문에 그려진 유모차와 흴체어 그림은 볼 때 마다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 혼자 뿐일까?
여느날과 다름 없이 유모차를 끌고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아이가 예쁘다면서 물끄러미 보시더니 유모차를 보시며 한 마디 하셨다.
"아이고, 유모차 좋네. 우리가 애 키울 땐 이런거 없어서 맨날 업고 다녔어. 좋은 세상이야."
흔히 들을 수 있는 넋두리에 불과한 말이었지만 왜인지 할머니의 말씀이 한동안 귓가에 돌았다. 첫째 아이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 주고 그 길로 둘째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오전 10시 임에도 불구하고 그늘 없는 곳을 지날 때면 (모자를 썼지만) 뜨거운 햇빛에 얼굴이 뜨거워지고 선그라스 눈 밑으로는 송글 송글 땀이 맺힌다. 오늘도 내가 꿈꾸는 모습과는 완전 반대인 모습으로 유모차를 밀고 있다. 언덕길을 오르는데 가뿐하게 나를 지나치는 마을 버스를 한 번 쳐다보고는 힘차게 유모차를 민다. 그래 언젠가는 버스에 앉아 아이를 보며 '우리가 애 키울 땐 이렇게 유모차 끌고 버스 못탔어. 세상 참 좋아졌다.'라고 말하게 될 날이 오겠지? 10년 뒤? 5년 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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