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이 되자.

나를 나 답게 해주는 것.

by 이유진

한 번씩 미국 스타일의 로맨틱 코미디가 그리워져서 영화를 뒤적이곤 하는데 그렇게 봤던 것 중에 ‘원데이’라는 영화가 있다. 포스터와 예고편 만으로 마음이 동했던 영화로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나름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사실 기억력이 크게 좋지 않은 사람으로서 영화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편은 아닌데 그 영화만큼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또렷하게 기억하는 장면 하나가 있다.


‘너는 왜 선생님이 됐어? 선생은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지 못한 2인자들이 선택하는 직업이잖아’ (정도의 맥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창 집중해서 영화를 보던 중에 그야말로 ‘다 된 죽에 코 빠트리는 격’의 황당한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말도 안 된다며 혼잣말로 항의를 했지만 솔직히 당시에는 영화를 보면서 일부 동의했던 것도 같다. 발끈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그런 생각. 화는 났지만 나도 모르게 아주 조금은 동의했던 것도 같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나 역시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겠다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선생이란 정말 그런 직업일까? 주인공의 말처럼 자기의 분야에서 잘 나가지 못해서 차선으로 선택해야만 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실패한 인생이 선택하는 그런 직업일까?


어릴 적부터 영화를 즐겨봤고, 그에 관심이 많았고, 고등학교 때는 방송부원으로 열심히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목표는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배우를 제외한 작가, 촬영기사, 기자, PD 등 그 업계(?)의 관계자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자 목표였다. 하지만 수능 실패로 재수를 하게 됐고, 이듬해에 서울에 위치하는 대학들의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할 정도의 점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마지막 충고에 원서 지원조차 포기했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이 되는 길을 선택했고, 당시에는 그것을 차선책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에 전적으로 반박한다기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갖지 않도록, 그에 동의하지 않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코로나 사태을 겪으면서 사회에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해 갖고 있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교대에 진학하고 임용을 치르고 선생님이 되었다. 주변에서는 취업하기 힘든 세상에서 직업 잘 구했다며 축하해줬지만 막상 일선에 나가 일하다 보니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 싶을 생각이 들 정도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존경받는 스승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떤 일에 있어서 앞장서서 비난을 받아야 하는 직업군이 되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특히 비슷한 성적을 갖고서 대학에 진학했지만 취업의 관문을 뚫고 나면 뭔가 다른 직업들에 비해 초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특히 초등교사가 되고 나니 자기 일에 대한 ‘전문적인 분야가 없는’, 그저 그런 많은 선생님 중의 한 사람, 결혼하기 좋은 직업으로 취급받는 현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늘 바빠 보이고 있어(?) 보이는 직업에 비해, 내 직업은 별거 없어 보였다.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에 비하면 초라한 수입. 점점 더 서비스직에 가까워지는 듯한 학교 분위기 등. 어른들을 상대하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다른 직업에 비해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왠지 보잘것없어 보이고, 시시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비록 방송 관계자가 되고 싶었던 것의 차선책으로 교대에 진학하긴 했지만 선생님 역시 나의 오랜 꿈 중의 하나였기에 나의 성취에 자부심을 느꼈으나 실제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점이 있구나를 느끼면서 나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은 사실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적인 인식 혹은 주변의 인정을 더 중요하다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내가 선생님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하다. 나의 직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것이, 자칫 그저 ‘생업’으로서 끝나버릴 뻔했던 교사로서의 꿈을 되살려 주었다. 사실 교대에 진학하면서 내 인생은 ‘선생님으로 끝나겠지’라고 생각했다. 내 삶은 이제 특별할 것 없이 무미건조할 것이라 예상했고, 실제로 임용에 합격하면서 더 이상 내가 ‘더 해야 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고 나니 ‘선생님’은 꽤나 보람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직업이었고, 교사가 된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많이 경험해볼수록 의미 있는 직업이었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일상에서 이룬 혹은 경험한 작은 성취들, 그를 통해 깨닫게 된 삶의 이치 혹은 가치관 등을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닫고 나니 교사로서의 삶이 참으로 즐거워졌다.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 여부와 관계없이 말이다.)


최고의 선생님이 되자.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동안 나의 제자가 될 친구들에게 있어 가장 멋진 선생님이 되어보자 라고 마음을 먹고 나니 나는 할 일이 꽤나 많아졌다. 글도 써야 하고, 달리기도 해야 하고, 유튜브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나는 많이 바빠졌다. 그런 것들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해 줄 이야기들이 더 많아졌고, 해 줄 말들을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신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국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교사라는 직업에 있어 강점이 되고 힘이 된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즐겁게 한다. 나 다운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나는 선생님이 찰떡인 사람이었다. 김호 작가는 <쿨하게 생존하라>에서 직장이 직업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모든 직장인은 자기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한다.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내 직장과 직업이 잘 연결되었다. 그것을 발견한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다. 복직을 하고 아이들을 직접 만나면서 선생님으로서 교단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참으로 나다운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내 주변 친구들에게 늘 참으로 한결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인데, 약간은 고리타분하고 FM과 같은 삶을 사는 것에 대해 한 때는 나 역시 고민했지만 결국 그 모습이 나다운 모습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강연가 혹은 작가들,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들이 그러한 사람일 텐데, 나는 교사가 그런 생산자의 직업에 해당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작은 인식의 차이는 참으로 큰 것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자기 가족에게도 자기 생각을 전달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정말 실감한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더욱 느낄 것이다. 자기주장을 누군가에게 관철시킬 수 있는 경험을 얼마나 자주 그리고 성공하겠는가. 그런데 교사라는 직업은 그에 너무 적합했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선생님의 말이 유효하게 먹힌다.) 그래도 엄마 말 보다 신빙성 있게 느껴지는 선생님의 말. 학교 교육의 필요성을 새삼 실감했다. 나의 가치, 내가 인생을 살면서 중요하다 여기는 것들을 들어주는 사람들(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끊임없이 자기를 홍보해야 하지만 나는 특별한 노력 없이도 매년(담임을 맡는다는 가정하에) 나의 고객(?)들이 무상으로 확보되는 것, 그들에게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그야말로 큰 행운이었다.


방학 중에도 간간히 이어지는 잔소리에 아이들은 다소 지겨울지도 혹은 징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참 좋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의 몫을 해내며 본인의 일에 성취를 느끼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사람, 멋진 어른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나의 이런 생각들을 누가 보면 요즘 같은 세상에 뜬 구름 잡는 소리 한다 혹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가치를 믿는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내가 기여할 일이 있고, 또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것이 바로 나를 나 답게 하는 일임을 드디어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