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것과 자존감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by 이유진

나는 최소한도의 운동이라 여기면서 평소 이틀에 한 번은 달리기를 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기를 이제 1년이 넘었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기간일지도 모르지만 스스로에게는 꽤나 칭찬해 주고 싶은 습관이다. 하지만 여전히 달릴 때마다 힘이 든다. 5킬로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을 목표로 뛰는데, 사실 1킬로만 뛰어도 힘이 들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이 상태로 어떻게 하프를 뛸 수 있었을까 따위의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3킬로를 뛰게 되고, 3킬로를 뛰고 나서부터는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으로 4킬로, 5킬로를 완료하게 되는 것이다.


뛰면서 건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은 잘 모르겠지만 땀을 흘리고 나서 느끼는 개운함, 무엇인가 힘든 고비를 지나고 나서 느끼는 성취감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달리기는 싫지만 꾸준하게 달리기 위해 애쓰는 내가 있다. 그렇게 달리기를 하다 보니 생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마라톤 대회라는 것에 참가도 해 보았고, 춘천마라톤 때문에 오랜만에 춘천 닭갈비도 맛나게 먹었다. 이제 나는 어디 가서 당당하게 잘 달리는 사람이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겠다는 알 수 없는 자만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그런 나를 꼼짝 못 하게 할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기 전, 대전에 갈 일이 생겼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일이었는데, 오랜만의 만남이었기에 전날 밤부터 설렌 기억이 난다. 특히 아이들 없이 우리 셋만 본다는 것 때문에 더욱 들뜬 날이었던 것 같다. 이른 아침에 독서모임도 있는 날이어서 꼭두새벽부터 바삐 움직였지만 전혀 피곤하다고 여기지 못했다. 때마침 내리는 비도 봄을 알리는 소식처럼 반갑게만 느껴졌다.


나는 12시쯤 도착 예정으로 10시 50분 기차를 예매했다. 독서모임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교대역이었기 때문에 넉넉 잡아 10시 10분쯤에는 출발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 편히 앉아있었다. 보통 10시 전에는 마무리가 되는 모임이기 때문에 시간 맞춰 기차역에 도착하는 일이 전혀 무리가 되지 않겠다고 여겼고, 그날 따라 현장의 열기로 인해 시간이 조금씩 지체되고 있었지만 늦을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한채, 늑장을 부렸다. 그러다 이제 일어서야지 했던 것이 그만 20분이 돼서야 슬슬 일어나게 됐고, 30분 정도면 충분하지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으로 여유롭게 출발했다. 지하철역에 도착해 눈 앞에서 지하철 한 대를 놓칠 때 까지만 해도 기차를 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아무 생각이 없이 다음 지하철이 이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전광판을 바라보는데, 웬걸, 평소에는 하나 지나가고 나면 금방 뜨던 열차 그림이 한참을 바라보는데도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제야 뭔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져서 서둘러 어플을 확인했는데 아뿔싸. 다음 열차는 5분 뒤에나 도착할 예정이었고,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10시 23분이었다. 교대역에서 수서역까지는 18분, 그렇다면 아무리 열차시간을 계산해도 내가 도착하면 기차 타러 가는 데 까지 1-2분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왔는데, 과연 내가 내려서 빨리 뛴다 한들 기차를 탈 수 있을 것인가?


대학교 때부터 꽤나 자주 기차를 타고 오고 간 일이 많기에 사실 이런 긴장감은 꽤나 익숙한 것이었다. 너무 이른 준비로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시간에 맞춰 가고자 하다 보면 결국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탈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의 가로에 놓여 두근 두 근 한 긴장감을 느끼곤 했는데 보통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대부분은 기차를 타곤 했다. 그런데 이날은 예감이 불길했다. 지하철로 수서역에 내려서 기차를 타는 플랫폼 까지는 꽤나 긴 거리를 거쳐야 했다. 그 길을 눈감고도 그릴 수 있기에 과연 몇 분 정도면 갈 수 있을까를 예상했다. 5분은 정말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2분은 부족한 시간이었다. 과연 2분 안에 뛸 수 있을 것인가? 그간 다져온 나의 달리기 실력을 이때 발휘해야 할 것인가?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는 5분 동안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대전으로 가는 다음 열차를 검색했는데, 12시 10분 차 밖에 없었다. 무려 한 시간 이상을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라 서둘러 KTX를 검색하니, 교대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길을 생각하면 그냥 수서역에서 12시 10분 차를 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은 들어오는 다음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지하철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 일단 표를 취소해야 할지 말지의 가로에 놓여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미 수수료는 물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이 열차를 타지 못하면 다음 기차까지 대기해야 하는 시간은 너무 길어졌고,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에게도 미안한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날 친구들과 보낼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에 속상한 마음이 더 들기 시작했다. 밖은 추었지만 긴장감으로 인해 콧잔등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만약 나의 달리기가 성공해서 아슬아슬하게 기차를 타게 된다면 그때 가서 승무원에게 이야기해서 표값을 지불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표는 취소했다. 뛰기로 결정하고 나니 그때부터는 어떻게든 뛰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물론 기차를 놓칠 가능성이 99프로였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다. (어플만 자꾸 새로고침 하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계산했는데 지하철 이동시간은 정말이지 정확했다.) 드디어 수서역 도착! 10시 48분. 나는 내리자마자 진짜 이렇게 뛸 수 없겠다 싶을 만큼 뛰기 시작했다.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올라가서 왼쪽으로 한 바퀴 돈 다음 개찰구에서 재빠르게 카드를 찍고 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온 힘을 다해서 플랫폼까지 정말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플랫폼에 도착하자 열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분이 지나가 있었는데, 1분이 이렇게 긴 시간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만큼 너무 아쉬웠다. 갑자기 전력질주를 한 탓인지 자꾸 기침이 나왔는데, 정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박진감 넘치는 시간은 종료되었고, 결국 1시간을 넘게 기다린 후, 다음 기차를 타고 대전에 갈 수 있었다.


이따금 미친 듯이 뛰었던 그 날이 떠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그 순간, 아마 내가 살면서 그리 자주 경험해 보지 못할 그때의 순간이 말이다. 아마 평소에 달리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포기했을 것이다. 시간 계산 후에 무리라고 판단한 뒤, 기차표를 취소한 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느긋하게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달리는 사람이었고 혹시 모를 가능성에 승부를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자만심이었다 싶다. 꾸준히 달렸으니 그 정도 달리기는 할 수 있겠지 하는 나도 모를 자부심 말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내가 무슨 단거리 선수라도 되는 것 마냥 무리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날 지레 포기하지 않고 일단 달렸던 스스로를 칭찬한다.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뒤에가서 뛰어볼 걸 하는 후회를 하지 않게 됐으니 말이다.


비록 선수만큼 잘 달리지는 못하지만 달리기를 함으로써 나는 요즘 분명히 운동의 덕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꾸준히 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체력이 길러지고 있었고, 그 체력이라는 것은 신체에만 해당될 뿐 아니라 정신적인 것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확실히 예전보다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이 줄었다. 예전 같으면 짜증이 나거나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일들에 대해 이제는 그냥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나도 모르게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뭐.’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나는 그날 1시간 넘게 기차를 기다리면서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서는 누군가가 봤을 땐 좌절의 순간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을 잘 극복하여 누구보다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례에 대해서 소개하는데 그중에서 에이미 멀린스라는 여성의 사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선천성 기형으로 한 살 때 두 다리를 절단하여 무릎 아래로 다리가 없다. 하지만 테스에서 연설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녀는 여러 모양의 다리를 갖고서 달리기도 하고 패션 화보 잡지를 촬영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달리기를 하는데 문득 어딘가에서 역시 달리기를 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가 달리기를 하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달리기를 하는 그녀는 분명 운동을 통해 길러지는 체력에서 얻는 이로움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불가능에 도전하기 위해 그 일을 하기보다는 체력 향상을 통해서 얻는 무언가를 알기 때문에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체력 하나로 모든 것이 바뀐다던 <마녀 체력>의 저자 이영미 작가의 말도 종종 떠오른다. 철인 3종에 출전하는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그 말의 뜻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운동은 단순히 미용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생존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달릴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계속 힘든지, 어째서 기록은 크게 단축되지 않는지 이렇게 뛰면서 다리만 굵어지는 것은 아닌지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도 들지만 그런 저런 가운데 아주 미세하지만 체력이 향상되고 있었음을, 나의 회복탄력성의 탄성력이 조금씩이지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는 말은 절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심신은 따로 수양하는 것이 아니며 함께 돌보아야 하는 것임을, 운동을 할 때 정신력도 같이 향상되는 것임을. 단순히 미용의 목적이 아니라 한 단계 향상된 삶의 질을 위해 달린다는 것이, 체력을 향상한다는 것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것인지를 나는 새삼 깨닫고 있는 것이다.





* 표지 사진 : 에이미 멀린스 공식 페이스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