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길
"왜 이렇게 책을 읽는 거야?"
주말에 아이들 뒤치닥 거리를 하다가 이것저것 챙겨주고 잠시 짬이 나서 겨우 몸을 뉘었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펼쳐 들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서 남편이 진지하게 물어왔다. 아마 좀 쉬려고 누운 것이라 짐작했을 터인데 책을 드는 모습이 조금 의아해 보였던 것 같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순간 고민했다. 왜냐하면 평소 책을 읽지 않는 남편이기에 이번 기회에 나의 멋진 답변에 혹해서 책 좀 읽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럴싸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 시간을 끄는 것도 이상하다 싶어서 그냥 ‘나를 성장시키는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말하자마자 글렀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역시 예상대로 남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의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남편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그 이후로 나는 왜 책을 읽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 나는 왜 이렇게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근근한 책 읽기
어릴 때부터 책을 열심히 읽은 편이었다. 덕분에 한글도 빨리 깨쳤고, 똑순이 이미지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그 책 읽기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멀어져 갔다. 또래의 친구들과 노는 재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만화책에 빠졌기 때문일까? 뭐가 됐든 그때부터 중 고등학교 시절까지 교과서 외에는 책을 읽지 않았고 문학소녀와는 먼 삶을 산 채로 학창 시절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고3 현역 시절 수능을 망친 결과 재수를 하게 됐는데, 재수를 하면서 학원을 오가던 버스 안에서 우연처럼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공부가 하기 싫어서 집어 들었다는 생각도 드는데, 당시 내가 집어 든 책은 이문열 씨의 삼국지 전집이었다.
다행히 대학에 가게 됐고, 거기서 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친구들을 보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어찌 됐든 그들의 손에는 늘 책이 들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들 수준의 똑똑함은 가져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고,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한창 철학자들의 말에 귀 기울일 때가 있었는데, 그들이 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게다가 우울하다 여겨졌던 일상의 돌파구로 철학책들은 유용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내 맘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에 대한 해답을 찾기를 바랐다. 무엇보다도 인생은 비극이라 말하던 쇼펜하우어의 말이 너무나도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 더 철학책에 빠졌던 것 같다.
그렇다고 철학에 대한 엄청난 식견을 쌓지는 못했다. 그들의 책을 읽는 것은 흥미로웠지만 어려웠다. 애석하게도 공부에 특별한 재능은 없었기에 학문으로서의 접근은 점점 어려워졌고 철학자들도 점점 멀어져 갔다. 그렇게 철학책을 손에서 놓고 고전 문학이나 인문학 책을 집어 들었다. 당시에는 책을 읽는 것을 지식을 쌓는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쉽게 읽히고 재미있는 소설이나 에세이집은 별로 남는 게 없다고 여겨 등한시했고, 뭐든 어려워야지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어려운 책들을 읽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는 안돼도 그냥 읽고 봤다. 하나의 퀘스트를 돌파하는 것처럼 말이다. 책을 열심히 읽었다기보다는 그나마 내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생산적인 축에 든다는 이유로 나의 책 읽기는 근. 근. 하게 이어졌다.
그런 내가 교사가 되면서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했다. 사실 나는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읽었음에도 불고하고 그들에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식으로 독서를 설득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그 속에 정답은 없어도 길은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딱히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책 읽기의 즐거움
이렇게 쓰다 보니 내가 엄청난 독서가처럼 여겨져 부담스러운데, 정말 그렇지는 않다. 뭐가 됐든 책을 들고 있는 것이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늘 책이 옆에 있었던 이유 중의 큰 비중을 차지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열심히 읽었던 순간들은 모두 시기적으로 좀 힘들었던 순간들이었다. 어쩌면 종교에 의지하는 것처럼 책을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힘든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단순한 재미를 얻든 그 속에서 나를 위로하는 말을 찾든. 내가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 유일한 행위가 책 읽기였기 때문에 책을 찾았던 이유가 크다. 게다가 활자중독증에 걸린 것처럼 뭐든 읽지 않으면 불안했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 내가 다시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올해부터이다. 사실 만화책을 읽는 만큼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느낀 적도 별로 없다. 그런데 지금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책 읽기가 재미있다. 그리고 예전처럼 힘들어서 종교에 의지하는 것처럼 혹은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아쉬워서가 아닌, 정말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읽고 싶기 때문에 읽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지식도 쌓는다. 때론 깊이 공감한다.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도 부담스럽지 않다. 장르를 딱히 가리지도 않게 됐다. 다 읽어야 한다는 압박도 이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어졌다. 그저 책 읽기가 재밌어졌다. 만화책 신봉자로서 여전히 웹툰을 좋아하지만 책과 만화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나를 찾아가는 길
그러고 보면 지난 시절, 나는 항상 누군가를 부러워했다. 예쁜 사람이든, 우아해 보이는 사람이든, 말을 잘하는 사람이든 나에게 부족한 면을 갖고 있는 누군가를 대단하게 여겼고,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저 타고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책을 제대로 읽으면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책을 읽는 것은 바로 온전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를 찾아가게 되었다. 내 모습을 보게 되고 내 생각을 들여다보게 됐다. 조금 더 나아가 나를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생각이 너무 많은 내가 싫었는데, 그것을 인정하고 나니 그 생각들이 나를 만들어 가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됐다.
지적인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대화
사람은 지적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성장하고 성숙한다. 내가 생각하는 지적인 사람이란 나보다 좀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지적인 모습의 바탕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 경험은 너무도 많은 것들을 포함하기에 단순히 학력이 높은 사람으로 함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성숙한 사람을 많이 만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의도하지 않는 이상 내가 만나는 사람의 한계는 일정 부분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책이 그 지적인 사람이 되어준다. 너무도 쉽고 간단하게,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지적인 사람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 준다. 게다가 분야도 다양하고 심지어 내가 고를 수도 있다.
물론 주고받는 대화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에 따른 내 생각은 할 수 있다. 좀 더 나아간다면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또 저자 강연회를 통해 대화의 폭을 좀 더 넓혀갈 수도 있다. (하나의 팁을 더 하자면 글쓰기가 책 읽기에 무척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작지만 큰 변화
부끄럽고 부끄럽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아직 덜 성숙한 자로서 혹은 아직 덜 여문자로서 헛바람 든 소리처럼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는 것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일단 쓰고 본다. 그저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남편에게 책을 읽으라고 백번 말하고 싶은 것을 모아 모아 여기에다 쏟아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미약하지만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태어나서 이십 대까지의 얼굴은 부모와 하늘이 주신 것이고 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 한다. 나는 요즘 그 말을 실감한다. 20대 한창 예뻐야 했을 꽃 같은 시절의 내 얼굴은 내가 봐도 못생겨 보인다. 그때의 나는 왜 그리 불만투성이의 못난이 인형처럼 보이는 것일까? 그런데 지금은 성형수술을 했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표정을 볼 수 있다. 얼굴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한다. 그 바탕에 책이 있고, 진짜 삶을 제대로 살고 싶은 나의 노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루하루 삶이 지겹다고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왜 내 인생은 이러지?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안다. 그리 생각하고 자신을 비관해봤자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들은 아무런 가치도, 소용도 없다. 넘어졌다면 다시 벌떡 일어나서 걸어가면 된다는 법륜 스님의 말이 정답이다.
정답표
책은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길잡이이자 정답표가 되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늦게나마 알았지만 지금이나마 알게 되어 다행이라 여기는 요즘이다. 한편으로는 뭐가 됐든 그 긴 시간 동안 그래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나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나의 말을 공감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 읽기가 즐겁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몇 명 아른거린다. 당장 내 주변에서 찾기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 읽기가 즐겁다는 나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다. 읽으면서 때로는 졸리고 지겹기도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즐거움도 있다는 것이다.
위로를 받고 싶은가. 그러면 아무 책이나 한 권 넘겨라. 세상에는 우리를 위로해주고 싶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애인으로부터 혹은 친구로부터, 나와 가깝다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위로 말고 한 번쯤 내가 듣도 보도 못한 누군가로부터 한 번 위로를 받아보자. 어쩌면 전혀 위로하는 책이 아니라 여겼던 '경제' 책으로부터도 위로받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아인슈타인과 같은 학자에게서부터 위로받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나는 이제 답답할 때에도 즐거울 때에도 책을 펼쳐 들게 됐다. 왜냐하면 책은 이제 정답표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는 이유를 말할 때 정답은 없어도 길은 있다고 했지만 그 말은 틀렸다. 나는 이제 아이들에게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것이다.
책 속에 정답이 있다!
*표지 사진 : Photo by Ellieelie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