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온 마이 웨이를 위해

by 이유진

남편이 양복바지에 볼펜 잉크를 흘리게 되어 세탁소에 갈 일이 생겼다. 여느 때처럼 항상 가던 세탁소에 갔는데 늘 보이던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보이질 않았다. 항상 친절하게 맞아주시던 아주머니 대신 낯선 아저씨 두 분이서 옷들을 정리 중에 있었다. 알고 보니 바로 얼마 전에 주인이 바뀌었다고 한다. 주인아주머니와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창 어떤 잉크를 쏟았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등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웬 아주머니가 나타나서는 내가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거에 상관없이 불쑥 끼어들어 본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다.


"이 집주인 바뀌었어요?"

"예에, 제가 얼마 전에 인수했어요. 주인아저씨가 수술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그래요? 잘 됐네. 내 밍크 옷을 다 망가트려 놓고 사과도 안 하더니 잘됐다. 아저씨는 오래 했어요? 솜씨 좋아?"

"네, 저는 세탁소 30년 이상 했습니다."

"주인 여자가 얼마나 못됐는지, 내 밍크를 그렇게 망가트려 놓고 사과도 안 하고 말이야..."


그 아주머니는 옛날 세탁소 아주머니께 왠지 많이 화가 난 상태인 듯 계속해서 그 아주머니 욕을 하셨다. 나로서는 깨끗하게 옷을 처리해주시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좋은 기억으로 남은 분이었는데, 참 이상하다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아파서 수술했다고 하는데 잘됐다니 그런 말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 아주머니는 도무지 이야기를 끝내지 않으셔서 내 연락처를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어린이 집으로 걸어가는데 문득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이리도 다를 수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세탁소 아주머니는 솜씨 좋고 친절하신 분이었지만 밍크 옷을 맡긴 아주머니에게는 자기 옷을 망치고 사과도 하지 않은 몹쓸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새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난 내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전형적인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지난 내 인생을 돌아보면 주변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내 상황과 기분에 집중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려 애썼던 것 같다. 타고난 성향도 영향이 있겠지만 분명히 그 기저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잘못 표출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요즘 들어 인식하게 된다.


학창 시절에 나를 찾는 친구들이 많았고 늘 내 주변에는 친구가 많았지만 당시를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모두 들어주려고 했으니 어찌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었을까?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스스로를 돌보는 데에는 정작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안 해도 되는 일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자서 모두를 처리하려고 하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탁을 기분 좋게 수락했지만 일을 하면서 내가 호구인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많았고, 열심히 했지만 뭔가 나를 위해 남는 것은 없는 것을 보며 허무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내가 좋은 의도로 생각했던 일들이 남들에게는 그저 시키면 거절하지 않고 하는 '예스맨'으로 인식되었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지금에 와서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조금 알 것 같다. 그저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랬던 것 같은데 왜 잘 보이고 싶었는지에 대해서는 정작 뚜렷한 목적이 없었다. 단지 주변 사람들 모두로부터 좋은 평가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늘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남들로부터 얻으려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 중에 동갑인 선생님이 있었다. 조금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던 선생님이었는데, 정작 본인은 주변의 그런 평가에 개의치 않고 본인이 해야 할 일과 안 해도 되는 일을 잘 구분하면서 자기 계발에 힘쓰는 선생님이었다. 한 번은 다른 선생님을 통해서 그 선생님의 한 말을 전해 듣고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선생님, 내가 보기엔 옷이 너무 예쁜데, 교감 선생님이나 연세 있으신 분들이 아까 점심 먹을 때 한 마디 하시더라고... 무슨 말 듣지 않았어? 괜찮아?"

"에이, 괜찮지 그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는걸.


나에게 이야기를 전해 준 선생님은 그 말을 듣고서 큰 충격에 빠졌다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나와는 달리 늘 자기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던 그 선생님이 대단하다 여겼는데, 역시 확고한 자기만의 철학이 있었구나 싶었다. 사실 어르신들 눈에는 조금 튈 수 있는 복장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 앞에서 입기에 부적절하다 생각이 들만큼의 복장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교사라는 사회의 정형화된 기준 속에 얽매이지 않는 선생님이었다. 확고한 철학을 갖고 행동을 하는 선생님이 대단하다 여겼지만 그 당시에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선생님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온 마이 웨이. 내가 원하는 것이 확실해지니 거절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이론상으로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실천을 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저 안다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정중한 거절'을 실천하고 있기에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 됐다. 그러다 보니 거절을 받아도 예전처럼 상처 받는 일 또한 많이 줄어들었다. 특히 남편과의 관계에서 그 효과가 바로 드러났다. 예전에는 남편이 내 부탁을 거절했을 때 그것을 확대 해석하여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다'라고 혼자 단정 지으면서 상처를 받곤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남편이 '오해로 똘똘 뭉친 나'를 풀어주기 위해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주변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지내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주변인들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자신을 돌보는 것보다 우선시되면 된다는 것을 나는 나를 통해 배우고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잘 알지 못했을 때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다가 깊이 알게 되니 별로라고 생각 들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잘 알지 못했을 때 오해를 갖고 별로라고 생각했다가 알아가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모두에게 일관된 행동을 하며 살면 좋겠지만 사람은 알파고가 아니지 않은가. 감정이 있기에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미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너무 신경 필요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자꾸 말해주고 싶다.


나에 대한 평가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살고 싶다. 사실 평가라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남들처럼 살아야지'의 '남들'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올바른 가치관과 생각을 갖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중요한 덕목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계속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너무 잘 보이려도 혹은 너무 애쓸 필요도 없다. 타인에게 쏟을 에너지를 나에게 집중하여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주변 관계는 저절로 잘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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