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을 먼저 위로해 주기
"엉엉, 엄마..... 킥보드....."
동네 육아지원센터에서 실시하는 무료 수업을 듣고 집으로 가려고 둘째를 막 유모차에 태우려고 할 때였다. 하필 또 전화가 왔던지라 전화를 받으면서 유모차 안전벨트를 채우고 있었는데, 첫째가 서럽게 울면서 다가왔다. 전화받으랴 아이의 말을 들으랴 정신이 없었다. 상황을 보니 어떤 아이가 첫째 아이 킥보드를 타고 저만치 가 있는 것이었다. 일단 전화를 끊고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급히 전화를 끊었고, 전화를 끊자마자 어떤 판단을 할 것도 없이 첫째를 데리고 그 아이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킥보드를 가져 간 아이는 첫째보다 어리기도 했고, 그 아이를 직접 잡아서 내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그저 아이가 스스로 내리도록 설득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킥보드를 쟁취하려는 두 아이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첫째는 킥보드를 되찾으려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고 그 아이도 뺏기기 싫어 킥보드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둘 중 하나는 넘어질 기세였다. 일단 첫째를 진정시켜 보자 했지만 자기 킥보드를 되찾으려 막무가내였고, 킥보드를 타고 있는 아이는 아이대로 뺏기지 않으려 용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양보하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혹여나 아이들이 다칠까 봐 두 아이 모두를 붙잡고 있는 나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비규환 속에서 마음만 다급해졌다. 도대체 아이 엄마는 왜 안 오나 싶었다.
그러다 나도 슬슬 화가 났던 탓일까, 울면서 막무가내로 자기 킥보드를 되찾으려고 잡아당기는 첫째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울지 말라고 되려 혼을 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이 엄마가 상황을 알아채고 걸어왔다. 그러고는 킥보드를 잡고 울고 있는 본인의 아이를 훌쩍 안아서는 '아이고 속상했어?'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렇다 치고 우리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가버리는 모습을 보며 그만 기분이 확 상해버렸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첫째를 위로해야겠다 싶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 엄마처럼 아이의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위로해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장 속상할 사람은 우리 아이였을 텐데 왜 나는 아이의 속상함을 위로하기보다는 울고만 있는 아이의 표현 방법의 잘잘못을 가리려고만 했던 것일까? 왜 그 엄마처럼 먼저 내 아이를 보호해주지 못했을까? 자꾸 죄책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최대한 괜찮은 척하며 일단은 아이를 위로했다.
"시완아 동생이 킥보드 가져가서 많이 속상했지?"
"네에..."
"동생이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아. 킥보드가 타고 싶었나 봐. 지완이도 시완이 꺼 자꾸 가져가잖아. 그지?"
"맞아. 그런데 다른 사람 꺼 가져 가면 안 돼."
"그래, 시완이 말이 맞아. 그런데 엄마는 시완이가 안 울었으면 좋겠어. 울지 말고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아. 알았지?”
"네~!"
킥보드를 되찾은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씽씽 달리면서 나를 앞서갔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언짢았다. 그 엄마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당당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만약 우리 아이가 그랬더라면 내 모습이 어땠을지 그려보았다. 보나 마나 달려가서 엄마한테 죄송하다고 이야기하고 뺏긴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연신 쩔쩔맸을 모습이 눈 감고도 훤했다. 그렇게 생각이 드니 화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나고 문득 '내가 처신을 잘못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가서 킥보드를 가져올 것이 아니라 그 엄마한테 상황을 설명하고 그 엄마가 아이를 설득해서 킥보드를 가져다주게 했어야 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바보 멍청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박았다.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자책은 그만하기로 했다. 대신 혹시라도 다음에 또 유사한 일이 일어나면 그렇게 하자 다짐했다. (왠지 모를 분한 마음은 더 커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사이에 그 엄마를 마주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인사를 해야 하나? 그렇다고 반갑게 받아주는 것도 아닌데, 뭐하러 인사를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면식은 있지만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어린이집을 오가다 몇 번 마주치게 됐지만 결국 인사를 하지 않았다. 스스로 옹졸하다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일상은 계속됐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에 똑같은 상황이 다시 일어났다. 나는 첫째 아이와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온 상황이었는데,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 아이가 또 첫째의 킥보드를 타고서는 저만치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잘 됐다 싶었다.
"저기, 아이가 킥보드를 가져간 것 같은데, 좀 돌려주시겠어요?"라고 내가 말하는 데, 동시에 우리 첫째가 그 엄마에게
"시완이 킥보드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지난번에 내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아이가 놀라웠다. 아마 내가 옆에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울지 않고 또박또박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뿌듯했던 것 같다.
"아, 네."
그 엄마는 나와 첫째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서 본인의 아이로부터 킥보드를 받아서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형님, 미안해~' 하면서. (물론 내리지 않으려는 아이와 엄마는 한참 씨름했지만 지난번과 달리 나와 우리 아이는 그 상황에서 빠져있었다.)
그제야 그 엄마에게 갖고 있었던 나의 언짢았던 기분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래 내가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어. 애들일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나 보다 싶었다. 감정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역시나 힘들다는 것 또한 알게 됐던 것 같다. 어쨌든 되풀이된 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으로 행동을 한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더불어 우리 첫째도 말이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우리 첫째를 크게 칭찬해주었다.
"이야~ 우리 시완이 엄마가 말한 거 잊지 않고 잘 생각하고 있었구나, 천잰데?"
여전히 하루에도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바뀌는 아직은 미숙한 팔불출 엄마이지만 그 누구보다 우리 아이의 마음을 먼저 위로해 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표지 사진 : Photo by Ray Hennessy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