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
어느덧 목련과 벚꽃은 떨어지고 연둣빛 잎들이 나무를 뒤덮어 버렸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하얀 꽃을 피운채 서 있던 목련 나무는 어느새 푸른 잎만 무성한 나무로 탈바꿈 해 있었다. 하얗고 탐스러웠던 꽃잎이 그리워 물끄러미 나무를 쳐다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얗게 피어있던 꽃 잎을 몰랐더라면 이 나무가 목련나무였는지를 내가 알 수 있었을까?
꽃부터 피는 목련이나 진달래, 개나리 같은 것들이 더욱 그렇다. 그들은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기 때문에 짧게나마 꽃을 피운 시기를 못 본 채 지나갔다면 나는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새삼 ‘꽃의 역할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종족 번식을 위한 역할을 충실히 해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요즘 들어 꽃을 유심히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는 꽃이 좋아지면 나이가 드는 것이라 했는데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것이 확실한 것 같다. 꽃이 참 예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첫째 어린이집을 데려다주러 오고 가는 길 가운데 혹은 달리기를 하기 위해 공원을 찾는 가운데서 꽃들을 마주하게 된다. 게다가 라일락 꽃 향기가 그득해 꽃들이 절로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서른이 코앞이라는 생각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곧 마흔이 된다고 깜짝 놀랄 서른 중반의 내가 있다.
문득 내 인생에 꽃 같은 시절이 언제였을까 떠올리게 된다. 흔히 20대를 꽃다운 나이라 부르는데, 이미 그 시절은 훨씬 전에 지나갔다. 내 인생에 꽃 같은 날들은 이제 찾아오지 않는 건가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나의 20대는 꽃 같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목련나무, 진달래나무는 꽃이 진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꽃은 떨어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서 푸른 잎을 만들어 새로운 모습으로 서있다. 오히려 푸른 잎들을 갖고 더 오랜 기간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잎을 보니 또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진달래나무 옆에 진달래와 비슷한 꽃이 있다. 열심히 찾아봤더니 산철쭉이었다. 진달래는 이미 져버렸고, 그 꽃은 이제야 활짝 폈다. 둘은 색도 비슷하고 꽃 모양도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다르다. 자세히 보면 잎모양도 꽃 모양도 다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지금은 진달래는 져버렸고 산철쭉이 활짝 피어나고 있다. 홀연히 혹은 도도히 피어있던 진달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지난주에 어린이 집에 갔다가 공원에 들렀다. 마지막으로 벚꽃을 봤으면 좋겠다 생각해서다. 예상대로 벚꽃은 이미 떨어지기 시작해 만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푸른 하늘, 깨끗하고 맑은 공기, 선선한 바람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날 흩날리는 벚꽃 나무 아래 두 아이들의 달려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그래 내 인생에 꽃 같은 시절이 지금이구나! 이 좋은 날 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나에게 꽃 같은 시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꽃 같은 20대를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지난날 내가 왜 그랬을까를 후회한 적이 많았다. 후회한 들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날들 이건만 나는 왜 늘 내 기억 속의 20대를 우울했었다고만 단정 지었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웃었던 날들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힘든 날도 있었지만 전체로 봤을 때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다. 재수해서 힘든 시간은 1년이었고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즐겁게 보낸 시간은 4년이다. 임용에 합격하기까지 힘들게 공부한 시간은 2년이지만 합격하고 나서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한 것은 그 보다 훨씬 길다. 왜 두 번의 시험의 실패가 내 인생에 큰 어두운 그림자로 여기며 우울한 청춘이었다 판단했는지. 나는 이제야 내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닫는다.
꽃은 지지만 다시 핀다.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찾아오고 가을을 맞이하고 겨울을 이겨내면 다시 봄이 찾아온다. 그렇게 계절이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다시 꽃은 필 것이다. 올해 벚꽃은 져버렸고, 내가 좋아하는 진달래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5월이 찾아오면 여기저기 꽃들은 더욱 만개할 것이다. 꽃이 피는 순간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한겨울에도 동백꽃은 피지 않는가!
내 인생에 꽃 같은 날들이 아직 더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생각하니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표지 사진 : 수수꽃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