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혼나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지 말자.
고등학교 중간고사 기간이었을 것이다. 시험을 끝내고 집에 가려는 데 문득 답지에 제대로 적었는지가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미 시험은 끝났고, 답을 제대로 적었든 말든 이미 제출했기 때문에 어찌할 방법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지에 내가 뭐라고 적었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내 고집이었을 것이다. 굳은 결심을 하고 교무실에 찾아갔다. 문학 과목으로 기억한다. 당시 담당 선생님께서는 안된다며 딱 잘라 거절하셨다. 그때 포기했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 다음 날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것 때문에 방해받기 싫다는 생각으로 연거푸 선생님을 졸라댔다. 결국 선생님은 자기도 나가봐야 한다면서 나를 교무실 밖으로 밀어내셨고, 본인도 교무실을 나오셨다. 그러면서 걸어가는 내 뒤통수를 한 대 치시면서 어서 가서 공부나 하라고 혼을 내셨다. 정말 충격이었다. 거절당한 것도 속이 상했는데 뒤통수까지 맞으면서 혼나는 건 너무 억울했다. 그 일은 내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잊히지 않은 사건이 되었다.
그 사건으로 나는 "혼이 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모범생으로 지냈기 때문에 웬만해서 선생님께 혼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 방송부 부장을 하면서 교무실을 자주 드나들었고, 선생님들과의 친분관계가 형성된 나로서는 내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당시 나를 혼냈던 선생님을 원망하는 것으로 돌려버렸다.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그런 결론이 내려졌다. 엄마한테 혼나는 경험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되고서 이 결론을 모범생 아이들에게 적용했다. 그 아이들이 혹시나 나와 같은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평소 학교생활을 잘하고 모범적인 친구들에게도 잣대를 엄격하게 적용했다. 물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들에게 해 주어야 할 칭찬에 조금 인색한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공식은 나의 아이들에게도 적용되어 아이들을 혼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36개월 이전에는 무조건 수용해주어야 하고 사랑만을 주어야 한다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내린 그 결론으로 인해 혼내는 나를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홍균 정신과 의사가 쓴 <자존감 수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부모는 아이가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예방주사를 놓는다고 생각한다. "너 이러면 사람들이 싫어해. 외톨이가 될 거야"라며 핀잔을 준다.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간 내가 시완이에게 자주 했던 말이었다. '혼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이유 만으로 아이가 동생의 물건을 빼앗을 때마다 "너 이렇게 동생 꺼 뺏으면 안 돼" 혹은 "어린이 집에서 장난감 혼자만 갖고 놀고 그러면 친구들이 싫어해"라는 말을 반복했다. 한 번씩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여 속상했냐며 위로하기도 했지만 순서가 바뀐 것이 문제였다. 일단은 먼저 혼을 냈던 것이다.
내가 잘못하고 있었던 것은 "혼나면 안 좋은 것이다"라고 정의를 내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혼이 날 수도 있다"라고 정의해 보자. 우리 아이들에게 미리 예방주사를 놓는 것처럼 혼나는 경험을 해 줄 필요가 없어진다. 대신 선생님에게 혹은 부모님께 야단맞았을 경우, 왜 야단맞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맞다는 결론이 내려지게 된다.
물건을 혼자 갖고 노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친구들이 싫어할 거야, 외톨이가 될 거야 라는 말 대신에 '같이 갖고 노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혹은 '같이 하는 게 싫으면 먼저 하고 친구에게 주는 게 어떨까?'처럼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고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 책에서 처럼 미리 두려움을 예방주사로 놓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말에는 힘이 있다. 자꾸 반복해서 하면 결국 아이에게는 내가 하는 말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된다.
학교에서도 야단맞는 것이 익숙해진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때론 강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익숙하다고 해서 혼이 나는 것이 기분 좋을 리는 없다. 그저 반복된 상황에 자신의 감정을 모른 체하는 것뿐이다. 혹은 반복된 경험으로 인해 그저 빨리 그 상황이 지나가기 만을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방주사는 병원에서만 맞자는 생각이 든다. 불필요한 두려움을 아이에게 주입하여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이들에게 혼이 나는 것을 익숙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간 내가 잘못된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이 필요 없는 경험을 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정말 다행 아닌가! 나의 아이들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혼이 나는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나부터 조심하자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