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이 자리에 왜 서 있는가?

나의 신념이 현실에 퇴색되지 않도록

by 이유진

얼마 전 공개수업과 임상장학을 치르고 그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학교에는 학부모 공개 수업을 비롯해 신규교사가 3년간 수업 공개를 하는 임상장학이 있다.) 회의는 학년군으로 묶어서 5, 6학년 선생님들을 비롯 연구부장 선생님, 교감, 교장 선생님이 함께 모여서 이루어진다. 수업을 하기 전, 후로 나눠서 두 번 정도 협의회를 하는데,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게 운영되겠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동학년이 같은 수업을 준비하여 지도안을 제출하고 그에 따라 협의회가 이루어진다. 물론 학년군 협의회 전에는 동학년에서 의견을 맞춰야 하기에 여러 번 모이게 된다.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하고 귀찮다 싶기도 하지만 막상 하나의 수업을 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서로 나눠서 준비를 하다 보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이고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학부모 공개수업은 줌으로, 임상장학은 오프로 진행되었다. 온라인이든 오프이든 학부모 공개수업을 다른 선생님들이 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임상장학은 신규 선생님들이 선배 선생님들께 지도를 받는다는 의미로 진행되기 때문에 동료 선생님들이 참관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 학교의 신규 선생님 모두가 5, 6학년에 포진(?)되어 있어서 이번 기회에 그들의 수업 모두를 보러 갔다. 사실 수업 참관이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복직을 한 나로서는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수업을 하나 궁금했다. 특히 우리 동학년 신규 선생님들은 다들 학급 관리도 잘하고 평소 수업 준비에도 열심히라 공개 수업이 기대가 되었다.


부장교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동학년 선배 교사로서 지도안을 잠깐 봐주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셋이서 같은 과목, 같은 차시의 수업을 하는 것에 조금 아쉬웠다. 신규 선생님들이 많은 만큼 다양한 수업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이틀에 걸쳐 공개수업이 시작되고 수업을 참관하고 나서는 내 생각이 짧았구나를 느꼈다. 같은 지도안이지만 서로 다른 수업이 펼쳐졌다. 함께 수업을 준비를 하면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많이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다. 아마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신규 선생님이 동학년으로서 같이 임상장학을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면 나 때는 동학년에서 같은 수업을 할 수 있는 신규 선생님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니 부럽기도 했다. 다들 신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척척 잘 진행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어땠나 싶기도 하고, 저런 수업은 나도 한 번 해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무쪼록 수업을 참관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공개 수업이 다 끝나고 사후 협의회가 있었다. 5, 6학년 선생님들이 서로 각자 수업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나 줌 수업을 했기에 기기들이나 자료들을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연구부장 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께서는 특히 그런 부분을 독려하시는데,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장비들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시기 때문이다. 사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을 맨땅에 시작해야 했던 시기에 다들 이렇게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공유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다. 나 역시도 동학년 선생님들이 아니었으면 올해를 어떻게 보냈을까 싶을 만큼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원론적인 이야기 한 마디만 하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지금 왜 이 자리에 서 있는가?


혹시나 내가 미래의 아인슈타인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업을 하기 위해 아이들 앞에 설 때 스스로에게 늘 이런 질문을 해보라고 하셨다. 머리를 띵하고 울리는 말씀이었다.


얼마 전 교육청 주관으로 실시된 줌 연수에서 김누리 교수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랬다. 한국은 군대 문화가 비정상적으로 자리 잡은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 안에 파시즘이 모두 존재하는 것 같다고. 강연이 끝나고 많은 선생님들께서 그 말씀에 동감했다고 하며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발표하셨는데, 교장선생님께서도 그런 맥락의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결국 수업의 기술보다 교사로서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재미있는 수업, 효율적인 배움이 되도록 이런저런 준비를 많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가끔 생각난다던 지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선생님은 화가 나면 학생들에게 소리를 치거나 체벌을 하는 대신 교탁에서 뭔가를 막 쓰셨다고 한다. 그렇게 화를 가라앉히고 수업을 재개했다 하는데 자기 역시도 언젠가부터는 선생님을 따라서 화를 가라앉히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아마 그 선생님의 교육철학이었을 것이다.


교사로서 가졌던 대단한 사명감은 사그마이스터의 바나나처럼 현실의 삶에 젖어들면서 직업인으로 타협했다. 그러다 다행히도 이런저런 계기를 통해 내가 가진 직업의 가치를 깨달았다. 나의 말과 나의 행동하나 하나가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 그래서 혹여나 누군가는 사사로이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대단한 사명감을 갖기로 했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그 작은 깨달음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었고, 아직까지는 직업인으로서의 스트레스보다는 즐겁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더 많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나는 아이들에게 학창 시절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선생님들 중의 한 명일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에게 아무 의미 없는 존재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1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기에 나와 함께 교실에 있는 동안 그들이 나로부터 무언가 배워가는 것이 있기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기를. 자기 삶의 가치를 알고 자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그러기 위해 내가 왜 지금 아이들 앞에 서 있는지를 항상 유념하며 살아가기를. 나의 이 생각들이 썩어가는 바나나처럼 녹록잖은 현실에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표지사진 : 스테판 사그마이스터 작품(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