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의 차이에 대해
얼마 전, 드디어 광고 만들기 수업이 끝났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날수가 갑자기 줄어들면서 완성을 하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내가 그랬듯 조별 과제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이들에게 있어 꽤 부담이 되는 일 중 하나이다. 처음 광고를 만들자고 했을 때, 아이들은 볼멘소리를 냈다. 늘 놀고 싶은 마음이 절대적인 그들이기에 학원 숙제 비롯, 해야 할 것도 많은데, 거기다 뭔가를 더 만든다니! 나는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내가 학교 다닐 때에도 그랬다. 특히 중학교 때에는 막 수행평가가 도입된 시기라서 뭘 만들어 제출하라고 하는 것들이 많았다. 어찌나 싫었는지. 지금도 연수를 들을 때, 진행자가 뭘 하라고 시키면 그것만큼 귀찮은 일이 없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듣고만 싶은데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하기 싫은 일 속에서 늘 배움은 존재한다. 직접 해야지 느끼는 게 있고, 나중에 써먹게 될 확률도 현저히 높아진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자꾸 뭔가를 직접 할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하게 된다.
대신 일방적인 숙제가 아니라 학교에 올 때마다 수업시간 안에 하는 걸로 하겠다고 처음부터 신신당부를 했다. 먼저 교과서에 제시된 진행 순서에 따라서 2차시 정도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광고의 특성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통해 광고를 찾아보라고 하고 아이들과 함께 본인이 찾은 광고를 모두 한 번씩 보았다. 친구들이 찾은 다양한 광고를 보면서 아이들은 다양한 폼을 간접 체험했다. 그리고 모둠을 만들고 주제를 정하고, 역할을 나누고, 어떤 콘셉트로 촬영할 것인지를 의견을 나누게 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것의 부담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엔 베끼라고 말한다. 사교육이 부모들을 꼬이는 가장 흔한 말이 우리 아이의 창의력을 키워준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여러 강연을 통해 혹은 책을 통해 알게 된 창의성이란 아무것도 없는 데서 뾰로롱 하고 나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창의성은 내가 알고 있는 많은 기초지식과 많은 경험들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디에서 봤을 법한데 조금 다른 것. 많은 시행착오와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정말 자기만의 독창적인 무엇인가가 나오게 된다. 절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일진대, 이것만 하면 창의성이 길러진다는 유혹에 우리 부모들의 지갑은 쉽게 열린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담을 갖지 않도록 광고도 베끼라고 했다. 직접 찾아서 같이 보았던 많은 광고들 중, 마음에 드는 광고를 골라서 베끼고 그중에서 한 부분만 바꾸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좀 안심하는 눈치였고 그렇게 광고 촬영 수업은 시작되었다.
줌 수업을 하는 날에는 소회의실을 통해 모둠별로 촬영할 장면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도록 했다. 그리고 학교에 오는 날에는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는 시간을 제공했다. 비록 촬영과 편집을 학교에 올 때만 해서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완성할 수 있었다. 게다가 1학기 때 알려줬던 편집 프로그램 사용법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익힌 탓인지 아이들은 알아서 잘 해냈다. 중간중간 썸네일 만드는 법에 대한 수업도 했기에 작품은 꽤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아이들의 광고는 재미있었다. 기발하기도 했고,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했고, 편집에서 조금 엉성한 부분도 있고, 뜬금없는 결말에 이건 뭔가... 싶기도 했지만 영상 속 아이들은 웃고 있었고, 즐거워 보였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있었겠지만 그저 책상에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듣는 것과는 다른 배움을 얻었을 것이다.
나의 작은 바람은 아이들이 훗날 기억했을 때, 좋은 추억으로 남겨졌으면 하는 것인데, 다행히 어느 정도는 달성한 것 같다. 구글 피피티를 통해 작성한 소감문에는 ’힘들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해서 재미있었고, 스스로 만들어 낸 결과물을 보고 뿌듯했다’ 는 말들이 적혀있었다.
직접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막상 하면서 귀찮기도 하지만 본인이 참여하여 만들어진 어떤 결과물을 볼 때 느끼는 뿌듯함은 가만히 앉아서 주입식 수업을 들을 때에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내가 중심이 되어 일방적으로 설명을 하는 수업을 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시키기 위해서는 방법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고, 그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도 있다. 무엇보다 막막함, 막연함, 혹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그런 것들이 먼저 뛰어든다. 아이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나 역시도 걱정이 되고 부담이 된다. 하지만 그럴 땐 차근차근 단계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피자를 맛있게 먹기 위해 8조각으로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단순하게나마 할 일을 나눠 언제 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뒤 처음을 시작하게 되면 결국 그 일은 진행되게 되어있다.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 나누어 일단 처음을 시작하는 것. 그게 내가 배운 아주 중요한 팁이다. 한 편의 글을 발행하기 위해 일단 어떻게든 초안 쓰기를 시작하는 것 처럼말이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아직도 지어지고 있다. 내가 그 성당을 방문했을 때가 2013년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때도 공사 중이었고, 지금도 공사 중이다. 그 성당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압도적인 규모와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걸 볼 때에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차근차근 계획대로 만들었고 지금도 그 계획에 따라서 만들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시간이 쌓이고 쌓여 결국 언젠가는 완성이 될 것이다.
가우디는 비록 완성작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것이 그의 실패는 아니다. 아이들이 이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대단한 일도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없고, 하다가 비록 완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혹은 결과물이 엉성하다고 해서 자기가 한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결론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묵묵히 해내는 것, 바로 그 자체로 아주 큰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저걸 어떻게 해?’라는 지레 겁먹음으로 도전조차 하지 않는 사람, 한걸음 뒤로 발을 빼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은 누구나 늘 잘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있기 때문에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 잘하고 못하고는 그다음 문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하다 보니 잘하게 되는 것일 뿐, 시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아이들에게 자주 해준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라고. 뭔가를 잘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에게 부담이다. 그냥 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잘하는 것임을 많이 칭찬해주면 좋겠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그렇듯 아이들 역시도 누구나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단한 완성작을 목빼고 기다리기 보다는 가우디의 성당처럼 공사를 멈추지 않고 그저 계속 계속 해 나가기를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