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 일부러 내 앞에만 오는 게 아니야

<살고 싶다는 농담>과 허지웅

by 이유진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서는 그런다. 이것 봐 꼭 아무도 없다가 내가 움직이려고 하는 순간 이렇게 나타나잖아. 아 나 요새 재수가 없는 것 같아.


오빠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아니라니까. 진짜야.


그 이후로 그의 불평불만은 몇 차례 발생했다. 몇 번을 이야기했으나 먹히지 않는다. 그런데 이해도 된다. 예전에 내가 그랬으니. 영화 '체인지'라도 찍는 중인지 요즘은 남편이 그런다. 상황이 바뀌었다. 현실의 고단함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그러고 보면 요즘이 그의 삶에 성공경험이 유난히 잦지 않은 때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남편이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아니 답답하기도 하고 그렇다. 나 역시 그랬다. 난 무엇인가 억울함이 많은 사람이었다.


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으며 아 글은 이런 거지. 난 아직 멀었네 하고 좌절한다. 한계를 깨닫는 순간이랄까. 그런데 아직 젊었던(물론 지금도 늙진 않았지만 우리 반 아이가 건네는 새해인사에 붙은 '정정'하세요 라는 말은 참... 적응이 안 된다.) 내 인생의 암흑기라 불렀던 임용 3수 시절. 홀로 옥탑방에 책상에 앉아서 에세이를 읽으며(제목이 뭐였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누군가 이렇게 끄적여 놓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 팔려 돈을 번다는 사실이 참으로 베알이 꼴렸고 부당하다 생각했으며 내 글과 도무지 무엇이 다른 것인지 알지 못했던. 참으로 어렸던 그 시절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 팔리던 책 속의 글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나보다 똑똑하지 않다고 여겼던 동기들도(이 얼마나 자만이었던가) 정식 선생님이 되어 연애도 하고 예쁘게 꾸미면서 잘만 살고 있는데 내 인생 어쩌다 임용 3 수라는 시련을 겪고 있는지. 내가 그리 멍청했는지. 나는 뒤로 나자빠져도 코가 깨질 운명인 건지. 일도 하면서 공부도 해야 했던 그때. 임용 일주일 전에 신종플루에 걸렸던 그때. 내 인생은 참으로 거지 같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때마침 남편이 느끼는 상황과 똑 들어맞는 부분을 발견하여 (먹히진 않겠지만) 한 번 읽어볼래?라고 말했다가 재빨리 그럼 읽어줄까? 제안하니 알겠다고 한다.(이 책에서 가장 공감한 부부이다. <불행에 대처하는 방법>)


4-5장 정도 되는 분량을 쭉 읽어주었다. 아이들이 중간에 끼어들어 소리들이 얽혀 들었다. 남편이 얼마나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는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네. 동의를 한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게 만들 수많은 가정들을 떠올려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이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결심을 하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일단은 만족을 할 뿐이다.(참 글을 잘 쓴다.)


나 역시 그래야 한다. 난 어차피 재능이 없어. 어차피 늦었어. 사람이 자기 한계를 알아야지. 이런 글은 못쓸 거야. 베셀 작가는 역시 다르네. 이런 생각들로 글쓰기를 접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싶지만. 한편으로 냉정하게 생각하면 (참으로 씁쓸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그나마 모르는 사람이니 그냥 너는 너고 나는 나다의 뻔뻔한 정신으로 생까는 수밖에. 모른 척하는 수밖에. 그런 것에 비교하다가는 평생 책 한 권 못 내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그러니 뻔뻔해지자. 내 인생은 초라하지 않다는 뻔뻔함. 내 글에 누군가 한 명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는 믿음. 내 책도 출판될 거라는 희망.



사실 불안이 스며드는 이유는 임경선 씨가 말했던 그 한 문장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서다. 40대가 되었을 때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무서워서 그렇다. 이제 곧 40에 가까워져 가는 나이가 돼가고 있는데(물론 그녀가 말한 40대는 40살 딱 되었을 시점이 아닌 두 자리 중 앞자리가 4인 시절의 아마 중 후반부가 되었을 시점이겠지만) 내가 멋모르고 부푼 희망을 안고 있는 건 아닌지 싶은 그런 초라한 기분 말이다.


내가 원하는 독자들은 내 글을 읽지 않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면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들이 그냥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야 넌 아직도 자기 자신을 모르니? 너무 늦었어.


남편이 하는 말들이 지금 내가 상상한 이야기와 같다고 한다면 아마 아니라고 반박하겠지. (반전으로 동의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성적인 인간이라) 그런데 나는 정말 그렇다. 내 글은 아직 멀었다 싶어 진다. 편집자들이 좋아할 만한 기깔나는 소제도 없는데, 뭐하러 내 책을 출판해주겠냐는 그런 소리를 해 댈 때, 사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야 마누라. 넌 할 수 있어. 너 글 잘 써’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래 남편도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거구나 싶어 진다.


지금은 모두가 잠든 밤이니 내일 아침에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그때는 위로의 말을 건네야겠다. 재수 없는 거 아니라고. 곧 승진할 거라고. 잘하고 있다고 토닥여 줘야겠다. (사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지만 다시 괜찮아진 거 같아서 아무 말 않고 지나가버렸다. 이 글이 없었다면 그런 생각을 했는지 조차 잊어버렸을 것 같은)


글을 마치며 오디오북이라는 것의 쓸모에 대해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유난히 잠이 오지 않던 밤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오디오북 무료 광고에 접속하면서 였기 때문이다. 까만 밤, 허지웅 씨가 나지막이 읊조리는 자신의 이야기가 참으로 전문 배우 같았다. 그 사람을 전혀 모르지만 그의 글과 목소리로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겠다 싶은 그런 느낌. 쓸쓸한 느낌. 글을 잘 써야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예민함과 쓸쓸함이 그런 것이라면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그 날의 밤. 평가와 스스로를 분리시키라는 그의 조언에 크나큰 위로를 받으며, 내 멋대로 해석해도 되겠지 라는 뻔뻔함으로 앞으로 나올 그의 또 다른 책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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