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하면 좋은 이유
'언니 글 한 번 써보세요' 최근 내가 만난 지인들 중 몇 명에게 한 말이다. 책을 한 번 내 보겠다는 마음으로, 혹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 달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열심히 초고를 썼다. 매일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 동안 글을 쓰면서 내가 느낀 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의 재미였다. 물론 나의 초고는 출판사들로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퇴짜를 맞은 상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신감은 아직 꺾어지지 않은 채 '브런치 작가'로서 누군가 한 명은 내 글을 읽겠지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쓰고 있다. (초고는 나 혼자 보기 아까워 브런치 작품 중 하나로 발행 중에 있다.)
그러면서 나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한 번 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책 한 권을 출간한 작가라면 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은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글을 신나게 쓰고 있는 것은 왜일까.
요즘은 책이 명함인 시대란다. 그만큼 책을 출간하는 것이 특정 작가들에 국한되지 않은 세상이 됐다. 많은 책에서 혹은 많은 작가들이 글을 쓰라고 이야기하고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 같이 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정말 희망이 될 법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주위에서 책을 출간하는 분들을 보게 되니 나 역시 책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그런 희망으로 열심히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책을 내고 말고를 떠나 글 쓰는 일이 정말 즐거워졌다. 내가 즐거우니 타고난 '오지라퍼'로서 다른 사람에게 슬쩍슬쩍 한 번 써보라고 말하고 싶은 안달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글을 쓰면 논리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등의 이유는 이미 출간된 많은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나는 오롯이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하면 좋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글을 쓰면서 재미를 느끼고, '계속 글을 써야겠다'라고 생각한 것을 정리해 보니 3가지 정도였다.
첫째, 글을 쓰면서 나는 자유로워졌다.
내가 한 달 반 정도의 시간 동안 한글 파일 100여 쪽에 달하는 글을 쓰면서 얻은 것은 내 인생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과거들이 글로 적고 나니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내가 부끄럽다고 기억하는 과거는 대입 재수 시절과 임용고시 합격까지의 기간이다. 그 기간은 '내 인생은 왜 이럴까'를 비관하며 힘들어했던 날들이었다. 나는 그 시절들 때문에 나의 20대를 내 인생의 암흑기로 여겼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정작 그 기간은 20대 10년 중 3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 잠깐의 시간을 10년 전체로 여기고 나의 20대가 우울한 시기였다고 단정 시켜 버렸고, 감추려 들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추어 보니 그 10년 중에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합격의 기쁨과 그로 인해 가졌던 즐거운 시간 역시 그 기간 안에 포함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 시간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나는 내가 만든 콤플렉스와 부끄러움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말 그대로 글을 쓰면서 '치유'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노라며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됐다.
둘째, 잔소리를 할 수 있다.
나는 잔소리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무서운 척 하지만 츤데레처럼 이래 저래 아이들이 신경 쓰이는 사람이라 아이들을 앞에 두고 잔소리를 많이 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건 아이들한테만 허용되는 것이었지 다 큰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면 정말 큰일 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나의 언행이 누군가를 간섭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은지 늘 조심한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내 잔소리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도 굉장히 고급스럽게 말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게 내 주장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결국 책에서 하는 말들은 작가의 의도가 담긴 메시지이다. 나는 그것이 잔소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느꼈다. 글로 표현되어서 있어 보이고 어렵게 느껴질 뿐이지 작가는 책을 통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고, 2-300여 쪽의 분량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주구 장창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서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겪었던 일들, 내가 느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약간의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은 그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경험인지 느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글을 통해서 그냥 하는 것이다. 남편이나 가족 혹은 친구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나의 모든 언행이 글로 쓰면 조언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내가 그랬듯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위안을 받고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셋째,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다.
나는 늘 무엇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 부러웠고, 그런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다. 그런데 이제 글을 쓰면서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있다는 기분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내가 만든 것이 기록으로 쌓인다는 것이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누가 묶어 주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묶어보지'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내 기록을 만들어 쌓아가고 있다. 기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서운 건지를 요즘 느끼게 된다. 우리가 기록으로 남기는 것들은 정말 많다. 사진, 동영상, 수집 등 여러 가지로 우리는 기록으로 남기지만 정작 내 생각을 남기는 것에는 소홀히 한다.
<매일 한 번 써봤니?> 저자이신 김민식 pd님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유는 시대를 뛰어넘는 활자의 힘 때문이라고 한다. 당신의 딸들이 자라서 인터넷 서핑 중에 아빠의 글을 발견하게 되고, 그 글을 읽으면서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이런 걸 왜 써?'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와 닿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적어도 딸들에게는 소중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것을 피디님은 알고 있는 것이다.
내 생각을 글로 남긴다는 것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 보기에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써놨어' 싶을 지라도 훗날 다시 읽어봤을 때, '아, 내가 그때 그랬구나', '그때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구나' 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뭐가 됐든 기록으로 남겨 두면 언젠가 한 번은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도 웃으며 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피디님이 <안네의 일기>를 예시로 들면서 말씀하신 '기록의 힘은 현실을 압도한다'라는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물론 글을 쓰는 일은 귀찮은 일이고,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머리가 아픈 일이기도 하다. 어렵기도 하고. 글을 쓸 때마다 느끼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다시 읽어 볼 때면 '도대체 뭘 쓴 거야'싶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고쳐쓰기도 자주 해야 하고, 이래 저래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 일이다. 의외로 정신노동이라 그런지 금방 배가 고파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둘째가 낮잠이 들기만 하면 글을 쓴다. 여러 번 고쳐 쓴 글을 읽다가 지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발행을 한다. 그러면 잠시 뒤에 '누군가'가 라이크를 눌렀다 혹은 댓글을 남겼다는 알람 소리가 오는 것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몇 번의 헤드뱅잉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대학시절, 졸면서 강의를 듣다가 엉망진창 필기를 해 놓은 것처럼 화면에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나열된 것을 보고 서둘러 지웠다. 하지만 쉽사리 컴퓨터 앞을 뜨지 않는다. 일단은 뭐가 되든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책을 읽으며 다시 힘을 내야 한다. 잠깐 눈 붙이러 침대로 갔다가는 그날 글쓰기는 쫑이라는 것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쓰다 보면 술술 풀리는 때가 반드시 온다.
어둠이 지나면 대명천지가 나타난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으며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그것을 믿으라고 하니 그저 믿는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대단한 스킬이 있어서 쓰는 것이 아니고, 그저 쓰면 '뭐가 되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쓴다. 아이가 잠든 이 시각 나 역시 아이 옆에 놓인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일단 그 마음을 누르고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린다.
사실 앞의 이유에서 밝히지 않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나도 '작가'가 될 수 있구나'라는 나의 어린 시절의 '꿈'때문이다. 비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작가'가 되는 것이라 여겼는데, 이제는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정말이지 너무 신기한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쓴다. 내가 잘 쓰든 못쓰든, 누가 보든 안보든 그것은 다음에 생각할 일이고, 일단 쓰면 '작가'이기 때문에 나는 일단 쓴다.
오늘도 함께 유모차를 끌고 도서관을 동행한 언니에게 '언니도 글을 써보시라며'설득했다. 열심히 유모차를 밀고서 도착한 도서관에서는 마침 '저자 강연회'가 진행 중에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행 작가의 강연인 것 같았다.
"언니 이봐요, 언니도 이렇게 될 수 있어요! 글 쓰면 언젠가 이렇게 책도 내고 강연도 하면서 살 수 있다고요!"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말했다. 마치 나에게도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언젠가 내 책이 내 손에 들릴 날, 그리고 내가 그 책으로 강연하는 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