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을 가져보기
얼마 전에 새로운 모임에 합류할 기회가 생겼다.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에 그저 기쁘기만 했는데 정작 모임에 다녀오고 나니 머리가 아팠다. 내가 그간 해 온 일들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이미 친분이 있으신 분들 사이에서 미운 오리 새끼 마냥 겉도는 느낌이었다.(물론 모두들 환영해 주었다.)
집에 와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공원에 가서 신나게 놀았다. 맛있는 돈가스도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먹고 돌아왔는데, 저녁이 되니 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뭔가 활력이 생기지 않았다. 요 몇 달간 늘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지낸 것이 마치 거짓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무심결에 휴대폰을 들고 유튜브를 검색하며 그간 업로드한 영상들의 조회수를 보는데, ‘내가 지금 이거 왜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조회수는 상관없어'라는 위풍당당한 자신감으로 즐겁게 촬영했는데, 큰 변화가 없는 조회수를 보면서 더욱 축 늘어지고야 말았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보기나 할까?'
새해가 시작되면서부터 새벽같이 일어나며 하루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결과물은 형편없어 보였고, 지금껏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뭔가 평소와 다른 기운을 느꼈는지 남편이 말을 걸어왔다. 생각하고 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 놓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냐며 핀잔을 준다.
"당당하게 해, 당당하게. 주눅 들 필요 없어. 너 지금 엄청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다른 사람들보다 네가 제일 잘해. 걱정하지 마."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어? 난 그게 잘 안 돼."
"그러니까 너랑 내가 사는 거야. 서로 보완해주는 거지."
허풍처럼 소리치는 통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우리 남편은 자신감 하나만큼은 일등이다. 어디 가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남편 덕에 기분을 풀고 잠들기 전, 왜 울적했을까를 생각해봤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는 늘 나를 전적으로 응원해주는 남편이 있고, 나의 지인들은 내가 지금 하는 것들(블로그, 유튜브 등)을 보면서 모두 잘한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준다. 그런데 처음으로 갔던 그곳에서는 그런 응원이 없었다.(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처음이 아닌가.)
늘 인정받고자 아등바등 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간 자기 혁명이라는 기호 아래 새벽 기상을 실천하면서, 다시 책을 꺼내 들고, 해본 적 없던 블로그와 유튜브를 하고, 또 글쓰기라는 것을 하면서 스스로가 많이 성장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런 착각 속에서 이제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나의 길을 가겠노라며 얼마 전에 브런치에도 글을 올렸다. 그런 저런 이유로 이제 어디에 가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자신감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Maslow의 6단계 욕구 위계에서 나는 아직 4단계(자존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간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했다. (자기 존중의 욕구는 타인으로부터 존중을 받으려는 욕구이다. 타인으로부터의 존중은 지위, 위신, 승인, 인정 등에 대한 욕구이다. 이 욕구가 충족되면 자기 존중감이 높아지고 자신감을 갖게 되며 자신이 세상에서 유용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p.155 교육심리학, 정동화 저, 서현 사) 아직도 사춘기 소녀처럼 준거 집단에 소속되기를 바라고 사랑받기를 바라는 (소속과 애정 욕구(3단계)) 미성숙한 사람임을 다시 인지하게 됐다. 책을 읽으며 조금 부끄러워졌다.
세상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학교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아이들을 위로해 주고자 했던 말이었지만 사실 나를 위로하는 말이었다. 그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말을 하면서 나 스스로는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시험에 떨어졌을 때, 학교 생활이 힘들었을 때 혹은 연애가 잘 안돼서 괴로웠을 때 등 힘들 때마다 이 문구를 떠올리며 큰 위안을 받았다.
살면서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 혼자라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아무도 내 편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럴 때마다 내가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좋아해 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응원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힘든 순간, 지난날 받았던 칭찬과 격려를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 남편이 그랬다. 본인이 청소를 해놓고 출근을 했을 때, 나한테서 '청소 깨끗하게 해 줘서 고맙다'는 문자를 받으면 그리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고. 아주 사소한 칭찬과 격려였지만 그 사람을 하루 종일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고 인정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사소한 인정과 응원의 메시지에 힘이 나고 괜스레 뿌듯해진다.
칭찬과 인정의 경험들이 모이면 나에 대한 무관심과 비난보다는 그보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자존감은 높아지고 어디에서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겨나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일을 통해 무엇보다도 나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자꾸만 해 주어야 겠다고 다짐 했다. <타이탄의 도구들>에서는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자신에 대해 의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는 말로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지 마라고 경계한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두려움을 품고 있던 나에게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공격처럼 꽂힌 문장이었다.
오늘 아침, 나갈 준비를 하면서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누가 나를 응원해주기를 바라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랬다. 다른 사람의 인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인정이다. 내가 나 자신을 믿고, 응원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불현듯 들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인정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응원 그리고 인정이 첫번째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오르고 내리고'가 반복된다. '조급함과 두려움'이 밀려왔다가 쓸려간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 앞에서 '너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 위축되어 주눅 들었고, 점점 다운시켰다.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지만 내가 익숙지 않다는 생각으로 스스로가 멀리하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은 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쓸데없는 생각보다는 할 수 있다는 주문과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자주 해주리라 다짐했다. 필요하다면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싶었다. 이제 내가 알을 깨고 나와야 할 차례이다.(데미안) 그 옛날 뜻도 모르고 그저 멋진 말이라는 이유로 포스트잇에 써서 책상에 붙여두었던 문장 하나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나는 그간 잘 살아왔고, 내 주변에는 내가 썩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거기서부터 자신감을 가져보자. 주눅 들지 말자. 그래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언젠가 다시 두려움이 밀려올 때, 이 글을 읽으며 다시 기운 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표지 사진 : Photo by DESIGNECOLOGIST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