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서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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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ss you’
어릴 적,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문장이었다. 보통 이 대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면 같이 타고 있던 사람들이 하던 말이었는데, 처음에는 '이게 뭐지?' 했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주 등장했고, 훗날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아이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이나 가는 길이 매번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낯이 익게 된 분들이 있다. 그중에는 경비아저씨도 계시고, 오며가며 만나는 아이 엄마들도 있다. 그런데 경비 아저씨들도 여러명이 계시기 때문에 인사하는 것을 나도 모르게 구분하게 된다. 우리 동을 관리하시는 분은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들어 반갑게 인사를 하게 되지만 다른 동을 관리하시는 분을 지나치게 되면 왠지 인사를 건네기가 어색하다. 게다가 마주칠 때마다 대부분 분리수거 작업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인사할 타이밍을 찾기도 어렵다. 일하느라 바쁘신 등에다 대고 인사하기도 이상한 노릇 같고, 어쩌다 눈이 마주쳤을 때 엉거주춤 인사를 하다보면 못 듣고 그냥 지나치시는 경우도 많으시다. 경비 아저씨도 아저씨 이지만 나와 반대 방향으로 아이를 등원 시키는 엄마들을 마주할 때 또 한 번 고민하게 된다. '인사를 해야 하나?' 그렇다고 생면부지인 사람에게 무턱대고 인사를 하자니 그것도 이상한 것 같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인사를 해도 덜 어색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도 들고. 괜히 오지랖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선뜻 먼저 인사하기가 꺼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수많은 생각들로 인사를 주저하는 것과 달리) 우리 둘째 아이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안녕'하고 손을 흔든다. 당연히 상대가 누구인지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반응에 상관없이 그저 힘차게 손을 흔든다. 가장 반응이 좋은 분들은 당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고 두 번째는 중학생 누나들이다. 가끔 형들이나 삼촌뻘 되는 남자들도 깜짝 놀라다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괜스레 '하하하' 뻘쭘해지기도 하지만 내가 봐도 귀엽긴 하니까 뭐...
내가 먼저 인사하기
엘리베이터에서 혹은 길을 가다가 할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넬 때면 나도 모르게 '인사해야지'하고 말하곤 한다. 정작 나는 안 하면서 말이다.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게다가 내가 인사를 시킨다 해도 아이의 인사하는 모습은 일관적이지 않다. 어떨 땐 큰 소리로 인사를 잘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그저 빤히 쳐다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번 상황을 겪게되다 보니 아이들이 인사를 잘하는 때가 언제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내가 먼저 상대방을 향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할 때였다. 그럴 때면 첫째 아이는 누구보다 씩씩하게 나를 따라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역시 말로 하는 잔소리는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사실 그렇게 먼저 인사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었던 얼굴을 풀고서 인사를 받아주신다. 내가 그렇듯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먼저 인사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일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로 '왠지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우리가 걸어가면서 혹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하게 되는 얼굴들 중 미소를 띠고 있는 경우는 찾기가 힘들다. 미소보다는 오히려 굳어있거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얼굴을 마주하고서 선뜻 인사를 할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생면부지인 사람인 데다가 얼굴까지 굳어있으니 어찌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그런데 인사라는 게 그렇게 까지 부담스러운 일일까 생각하면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대화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동네 사람들끼리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것이니 말이다.
문화에서 오는 자연스러움
외국에 자주 나간 것은 아니지만 한 번씩 기억을 떠올려 보면 서양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오랜 친구처럼 반갑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온 기억이 난다. (심지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여행지에서는 아무래도 자주 걸어 다니게 되기 때문에 그런 기억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한적한 동네나 거리를 걸을 때면 어김없이 반갑게 인삿말을 건네던 푸른 눈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헬로 혹은 홀라. 처음에는 너무 낯선 문화에 깜짝깜짝 놀란 적도 많았다.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 적응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어색한 느낌은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어느덧 외국에서 머무르는 그 시간 동안에는 나도 모르게 먼저 인사를 건네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착륙하는 순간부터 반갑게 인사하고 손 흔들던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진다. 오히려 길을 걸으면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하면 아마 '도를 아시나요?'인 줄 알고 피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운이 좋게 인사를 되받을지라도 '저 사람 뭐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부터, 그리고 교사가 되어서도 학교에서 자주 마주하는 슬로건은 '먼저 인사하기'였다. 심지어 길을 가다가도 길가에 붙은 현수막에서도 '먼저 인사하기'라는 문구를 종종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먼저 인사하자는 것을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고, 지금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는데 왜 아직도 '먼저 인사하기'에 어색한 분위기인 것일까?
너와 나에 대한 인식의 차이
얼마 전 독서 모임을 통해 서양식 인사에 대한 개념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서양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는 것은 동양권과 서양권의 타인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서양 사람들의 개인주의를 자칫 이기주의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들 개인주의의 합리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주의의 바탕에는 자기 자신이 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있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작용했다.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너'가 있기 때문이다. 즉, 나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런 나를 존중해주는 '상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려운가? (나도 쓰면서 순간 헷갈릴 뻔했다.) 서양에서는 이런 인식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향해 (고마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받아주고 안 받아주고는 이미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당연히 그들이 인사를 하기 전에 매번 이런 식으로 생각 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이미 그들의 문화가 그리 자리 잡았으므로 너무 당연한 일, 습관처럼 행하는 일인 것이다. 문화적 사대주의가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이 참으로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먼저 인사하기' 문화가 참 보기 좋다 생각되었다.
깊게 공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지만 동양권의 문화는 개인주의가 아닌 집단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상대방을 바라보는 인식이 조금 다르다고 여겨졌다. 동양의 문화는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여기고 나 보다는 전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너와 나의 개념보다는 소속된 집단의 개념이 더 크게 자리 잡는 것 같다. 그러니 지나가다가 동네 아줌마를 봤을 때, 나도 모르게 '같은 아파트 사람이라면...'이라는 전체 집단을 먼저 생각한 것이다. 우리의 무의식에 어떤 집단에 소속이 되어있느냐의 여부가 생각보다 크게 자리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공통된 교집합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내가 인사를 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이 인사를 받아줄까 안 받아줄까에 초점을 맞추게 되니 먼저 인사하기가 망설여지는 것이다.
인사를 하고 싶지만 왠지 받아줄 것 같지 않은 마음 혹은 타인을 방해하는 것만 같은 마음. 우리의 기본 정서는 나 보다는 상대방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런 이유에서 아는 사람이 아닌 이상 자신 있게 먼저 인사하기가 여간 여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말로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결국 내가 먼저 인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변명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아이들이 누군가를 쉽게 받아들이는 오픈 마인드를 갖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먼저 건네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내가 먼저 반갑게 인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역시 엄마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늘 아파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하는 엄마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그때는 아줌마니까 저렇게 다 인사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이렇게 '먼저 인사하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런 고민을 나 혼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나에게 부족한 소양임에는 맞는 것이니 일단 조금씩 실천해 보자 다짐해본다. 우선은 경비아저씨부터 반갑게 인사를 해야겠다. 일하시느라 바쁘시다면 '수고하세요'라고 하면 될 것 아닌가.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한 번 시작해보자.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다.
*표지 사진 :Photo by JuniperPhot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