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최선을 잘못된 방향으로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한동안 헛살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나온 나의 삶을 바보 같은 것으로 치부하고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신 차려야겠다 생각했다. 더 이상 호구 짓하지 말자 다짐했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한심해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아등바등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효율이 없어 보였을지 몰라도 엉덩이를 붙이고 열심히 해왔던 것이 돈과 연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 것이 호구였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역시도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인식의 변화를 느꼈다는 것은 중요했고, 적어도 내 밥그릇을 지키는 데에 좀 더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좀 더 이기적인 삶을 살지 못했던 나를 탓하고 내 지난 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도 결코 옳은 방법은 아니었다.
변화된 삶을 살기로 마음먹으면서 가장 거슬렸던 것은 어쩌면 남편이였다. 어찌 보면 그는 그대로 열심히 본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데 나는 또 내 삶의 방향이 바뀐 만큼 어느새 새로운 기준으로 그의 삶을 평가하고 있었다. 퇴근 후에 집에 와서 내가 미처 다 하지 못한 집안일을 한 다음 그대로 누워서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는 남편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책이라도 좀 보지. 왜 저 시간을 저리 아깝게 보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고 함께 남편이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남편과의 관계에 작은 균열이 일기 시작하면서 나는 좀 우울해졌다. 내가 그간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큰 간섭을 하지 않던 남편이 어느 순간 내가 변했다고, 내가 가는 모임에서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를 의심하며 나를 몰아붙이기 시작하면서 나는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나는 애도 키우고 살림도 하는 와중에 자기 계발을 위해서 이렇게 힘쓰고 있는데...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걸까?
생각이 시작되니 멈출 수가 없었고, 그간 책을 읽으며 혹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익혀왔던 '마음 정리 매뉴얼'들은 도무지 접목시킬 수가 없었다. '객관적으로 나를 응시하라', '한 걸음 물러서서 나와 감정을 분리하라'라고 하는 것들이 이론 상으로만 머릿속에 맴돌 뿐 분함과 억울함이 가득한 순간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늘 느끼지만 폭풍의 한가운데에 빠져있을 때에는 크게 도움되는 것이 없었다. 자꾸 눈물만이 흘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일까 결국 이런 것들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한 탓일까. 폭풍은 또 지나가긴 했다. 그렇게 그 한가운데를 빠져나오고 나니 또 무엇인가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의 생각을 반드시 믿어야 할 필요는 없다. 너의 생각을 믿지 마라.
얼마 전에 읽은 <자기 돌봄>이라는 책에서 내가 번개처럼 맞은 한 마디는 바로 이 구절이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의 생각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지만, 작가는 일언지하에 딱 잘라 내 생각은 내가 아니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믿을 필요는 없다. 그냥 내버려 두라.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그것을 옳다고 하지 마라. 명상을 통해서 혹은 그간 읽어온 몇 권의 영성 책을 통해서 익히 들어왔던 바이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이 문구가 내 마음에 와 닿았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에는 남편에 대한 화남이 일순간 꺼져 들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과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느냐 묻는다면 대답은 '노'이다.
어쨌든 책은 계속 읽었다. 화남과 억울함의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기에 그 화가 조금 내려가는 순간에는 또 이 생각 저 생각 없이 무슨 책이든 읽게 되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작가는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그저 생각일 뿐이니 그것을 인지하라. 그리고 잠시 멈춘 뒤에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예상해 보라. 그러면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지금 내가 이 안 좋은 기분을 털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 안 좋은 감정을 끈질기게 갖고 간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먼저 내려놓고 인정한다는 것이 쉽게 되지는 않았다. 그것 역시 '내 생각이 옳다' '생각이 바로 나야'라는 믿음 때문이겠지만 실전에 접목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어째서인지 배구의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배구를 즐겨보던 때가 있었다. 키가 크고 멋진 선수들 때문이건, 강력한 스파이크나 멋진 블로킹 때문이건 스피디한 경기가 주는 매력에 빠져 즐겨 봤었다. 그 가운데 문득 오버랩됐던 장면은 선수들이 경기 중에 쥐가 낫을 때의 응급처치 장면이었다. 강 스파이크를 때리고 갑자기 쥐가 났는지 잠시 타임아웃이 일고 선수가 코트에서 걸어 나온다. 그러면 의료담당자로 보이는 사람이 뛰어나와 무엇인가로 선수의 종아리를 찌른다. 이내 종아리에서 핏방울이 송글 송글 맺히며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수건으로 황급히 닦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다시 경기장 안으로 달려들어가 아무일 없었다는 듯 경기를 치른다.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너무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종종 반복됐다. 아마 바늘에 찔리고 피가 나는 아픔은 한창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쥐가 난 것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응급 처치 중의 하나였을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최선의 삶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늘 그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모든 게 뒤엉켜 들었다. 혹여 그 선수들이 나에게 '너는 왜 더 열심히 안 해?'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억울해서 거품을 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있어 나의 달리기는 아주 싱겁고 가벼운 워밍업 동작에 지날지도 모르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뛰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최선일 수도 있다. 인간이란 혹은 동물이란 어찌 됐든 자신이 최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나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우리 아이들도 어쩌면 자기 나름의 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들 역시 자기가 생존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찾아가고 있을 터인데 우리는 늘 무엇인가 마땅찮음을 느기며 아이들을 다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향하던 나의 잣대가 우리 아이들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엄마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늬들은 못해?' 나의 기준에서 내 삶의 최선을 아이들에게 들이대며 못마땅해 하는 먼 미래의 나 자신이 보이는 것 같아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남편이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말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그 말에 진심을 들여다보게 된다. 본인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알아주는 존재가 없음에의 허탈함을 느끼며 스스로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상대평가의 억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늘 남편을 누군가와 비교하며 저울질하고 있던 나 자신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미안해졌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렇게 인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싸우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최선은 싸우지 않는 것이지만 혹여나 다시 싸우더라도 그 냉전의 기간이 길지를 않기를 바란다.
"우리 진짜 싸우지 말자, 나 너무 힘들었어." 남편이 토로하듯 내뱉는 그 말에 나 역시 동의한다. 싸움의 냉랭함과는 달리 우리의 화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늘 싱겁게 끝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움이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남편 역시 힘들다는 것. 둘 중 누구 하나 맘 편하지 않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날을 세운 말과 다툼이 가져오는 안 좋은 기운은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하루 종일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그것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누구나와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인데, 왜 특히 남편에게 관대해지지 못하는 것인지.
우리는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각자 살아남기 위해 자기에게 맞는 최적을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같이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에게도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적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것을 계속 유지하기를 바라는 구성원이라면 그렇다고 믿는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도 그리고 남편도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꼭 얼마큼 열심히 달려야지가 최선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호흡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늘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
*표지 사진 : Photo by Steven Lelham on Unsplash